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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스가이드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2019.01.13 2시
김동완 몬티, 한지상 다이스퀴스, 이하 원캐. 뎅몬티, 한스퀴스. 뎅한페어 7번째 공연이자 페어막공. 젠가 및 뎅핝 자셋자막.
오피 2열이라니. 뎅옵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에 공연 내내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게다가 장면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연기가 훨씬 풍성하고 다채로와져서, "안 질려, 널 보는 게" 라는 몬티 대사를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9명의 인물들을 완벽하게 구분하여 톤과 음색을 전부 다르게 만든 목소리가 매번 경탄스러운 한스퀴스도 늘 그랬듯 훌륭했다. 페어막다운 참사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임기응변과 애드립 덕분에 더 유쾌한 상황이 만들어져서 즐거웠다. 커튼콜에서 페어막공이라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서로에게 지어보이며 끌어안는 두 배우에게 양껏 환호를 질렀고, 골반을 앞뒤로 튕기며 댄스배틀을 시도하는 뎅몬티와 에스퀴스 2세 특유의 골반돌리기로 대응하는 한스퀴스를 보며 마지막까지 깔깔댔다. 심취한 채 몇 번 더 춤을 춘 뒤 몸을 뒤로 젖히며 객석을 향해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주던 뎅몬티의 퇴장과, 계속 환호를 유도하는 한스퀴스의 퇴장까지, 완벽하게 행복한 관극이었다.
오피석의 음향이 뒷자리보다 훨씬 좋아서 가사가 귀에 쏙쏙 박혔고, 말 그대로 비오듯 땀을 쏟는 주연배우들의 고생이 눈에 잘 들어왔다. 이날 뎅몬티의 깨알 같은 표정 연기들이 일품이었고, 소품을 꺼내거나, 행동을 시도하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등의 행동들을 보다 과장스럽게 표현하며 코미디 공연 다운 포인트를 한층 부각시켰다. 본인의 대사나 행동지시가 없는 장면에서도 입모양으로 뭔가를 투덜거리거나 애드립을 넣는 디테일이 굉장히 많아서 더 재미있었다. 무대 위에 존재하는 매 순간마다 존재하는 핝스퀴스의 수많은 디테일들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 선명하게 다듬어지고 정리되어서, 극의 재미요소들이 적절한 수위에서 깔끔하게 전달됐다. 조연배우들 디테일 또한 많이 늘어나서, 2막은 두 눈이 부족할 정도였다. 배우도 관객도 오케도 모두 즐거울 수 있는 극이 오랜만이어서 관극이 매번 편하고 즐거웠다. 그러므로 아래 후기는 기억 나는 디테일 위주로 간략하게 남겨본다.
※스포있음※
많이 컸다는 미스 슁글의 말에 "별로 안 컸는데" 라는 대사와 비스킷 몰래 주워먹으려는 디테일은 이전과 동일했다. 아버지의 갑빠 언급에 본인 가슴을 양손으로 감싸며 투덜거리고 얼굴을 삐쭉거리는 등 미스 슁글을 의심하던 뎅몬티는, 진실되어 보이는 출생증명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나는 다이스퀴스" 하고 슬그머니 의심을 거둬낸다. 넘버 마지막 솔로 부분의 "나는 다이스퀴스" 박자를 살짝 놓쳤지만 마무리는 깔끔했다. 은행장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조심스럽게 톡, 하고 밀어넣은 뎅몬티는 시벨라를 만나러 간다. 오른쪽에 재킷이 등장하면 "어, 옷이 있네?" 라던 평소 디테일과 다르게, 이날은 "고마워요" 하고 말했다.
