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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in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2021.02.21 7시

 

 

 

 

손승연 엘파바, 나하나 글린다, 서경수 피에로, 이상준 마법사, 이소유 모리블 학장, 이하 원캐. 위키드 자넷, 라센 자첫!

 

 

런던에서 처음 만난 이 작품의 라이센스 공연을 10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마주한 감회가 몹시 새로웠다. 11년에 웨스트엔드에서 자첫을 하고, 12년도에 서울에서 내한공연으로 자둘을, 그리고 16년에 싱가폴에서 자셋을 했고, 드디어 한국 배우들의 라센공으로 자넷을 했다. 16년도에 예당에 라센이 올라왔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사로 남았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드디어 한을 풀었다!!

 

 

<오즈의 마법사>를 재해석하여 탄탄한 이야기를 새로이 창조해낸 이 멋진 극은, 10년 전과 다름 없이 황홀하고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붉은 눈의 타임드래곤의 용트림이 오즈의 세계를 활짝 여는 순간 온몸 가득 전율이 휘감겼다. 풍부하고 선명한 색감의 조명과 환상적인 동화 속에서 톡 튀어나온 듯한 매력적인 무대 배경들이 현실을 잊고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음악. 뮤지컬 넘버들은 극 안에서 불릴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나기에, 사랑해 마지 않는 이 음악들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숨쉬는 찰나들이 지독히도 행복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와 연출과 음악인데도, 바로 이 순간 생생하게 존재하는 무대가 어찌나 짜릿하고 아름답던지. 이 감정을 모르던 과거로 "돌아가긴 늦었"다.

 

 

 

 

※스포있음

 

 

이 극은 아직 어리고 부족했던 두 소녀가 가혹한 진실과 군중의 몰이해로 인해 떠밀리듯 변화하고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온전히 그려낸다.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이 사랑스럽고 정성스럽게 장면장면에 녹아있다. 이 극을 보며 매번 눈물을 쏟는 장면 중 하나가 1막의 파티장이다. 자신이 장난으로 건넨 뾰족 모자를 쓰고 온 엘파바가 사람들의 비웃음에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꿋꿋하게 무대 정중앙으로 나와 혼자 엉뚱한 몸짓으로 춤이라는 것을 추는 모습에, 글린다는 깨닫고 반성한다. 피에로가 쟤는 남들이 뭐라든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하자, 글린다가 말한다. 흔들린다고. 안 그런 척 하는 거라고. 엘파바의 마음을, 진실된 영혼을 알아보았기에, 글린다는 솔직하게 다가가 자신의 허영을 기꺼이 내려놓는다. 엘파바의 춤을 똑같이 따라하는 동작이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울수록, 용서를 건네고 손을 내미는 글린다의 마음이 더욱 애틋하고 숭고하게 빛난다.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존재하기 위해 투쟁해온 엘파바의 절박함을 처음으로 알아보고, 나아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다가온 친구. 그렇게 그들은 유일무이한 베스트프렌드가 된다.

 

 

"이제는 내일로 나아갈 시간"

 

 

엘파바의 선한 의도가 불행한 결과를 야기하고, 글린다의 악한 의도가 좋은 의미로 포장되며 두 사람의 길이 점점 더 멀리 어긋나는 괴리가 wicked 하게 표현된다. "Wicked Witch" 라는 저주 받은 명칭으로 호명되는 엘파바와 "선한 글린다" 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글린다의 본질은 결국 다르지 않음에도 그들의 삶은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는 아이러니가 짜임새 있는 구성과 탄탄한 연출로 완성된다. 그러나 엇갈린 길은 평행선을 그리는 대신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는 교차점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글린다의 마음을 걱정하는 엘파바와 끝까지 엘파바를 사랑하고 믿는 글린다가 각자의 선택에 따른 미래로 나아가는 결말이 더없이 외롭고 또 벅차오른다.

 

 

 

 

이날 For Good 넘버에서 엘파바와 글린다가 선택한 비유의 대상들이 다르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글린다는 특정한 경로를 반복하며 자리를 지키는 혜성과 시냇물에, 엘파바는 파도와 바람을 타고 멀리 떠나는 배와 씨앗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다. 글린다에게 엘파바는 단단한 중력으로써 삶의 구심점이 되는 존재이고, 엘파바에게 글린다는 심장으로써 삶의 의지가 되는 존재인 것이다. Defying Gravity 와 더불어 몹시 사랑하는 이 넘버가, 보다 완벽해졌다.

 

 

위대한 마법사가, 아름다운 오즈가, 믿고 사랑해온 모든 것들이, 고작 화려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을 가혹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깨어나버렸"기에 "돌아가긴 늦"어버린 계기를 마주하기에, 동물이 말을 하고 마법이 존재하는 동화 같은 세상이 지금 발 디디고 살아가는 현실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 작품을, 선한 글린다와 위키드 위치를 만나기 위해, 이번 봄에도 블퀘를 자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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