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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키스

in 엘지아트센터, 2017.12.22 8시 공연



전동석 황태자 루돌프, 민경아 마리 베체라, 김준현 타페 수상, 송용태 프란츠 요제프 황제, 리사 라리쉬 백작부인, 박혜미 스테파니 황태자비. 동돌프, 경아마리, 준현타페. 더라키 자첫. 원래 잡아 놓은 자첫 표는 1월이지만, 할인이 뜨기도 했고 동돒이 잘생겼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자첫을 당겼다. 어쩌다 보니 뮤 입덕 후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전동석 배우를 만나고 있는 것 같다. 15년 이브에 프랑켄 동빅, 16년에 팬텀 동릭, 그리고 올해는 황루의 동돌프를 만났다. 거의 2년 만에 가면 없이 잘생긴 맨얼굴을 맘껏 보고 와서 눈이 흡족했다. 2시간 반 내내 저 미모가 실화인가, 저 피지컬이 가능한가, 를 속으로 수백번 되물었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였다. 물론 이 배우 강점인 노래도 좋았는데, 정석적인 성악 발성에 집중한 전작 팬텀과는 다르게 여러가지 발성을 유려하게 섞어서 노래했다. 연기도 내 기준에선 괜찮았다. 고작 네 작품이긴 하지만, 모촤를 제외하고는 배우 필모를 다 챙겨보고 있는데 확실히 점점 더 좋아지는 게 보인다.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고민한 흔적이 보이고 단조롭던 표현력이 보다 다채롭게 확장되고 있다. 물론, 이번 작품의 루돌프가 굉장히 다각적인 측면에서 해석되고 표현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라고 생각되기에 성에 안차는 지점도 분명하다. 캐릭터 분석을 제대로만 한다면 아주 흥미진진하게 회전을 돌 수 있는 작품이어서 아쉬운 동시에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내년 대극장 라인업이 심상치 않아서 총알 아껴야 해. 


극은 엄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취향범위 안이긴 하다. 1막보다 2막이 훨씬 좋았고, 창녀 가득한 술집 장면 2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너무나 싫었다. 주조연 캐릭터들 각각의 매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나, 그 캐릭터들 간의 관계성은 부족한 개연성으로 인해 설득력이 몹시 떨어졌다. 삼연 씩이나 된 극이어서 이야기의 전개나 구조가 필히 지녀야 할 완결성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는데, 사랑과 혁명이라는 두 주제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휘청대는 연출이 캐릭터의 행동변화를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서 관객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번뇌하고 고민하는 혁명가의 노래가 훨씬 마음을 울렸다. 넘버는, 아주 취향인 곡이 절반, 별로인 곡이 절반이었다. 와일드혼 곡들이 크게 취향이 아니지만 그의 성향이 담뿍 담긴, 두 인물이 강강으로 치닫고 대립하는 넘버들은 아주 사랑한다. 특히 이번에 처음 만난 배우들이지만 김준현 배우나 박혜미 배우처럼 관객의 귀에 딕션을 꽂아넣는 정확하고 시원시원한 음색이 각자의 넘버들에서 매우 부각되어 곡을 한층 생동감있게 만들었다. 매번 마음에 차지 않는 엘아센 음향 속에서 모든 가사를 완벽히 전달해준 배우가 몇 없어서 아쉬웠다. 시라노 앙상블 떼창은 모든 가사가 전부 잘 들렸는데 왜 엠개극 앙상블 떼창은 정확하게 귀에 안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대극장은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맛으로 보는 건데, 무려 븹 중에 븹이라는 8열 중블에 앉았음에도 이렇게 아쉬워해야 한다는 게 지겹다.



※스포있음, 몹시 주관적임※


이 극은 이엠개의 대표극 중 하나인 엘리자벳과 같은 시대, 같은 가족을 다른 시점에서 진행된다. 극 스토리의 개연성은 엘리자벳이 훨씬 탄탄한데, '엘리자벳' 이라는 주인공의 인생을 다루는 큰 줄기를 토대로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적절하게 추임새처럼 넣어 이야기 전개를 한층 매끄럽게 만든다. 반면 더라키는 루돌프가 주된 주인공이지만 다른 주조연 캐릭터의 비중도 상당히 있는 편이다. 초재연의 '황태자 루돌프' 라는 극 제목을 삼연에서 '더 라스트 키스' 로 바꾸는 시도를 감행하였는데, 바꾼 이름이 훨씬 극에 적합하다. 그러나 엘리자벳에 비해 훨씬 짧은 시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임에도 시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듬성듬성 끊어진 흐름을 어설프게 메꾸는데 급급하다. 장면과 장면 사이 생략된 부분에 반드시 존재하는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짐작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 속에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는 '여백' 을 잘 다루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작품을 가능케 한다고 믿는다. 연출이 적절하게 여백을 구성하여 적합한 타이밍에 활용한다면, 배우가 더 자유롭게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관객 또한 더 다채롭게 상상하고 해석하여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더라키는, 이 점이 충족되지 않아 불만족스러웠다. 루돌프라는 인물이 어떠한 상황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이러한 삶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어쩔 수 없는 역경과 절망에 부딪히게 되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왜 그러한 선택을 하였는가를, 논리적으로 이어나가질 못한다. 극이 중심을 못 잡고 사상이든 사랑이든 제대로 보여주질 않으니까, 엘리자벳이든 유럽사든 실제 역사의 뒷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관객만 루돌프의 생각과 행동을 짐작하고 극의 전개를 이해할 수 있겠더라. 이것도 그나마 동돒이 나름대로 캐릭터의 정체성을 정확히 잡고 연기한 덕분이기도 하다. 사상을 토로하는 장면과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 각각에서 그 테마만큼은 정확히 짚어 표현해서, 적어도 장면장면들의 감정선은 확실하고 선명했다. 문제는 그 장면들이 따로 논다는 거지만. 