11월, 12월의 관극에서 뎅몬티는 시벨라의 말 하나하나에 안절부절 못하거나 발끈하는 감정 표현이 적나라했는데, 이날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내내 미묘한 웃음을 입꼬리에 걸고 있었다. 이전에는 어리고 치기 어린 소년이었다면, 이날은 어떤 상황이든 허허실실 넘기는 호인처럼 보였다. 다르게 말하면, 하류층이라는 제 현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이날의 몬티는, 시벨라가 선택해주지 않으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지렁이에 비유하고, 대놓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는 시벨라의 도발에도 그저 체념하는 인상이 강했다. 이 노선으로 인해 '바보같아' 넘버를 통한 각성이 더 극적이었고, 살인을 거듭하며 변하는 성격도 훨씬 강렬하고 드라마틱 하게 표현됐다.
무대 왼쪽에 등장한 편지함에서 에스퀴스 2세의 답장을 집어든 뎅몬티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는데 꽤 버벅거렸다. 뎅몬티가 무대 가운데 계단에 앉아 편지를 읽기 시작하면, 무대 오른쪽에서 현란하게 골반을 돌리며 핝스퀴스가 등장한다. "마마" "애오" 하는 보랩 추임새와 퇴장하면서 "전진하자" 하는 애드립이 있었다. 에스퀴스의 잔인하고 무례한 글에, 뎅몬티는 억울함과 무력감에 휩싸인 채 입을 떼기 시작한다. 넘버가 진행될 수록 분노가 점진적으로 차오르며 끝내 폭발하듯 쏟아진다.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표현되긴 했지만, 뎅몬티의 두 눈에 실리는 감정 변화가 선명하게 보여서 더욱 짜릿했다.
애들버트 백작의 콧수염과 턱수염은 귀에 거는 방식이었음을 오피에 앉은 덕에 알게 됐다. 에스퀴스 1세는 그냥 붙이는 콧수염이다. 늙고 꼬장꼬장한 목소리와 허리를 살짝 굽히고 양 무릎은 바깥 쪽으로 돌아간 채 어기적 거리듯 다소 불편하게 걷는 걸음걸이가, 애들버트라는 인물의 성격과 나이와 역사와 성정을 능히 짐작케 한다. "왜 가난하고 그래" 하는 애들버트의 말에, 총을 얹은 탁자 옆에 쭈그리고 앉은 뎅몬티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하며 궁시렁댔다. 그러다 결국 가난한 게 내 탓이냐는 듯 벌떡 일어서려고 하지만, 흉흉한 애들버트의 기색에 눌려 도망치듯 하이허스트 성을 떠난다.
신부 에제키엘을 만난 뎅몬티는 그를 따라 종탑 위로 올라간다. 에제키엘의 물음들에 "모르겠는데요" 하며 우스워 보일 정도로 맹한 표정을 짓는 게 인상적이었다. 크게 걸음을 떼며 "흐잉흐잉흐잉" 하는 소리를 내는 핝스퀴스의 디테일을 두 번째 올라갈 때 따라하던 뎅몬티. 강한 바람에 휘청대다 오른발을 바닥에서 뗀 순간부터 힘들어보이던 에제키엘. 바보같아 맆의 대사마다 표정을 바꾸는 뎅몬티와 비틀대며 힘들어하는 핝스퀴스를 번갈아 보느라 눈이 바빴다. 한쪽 발로 폴짝폴짝 앞으로 걷다가, 쭉 뻗었던 오른손을 기울여 바닥에 살짝 손을 짚은 채 고통스러워 하던 핝스퀴스는 "빨리 결정해라 진짜 미치겠다" 하며 앓는 소리를 낸다. 후잉, 하며 자신이 내민 손 위쪽으로 에제키엘이 손을 뻗어오자 휘익 팔을 돌려 제 손을 빼버린 뎅몬티는, 그의 얼굴 바로 앞에 반대편 손을 들어올리고선 후, 하고 가볍게 숨을 뿜어낸다. "오조오억, 디져쓰" 하고선 양팔을 휘두르며 아래로 떨어지는 에제키엘을 응시하던 뎅몬티는, 눈을 번뜩이다가 퍽, 하는 소리에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그리고 슬며시 공간을 만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끔찍한 결과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죄책감은 전혀 없는 표정을 얼굴에 띄운다.
