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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20.11.29 2시
안젤로 델 베키오 콰지모도, 로미나 팔메리 에스메랄다, 존 아이젠 그랭구와르, 로베르 마리앙 프롤로, 제이 클로팽, 지안마르코 스키아레띠 페뷔스, 알리제 라랑드 플뢰르 드 리스. 한국 1000회 공연. 시즌 자첫, 노담 자여덟.
외출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으나 한국공연 1000회차를 놓칠 수가 없었다. 작품은 2년 만이고 내한 공연은 5년 만이어서 유난히 설렘이 컸는데,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극의 위엄에 내내 압도당하며 관극했다. 자막 없이도 오롯이 전달되는 이야기와 감정이 심장을 울렸고, 무대를 가볍고 자유롭게 누비는 댄서들의 몸짓이 짜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특히 댄서들 한 명 한 명에게 오롯이 집중한 관극은 처음이었는데, 덕분에 극이 한층 풍성하고 숭고하게 아름다웠다. 고전의 유의미함을 자주 언급하곤 하는데, 노담이야말로 이방인을 대하는 원작의 위대함과 사람의 몸과 목소리로 무대를 꽉꽉 채워내는 연출의 미학이 담긴 완벽한 고전이다.
5년 전 페뷔스로 만났던 존 아이젠 배우를 그랭구와르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커다랗게 표정을 그려내며, 존그랭은 때로는 소년미 가득하고 때로는 처절한 감정을 쏟아냈다. 역시 5년 전에 클로팽으로 만났던 안젤로 델 베키오 배우는 콰지모도가 되었는데, 모든 넘버에 온 영혼을 갈아넣는 노래가 환상 그 자체였다. 허스키하면서도 날카롭고 절망적이면서 절절한 안젤로콰지의 마음이 흘러넘쳐 객석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처절한 여운이 무척 짙게 남는 Dieu que le monde est injuste (불공평한 이 세상) 넘버가 심장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로베르프롤로 역시 훌륭했는데, 특히 Tu vas me détruire (파멸의 길로) 넘버가 무척 좋았다.
에스메랄다 얼터인 로미나에스메는 맑고 치기 가득한 소녀가 혁명가의 눈빛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연기가 매끄러웠다. Ma maison c'est ta maison (니집내집) 넘버에서 석상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숲 속의 요정 같았고, Ave Maria païen (이방인의 아베마리아) 넘버의 깨끗하고 간절한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제이클로팽의 시원시원한 음색은 Les sans-papiers (거리의 방랑자들) 과 La fête des fous (미치광이들의 축제) 넘버를 보다 다채롭게 만들어줬다. 지안마르코 배우의 페뷔스는 그 동안 애타게 바라던 바로 그 페뷔스였다. 듣는 관객이 괴로운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페뷔스가 처참히 괴로운 Déchiré (괴로워) 넘버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데시레는 언제나 막 너머 남자 댄서들의 춤을 보는 넘버였는데, 이날은 페뷔스의 괴로워하는 표정까지 보느라 눈이 몹시 바빴다. 넘버, 얼굴, 피지컬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데다가, 극 안에서 페뷔스가 취해야 할 수준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아서 몹시 편안했다. 5년 전 존페뷔가 최애였는데, 이날부로 최애 페뷔스가 바뀌었다.
이번 시즌이 프랑스 초연 20주년 연출을 가져왔다고 들었는데, 의상이 유난히 많이 바뀌었다. 특히 Le val d'amour (발다무르 카바레) 의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 시즌들에서는 여자 댄서들의 몸에 착 달라붙는 피부색의 의상이어서 무척 적나라하고 외설스러운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시즌은 앞선 넘버의 의상과 비슷하게 입은 채 형형색색의 리본을 묶은 머리띠로 포인트를 줬다. 지난 의상은 창녀촌의 배경을 유난히 강조해서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다면, 이번 의상은 지나치게 발랄한 느낌이 강해서 괴리감이 들더라. 그랭구와르의 푸른 코트와 바지 역시 재질과 두께가 완연히 달라졌고, 에스메랄다와 플뢰르의 의상도 치마 위에 갈라진 치마를 덧대어 움직임에 쉽게 휘날릴 수 있도록 했다.
댄서들이 전부 훌륭해서 일일이 눈에 담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Les Cloches 넘버에서 종을 의인화한 댄서들의 몸짓에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Bohèmienne 넘버에서도 에스메랄다보다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매력을 뽐내는 여자 댄서들의 몸짓에 계속 시선을 빼앗겼다. 댄서들이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풍만하고 황홀하여, 무대를 가득 채우는 화려한 대극장 극에 대한 갈증을 온전히 충족시켰다. 영혼까지 배부른 이 포만감이 너무나 오랜만이라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행복했다.
이런 시기임에도 관극을 할 수 있는 국가에 살고 있음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 부디 무대와 무대 뒤쪽과 관객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이 극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조만간 또 만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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