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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in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19.08.29 8시
류정한 시라노, 나하나 록산, 송원근 크리스티앙. 재연 류라노 자넷. 류하나 페어 자첫.
※스포있음※
시라노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록산은 시라노를 닮아간다. 시라노처럼 멋있게 살고 싶었던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물들어간다. 록산을 사랑한 시라노는 록산이 사랑한 크리스티앙까지 사랑하게 된다. 각기 다른 별개의 영혼들이 시간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며 점차 유사해진다. '하루 또 하루' 넘버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록산과 왼쪽으로 선 크리스티앙과 오른쪽을 응시하는 시라노의 엇갈린 시선은, 모두가 정면을 향해 몸을 돌림으로써 같은 곳을 향하게 된다.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한 세 사람은 마침내 하나의 온전한 영혼으로 맞물린다.
그렇기에 크리스티앙의 죽음 앞에서 록산은 절규하고 시라노는 절망한다. 록산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었고 시라노가 진실한 사랑을 담았던 크리스티앙의 영혼이 스러지는 순간, 남겨진 두 영혼의 일부도 완전히 죽어버린다. 스스로 영혼이 없는 놈이라 자조했던 크리스티앙처럼 영혼이 쏙 빠진 얼굴로, 시라노는 서늘하고 아득한 절망을 마주한다. 크리스티앙의 죽음, 그리고 자기자신의 죽음을 선고하며 이를 악문다. 아직 지켜야 할 것이 남아있는 시라노는 온 힘을 다해 오만한 죽음에게 맞선다. 언제나 지독하고 가혹한 웃음을 짓는 운명 앞에서도 달을 쫓아 콧대를 높이 치켜들었듯이.
살아남은 두 사람은 새카맣게 시들어버린 영혼의 일부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삶을 살아낸다. 고요히 진실을 끌어안고, 묵묵히 진실을 함구하면서. 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 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시라노의 눈과 그 너머의 아픔과 고통을 비로소 깨닫고 끌어안는 록산의 눈이 마주친다. 빗겨나기만 했던 영혼이 마침내 완벽하게 마주한 순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신이 찾아온다. "아주, 잠시, 안녕." 자신들의 영혼이 하나임을 알고 있는 시라노이기에 할 수 있는 작별 인사이자, 반드시 다시 만나리란 약속. 허공을 향해 절규하는 시라노를 온갖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던 록산도 이해한다. 그와 자신의 영혼은 동일하다는 것을. 시라노가 제 눈물과 크리스티앙의 피가 묻은 마지막 편지를 록산의 손에 소중하게 쥐여줌으로써 끝내 세 사람의 영혼이 하나가 된다.
초연에 비해 재연에서 크리스티앙을 멍청하다고 표현하는 대사가 상당히 많아졌는데, 이는 크리스티앙이라는 인물의 특징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시라노가 그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수단으로도 사용됐다. 자기자신을 멍청하다 비하하는 크리스티앙에게 "진짜 멍청이는 자신이 멍청한지 몰라" 라며 골려먹던 시라노가, 록산에게 제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주눅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넨 멍청하지 않아" 라고 위로하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멍청해서 그렇게 말하면 믿고 싶" 다고 말하는 크리스티앙을 끌어안는 시라노의 절박함이 한층 강조되기도 한다. 다소 과한 의미 부여일 수는 있으나, 마지막 장면의 시라노 독백에서 "희망이 있을 때만 싸우는 게 아니다" 하는 말의 끝에 "멍청아" 라고 덧붙였던 초연의 대사가 재연에서는 없어진 이유가 이러한 맥락 때문이라고 본다. 올곧게 사랑하고 나아가던 크리스티앙을 위한 이 단어를, 시라노를 마중 나온 죽음의 신에게 사용할 수 없었을 테니까.
갈수록 감정이 너무 깊고 짙고 먹먹하여 글로 잘 표현이 되지 않는다. 크리스티앙의 재능을 가진 자의 펜으로 시라노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니 자꾸만 한계에 부딪힌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엮어내는 기술도 부족하지만, 찰나의 경험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 자체가 갈수록 어렵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음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후기 작성을 그만둘 수가 없다. 게다가 류배우님이 매번 새로이 훌륭한 공연을 선사해주시니 자꾸 할 말이 생기긴 한단 말이지. 그걸 생각처럼 잘 풀어낼 수가 없어서 고통스러운 거고.
Bring Me Giants. 부드럽고 섬세한 톤으로 시작한 목소리에 감정의 흐름이 실리고,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너울거리는 공기의 흐름이 되어 어두운 무대를 가득 채운다. 넘버의 끝에 내린 암전 속에서 반주만 흐르는 재연 연출이 여운을 길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라노의 단어들이 허공에 흩날리며 감정이 극적으로 고조되고, 반주 없이 진행되는 커튼콜까지 그대로 일렁임이 이어진다. 의도된 여백이 관객의 여운을 돕는다. 벅찬 전율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오늘도 좋은 공연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음이 행복하다. 다음 관극 역시 어마어마하게 아름답겠지.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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