그 문제가 극대화 된 캐릭터가 마리였다. 경아마리도 사상을 꿈꾸는 장면과 사랑에 대한 열변을 토하는 장면 각각은 무척 좋았는데, 1막 피날레 '사랑이야' 넘버부터 갑자기 가장 중요한 가치를 사랑으로 선회하며 2막에서는 거의 사상 따위는 다 버렸다는 듯이 행동하고 고뇌하고 아파하는 마리 캐릭터 자체가 너무 극단적이었다. 극 초반에 사상에 대해 그렇게 열변을 토하던 인물이 2막에 가서는 완전히 달라져버려서 감정선 따라가기가 몹시 벅찼다. 중간에 몸 파는 여성들 사이에 뛰어들 때 혼자 새하얀 옷 입고 나오는 연출 진짜 태워버리고 싶었고.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에 성녀 프레임 좀 작작 씌웠으면. 황태자비 스테파니 캐릭터도 후반부가 마음에 안들었다. 자존심 세고 오만하며 고귀하고 아름답지만 비틀리고 못된 이 왕족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지위와 부와 명예, 무엇보다 현 상태 유지를 추구하는 보수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이다. 그가 루돌프를 사랑하지 않고 깔보고 비웃고 경멸한다는 점이 극 내내 명확하다가, 2막에서 일관성을 잃는다. 솔로곡 넌 내꺼야 넘버나 마리와의 듀엣인 넌 내꺼야 맆(그 없는 삶) 넘버에서 내보이는 루돌프에 대한 집착의 근간에 사랑이 담긴다. 절절한 사랑까진 아니었지만, 그저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이유로 인한 결혼이 아니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해서 조금 아쉬웠다. 사랑 받지 못하는 자신과 대비되는 마리를 향한 질투가 아니라 지금껏 무시해온 루돌프가 분명한 목적의식도 없이 자신을 모욕했다는 상처난 자존심을 더 강조해서 표현하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스테파니 캐릭터 정말 마음에 들었고 박혜미 배우도 무척 잘해서 고마웠다. 노담의 플뢰르 이미지를 더 매력적으로 부각시킨 캐릭터였다. 그리고 라리쉬는 다 좋았는데 루돌프랑 언제부터 친한 건지 언질 좀 해줍시다. 1막에선 딱 한 번 말 섞고 데면데면하다가 2막에선 갑자기 절친이 되서 당황스러웠다. 요제프도 결국 루돌프에게 그렇게 모질게 군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결국 아들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얘기할 거면, 초반에 복선을 옅게라도 좀 깔았으면 좋겠다. 타페 수상 캐릭터가 가장 일관성 있다. 시원시원한 넘버들도 많아서 훨씬 매력적이고. 틀린 사상을 지닌 악역이지만, 타페야말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을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이자, 시대가 '절대 바뀌어서는 안된다' 고 굳게 믿으며 그 목표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설득력 있는 인물이었다. 



캐릭터 얘기가 길어진 건, 이 극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동돒이 생각보다 힘을 잘 뺴고 연기해서 좋았고, 마이크가 켜져 있거나 본인이 그 장면에서 주인공이 아닐 떄에도 계속 연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이며 중얼대는 디테일이 많았는데, 특히 마리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그의 마지막 대사 "어쩌면요?" 를 입모양으로 따라하며 짓는 표정이 취저였다. 연출의 한계 속에서 사상과 사랑에 적절히 균형을 잡아 영리하게 연기해서 좋았는데, 루돌프 라는 캐릭터가 필히 지니고 있었을 '유약함' 을 고민해보면 좋을 거 같다. 루돌프는 '복잡' 하게 엉킨 상황과 고민들 속에서 가만히 주어진 바에 순종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저항을 실천하는 방법에 있어, '줄리어스 펠릭스' 라는 익명에 숨어 소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선동을 할 뿐, 헝가리를 독립시키고 왕이 되어달라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행동 앞에서는 선택을 망설이고 주저한다. 물론 반역이라는 중대차한 사안이긴 하지만, 글로써 열변을 토하던 열성적인 사상을 지닌 혁명가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행할 수 있는 무모하고 급진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하기 직전에서 번뇌하고 고민하는 루돌프를, 유약함이라는 성향을 부각하여 충분히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다. 동시에 그 유약함이 사상과 사랑을 동시에 짊어진 이 청년의 고뇌를 보다 유연하고 유려하게 풀어낼 수 있는 요소로 활용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전작들에서 전동석 배우가 표현했던 소년미를 무척이나 애정하는 동시에 그의 큰 장점이라고 믿기에, 이번 작품 또한 그 강점을 보다 부각시키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리라 생각해봤다. 물론 아주아주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그렇게 연기한다면 완벽한 내 취향일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다음달에 카돌프 잡아놨는데 어떤 루돌프를 보여줄 지 기대가 된다. 동돒도 그 이후에 한 번 더 보러가야지. 무대 위에 새하얀 눈이 흩뿌려지는 아름다운 극이었다. 2막에서 눈 많이 뿌리니까 객석까지 잔재가 날아와서 잘못하면 기침 나겠더라. 배우들 목에 안 좋은 거 아닌가 모르겠네. 커튼콜 때 커다란 눈송이가 바로 앞으로 날아와서 손바닥에 살짝 올렸는데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는 걸 보니 미세먼지를 크게 유발하진 않을 것 같긴 하다. 프레스콜에 동돌프와 경아마리의 알 수 없는 그곳 듀엣 넘버랑 2막 첫 넘버의 동돌프 침대씬이 남아서 만족스럽다. 오슷은 안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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