에스퀴스 1세 목소리 너무 마음에 든다. 특히 끈적하게 노래 부르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매번 넋놓고 듣게 되는데, 이런 류의 목소리로 음원 하나 내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얼음에 구멍을 내서 에스퀴스 2세를 간접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낸 뎅몬티는, 신경질적으로 불안하게 제 손을 내려다보고 비비며 혹시나 증거를 남겼을까 걱정한다. 아들이 죽은 에스퀴스 1세는 뎅몬티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은행에 취직을 권한다. 스케이트를 탈 때 골반은 돌리지 말라고 하는 핝스퀴스 디테일을 원래 무대 왼쪽 책상 근처에서 했던 것 같은데, 이날은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와서 했다. 뎅몬티는 여전히 체념한 태도지만, 약간의 미련과 원망을 담은 눈으로 망연하게 결혼하는 시벨라를 바라본다.
여전히 귀여운 헨리 핝스퀴스. 과장스럽게 그의 품을 쓰다듬는 뎅몬티와, 그런 그의 손길을 느끼는 헨리의 합이 좋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해요? 처음부터 다시 하자. 남자가 더 좋아~" 하는 헨리 디테일은 지난 번과 동일했는데, 살짝 버벅대더니 "남자가 더 좋아" 하고 따라 부르는 뎅몬티 디테일은 처음 봤다. 자, 하며 몬티에게 손깍지를 끼는 것도 핝스퀴스 디테일이라고 들었다. "안녕 짹짹이들, 알아가고 있어" 하며 객석을 향해 말하는 헨리의 말에 맞춰, 뎅몬티도 "안녕 짹짹이들," 하며 인사를 한다. "정말 죽어? 100방을 쏘이면?" 하고 객석을 바라본 채 눈을 번뜩이며 말하는 뎅몬티에게 "어딜 보고 얘기하는 거야?" 하고 묻는 핝스퀴스. 알리오 올리오, 나 잘해, 하면서 그를 데리고 들어간다.
히아신스의 표정과 행동과 목소리가 독특하여 매번 놀랍다. 표독스러움과 이기심이 덕지덕지 묻은 표정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하고, 그 와중에 오만하게 남작이라 자칭하며 다가온 뎅몬티를 찍어누른다. 뎅몬티의 아프리카 언급에 온갖 불만을 쏟아내는 앙상블과, 그들을 조용히 시키며 "끝장을 보자" 하고 악에 받쳐 아프리카를 부르짖는 핝스퀴스. 끝끝내 히아신스를 보내버린 뎅몬티는, 그가 식인종에게 잡아먹혔다는 신문 기사에 잔혹하고 비열한 웃음을 가감없이 입가에 걸다가 누가 볼까 황급히 양손으로 입을 가려버린다. 지난 관극에서는 죄책감이 없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날은 그 이상으로 잔인하고 계획적이라는 인상이 부각되어 흥미로웠다.
"난 최선을 다하고 있네" 라는 에스퀴스 1세의 말에, 뎅몬티는 객석을 향해 왼손을 휘 두르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받아쳤다. 그러자 "이 기분 아무도 모를 거야. 상상 그 이상이지." 하며 이어가는 핝스퀴스. 에스퀴스 1세의 중후한 목소리도 너무 좋다. 칭찬만 거듭하고 있지만, 대사 뿐만이 아니라 노래 톤까지 완벽하게 구분되는 핝스퀴스의 캐릭터들은 그저 놀라움 그 자체다. 심지어 다 훌륭해서 진심으로 감탄스럽다.
