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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

in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021.06.19 6시

 

 

 

 

유연 에바, 박은석 로코, 정연 까를로타, 김재범 렐레, 박소진 비앙카, 성두섭 코지모, 임철수 페페, 김채윤 소피아. 티몬스테이지.

 

 

배우진이 워낙 좋아서 관심이 갔었는데, 한국 영화가 너무 쓰레기여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먼저 보고 온 덕친이 자둘을 할 만큼 재미나게 관극한 걸 봤고, 티몬스테이지 사은품인 캔버스백이 예쁜데다가 전날에 특가까지 떠서 결국 객석에 앉았다. 세종엠 2층은 처음 가봤는데 생각보다 시야도 좋고 아늑하더라. 관크 얘기가 많아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도 이날 앉은 자리 주변은 아주 쾌적했다. 무대인사는 랑댚의 진행 하에 배우들의 간단하게 인사가 있었다. 캐릭터 대부분이 더블이어서 이날 페어는 첫공이었던 것 같더라.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영화는 전형적인 알탕연대와 서열문화의 역겨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아주 불쾌했는데, 극에서는 수위 조절을 해서 불편한 정도로 끝났다. 특히 고부갈등과 여성들 간의 견제를 표현하는 방식과 개연성이 영화와 비교했을 때 훨씬 합리적이고 덜 혐오적이었다. 영화는 오직 남성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모든 대사와 행동의 근간에 뿌리 깊은 여혐의 역사가 담겨 있었으나, 연극은 그런 부분에서는 훨씬 나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세속적이고 위선적인 자들의 천박한 내면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음을 이해한다.

 

 

장면들의 공간 변화가 크지 않음에도, 식당이나 부엌, 발코니 등의 장소 변화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극의 재미를 높였다. 무대 안쪽의 화면을 활용하여 이야기의 집중을 높이기도 했고, 무대 위쪽 틀의 영상을 통해 월식을 가시적으로 보여줬다. 무대 위에 진짜 음식들이 등장하고 배우들이 직접 식사를 하면서 현실성을 확 끌어올린 점도 재미있었다. 음식을 섭취하는 동시에 적확한 타이밍에 대사를 하는 것에 대한 고충을 이날 무인에서 일부 배우들이 언급하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날카로운 비아냥과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유머들이 난무했지만,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에 객석 일부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건 정말이지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극에서도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의 독해력과 공감능력이 많이 부족함을 뼈져리게 느낀다.

 

 

 

 

"달이 어둠으로 몰락하는 유일한 순간"

 

 

여덟 개의 의자들이 모두 객석을 향해 한쪽 방향으로 놓인 일자로 긴 식탁을 보고 "최후의 만찬이야?" 라던 극 초반의 농담은,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으며 현실이 된다. 감추고 외면해온 비밀들을 날 것 그대로 마주했기에 다시는 함께 모일 수 없는 최후의 식사.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두가 앞만 보고 있어야 하니 적어도 눈치는 안볼 수 있는 영화관에 대한 대사도 나오는데, 이 최후의 만찬 식탁을 빗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예상가능한 파국이었음에도 게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어리석음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도 아찔하기도 하여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인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이 핸드폰을 함부로 공개해도 되는가. 타인에게 완벽하게 솔직하고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극 속 인물들 같은 이들이 만연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스스로 거대하고 깊은 함정을 파면서도 자신은 절대 들키지 않으리라는 오만한 확신에 빠져 더 깊은 구렁텅이로 무너져내리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비밀들은 안고 살테니, 진실과 거짓의 경계 속에서 늘 긴장하고 살아야함이 마땅할 것이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모든 것을 공유하는 어리석음만큼은 결코 범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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