바르톨레미오가 역기를 들기 위해 뒤로 누울 때 머리가 자주 걸리는데, 이날은 아예 박다시피 뒤통수를 부딪혀서 뎅몬티도 현웃이 터졌다. 살로메는 가운데 승용앙에게 "에이,비,씨" 하고 말하며 뒤를 잇게 만들고, 맨 왼쪽의 두현앙에게는 본인의 뺨에 키스를 하게 만들었다. 무대 앞 가운데에 서서 "나는 국모에요. 사느냐 죽느냐, 헷갈려요." 하던 살로메가 깃털을 엄청 흘리고 갔다. 왼쪽에는 에스퀴스 1세, 오른쪽에는 피비, 가운데에는 시벨라가 서서 '예상 못 했었었어' 넘버를 부르는 장면에서, 뎅몬티는 바닥을 쓱 보더니 살로메가 흘리고 간 깃털 하나를 줍고 가운데 계단에 앉았다. 그리고선 한껏 뽐내는 자세로 후우, 하고 깃털을 허공에 불고서는, 멋진 척하며 소매까지 정리하는 애드립을 넣었다.
에스퀴스 1세가 자신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말을 들은 뎅몬티는 "두 놈만 제끼면," 하며 눈을 번뜩이며 노래하다가, 그의 호의를 떠올리며 번뇌한다. "아무도 모를거야" 를 마지막으로 쓰러지는 에스퀴스 1세를 본 뎅몬티는 "말도 안돼!!!" 하고 절규하듯 외친다. 그 외침을 끝내기도 전에 바로 눈빛이 돌변하며 "한 놈만 제끼면 다음 백작님은 나다, 몬티" 하고 야망과 광기와 결연이 돋보이는 표정을 내보이는 뎅몬티. 마치 사냥감을 덮치는 맹수처럼, 애들버트 백작으로서 무대 앞쪽에 재등장한 핝스퀴스를 뒤에서 잡아챌 듯한 포즈를 취하며 노려보는 뎅몬티를 끝으로 암전이 내린다.
애도하는 듯하지만 냉랭한 얼굴의 뎅몬티와, 방금 땅에 묻은 사람의 이름조차 되묻는 조문객들의 위선으로 시작되는 2막. 메리유가 역대급으로 훌륭해서 몹시 만족스러웠다. 피비가 있음에도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시벨라에게 이를 악문 채 토해내는 뎅몬티 발음도 좋았고, 돌고 도는 상황을 표현하는 목소리와 표정도 임팩트 있었다. 피비와 시벨라가 같은 대사로 대칭적인 포즈를 취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세 배우의 삼중창이 가장 매혹적으로 어울린 공연이라서 너무너무 좋았다.
애덜버트 백작의 둥그런 배 보정물이 너무 잘 보여서 신경 쓰였다. 무셔워,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핝스퀴스. 유지니아가 피비에게 어느 길로 왔냐고 묻자, 저 외곽 순환하는 도로로 왔겠지, 하고 끼어든 핝스퀴스는 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특유의 걸음걸이로 무대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건배를 하랍신다, 드디어 우리 사촌," 하고 애덜버트가 말을 꺼내는 타이밍에, 잔을 들고 나오던 두현앙이 컵을 올린 쟁반을 대차게 떨어뜨렸다ㅋㅋㅋㅋ 그래서 핝스퀴스는 "피비 다이스퀴스가," 하는 대사를 세 번이나 반복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려 했고, 두현앙은 황급히 퇴장했다 다시 돌아왔으며, 옆에 있던 정열앙은 흘린 물을 닦는 모션을 취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오며 현웃이 터지고 애드립으로 참사를 모면하는 배우들을 향한 응원을 보냈다. 극의 흐름을 깨뜨릴 수준까지는 아닌 재미있는 참사에, 한참 동안 입가의 현웃을 지워내질 못했다. 깨알 같이 혼을 내고, 백작부인은 됐다며 잔을 치우라고 하는 등, 참사에 대응하는 애드립 하나하나가 다들 캐릭터와 잘 어울려서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몬티의 어머니에게 우리 가문의 수치, 라고 칭하는 애덜버트를 퍽 밀어버리는 유지니아. 대여섯 바퀴를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른 핝스퀴스는 으랏차차차, 하며 일어나 많이 놀랬쬬, 하는 평소 디테일을 했다. 퍼덕거리는 날개춤을 유도하며 어그로를 끈 핝스퀴스는 "많이 놀랬죠," 하는 애드립을 또 하고선 정신없이 퇴장한다. 이를 벅벅갈며 유지니아가 자신을 부축하는 피비에게 "많이 놀랬지," 하는 디테일을 넣어서 객석이 또 빵 터졌다. 만찬씬은 주조연 배우들이 모두 등장하여 각자의 디테일을 양껏 뽐내서 흥미진진했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걱정과 우려와 식은땀이 가득한 표정으로 "앞주머니 속에 독약 들어있다" 하며 기회를 엿보는 뎅몬티. 예기치 못한 순간 애들버트가 쓰러지고, 뎅몬티는 마침내 백작이 된다.
뎅몬티는 경관의 자기소개를 듣고선 피비를 먼저 들여보낸다. 그리고나서 경관을 향해 "실례지만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건지?" 하고 물어야 하는데, "실례지만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나요?" 하고 직전의 대사와 똑같이 질문했다. 다행히 두현앙이 직전과 똑같이 "없습니다," 하고 재차 말하고선 "이 경사스런 날에 유감입니다만," 하며 평소 대사로 이어갔다. '잠깐 스톱 뭐' 넘버에서 뎅몬티의 형형한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강하고 선명한 발음으로 짓씹듯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나열하는 표정과, 경관을 향해 애써 침착하게 감정을 죽인 채 위선적으로 태연하게 지어보이는 표정이 극렬하게 대비된다. "참 무례한 처사다 / 대단한 실례야 / 이 몸이 백작인데 / 아 이 몸이 백작인데"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기득권의 오만함 그 자체다. 법정에서 뎅몬티가 온몸으로 내뿜는 강렬한 열기도 놀랍다.
이전에는 마냥 순수하고 해맑아 보이던 천시 핝스퀴스는, 이날 묘하게 어른스러웠다. "하시는 일마다 신화를 창조하십시오. 항상 전진하십시오. 혜성처럼!" 하던 디테일에 덧붙여, "저 아직 멀었어요. 저 아직 앤디." 하고 앤옵 이름을 강조해서 빵 터졌다. 그렇게 퇴장하는 천시의 뒤에 대고 "포기하지 않겠네!" 하며 한참 시선을 떼지 못하던 뎅몬티. 간수인 정열앙이 백작님? 하며 세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돌아봤다. 피비와 시벨라의 재치 덕분에 풀려난 뒤 일기장을 부르짖으며 포효하는 뎅몬티의 얼굴이 몹시 흉흉하여 오싹할 정도였다. 리코더를 단소처럼 불고 마지막에 삑삑, 소리를 내며 긴장감을 높인 천시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앞주머니 속에 독약 들어있다" 며 뎅몬티를 내려다본다. "끝난게 아냐" 하는 앙상블의 화음 끝, 뎅몬티를 향해 검지를 들어 삿대질한 핝스퀴스가 빰, 하는 소리에 맞춰 양팔을 벌린다. 마치 1막 마지막의 뎅몬티가 백작 애들버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후기를 쓰고 있는 와중에, 한뮤어에서 한지상 배우가 젠틀맨스가이드의 다이스퀴스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전히 이 배우의 인생캐는 지괴라고 생각하지만, 다채롭고 놀라운 한지상 배우 특유의 매력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1인다역의 다이스퀴스로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 몹시 기쁘다. 매번 차기작이 기대되는 애정배우이기에, 다양한 작품에서 오래오래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빠얌 또한, 이 극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감사했다. 올해 무대 차기작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앞으로도 이 마음가짐 그대로 꾸준히 무대 위에 서주길 소망해본다. 예기치 못한 좋은 배우들의 참여 덕분에, 즐겁게 극을 마주할 수 있어 행복했다. 남은 서울공과 지방공까지 무사히 마치시고, 다들 다음 작품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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