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폴레옹
in 샤롯데씨어터, 2017.08.18 8시
마이클리 나폴레옹, 박혜나 조세핀, 정상윤 탈레랑, 백형훈 뤼시앙, 기세중 앤톤, 박송권 바라스, 황만익 가라우. 마폴레옹, 혜세핀, 톨레랑, 켱시앙, 기앤톤, 송권바라스, 만익가라우. 마혜나톨켱기. 나폴레옹 자둘, 마폴레옹 아마 자첫자막.
다 떠나서, 나폴레옹을 관극할 예정이라면 켱시앙과 기앤톤부터 맞추고 시작해야 한다!!! 켱기 페어가 이날 첫 조합이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던데, 진짜 쇼미 짜증난다ㅋㅋㅋㅋㅋ 주연 배우보다 조연 배우 캐스팅부터 확인하고 표를 잡아야 한다니^_ㅠ 나폴 회전 도는 관객이라면 두 배우를 각각이라도 꼭, 반드시 봐야 한다. 시원시원한 넘버 소화력에 곡 퀄리티가 달라지는 건 물론이고, 캐릭터를 살리는 인상적인 연기와 빛나는 존재감이 이야기의 결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버린다. 비중이 적은 캐릭터도 배우 역량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그래서 극 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음을 경험했다.
※스포있음※
켱시앙은 초반에 순수하고 열정만 있는 풋내기 시골 출신 촌뜨기다. 형을 따라간 파티장에서 빨리 이 위선자들의 소굴을 벗어나고 싶다는 듯 전전긍긍해 하며 구석에 쭈그러져 서 있다가 품에서 노트를 꺼내 들고 읽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에 새로운 광경을 마주한 소년 같은 미소와 호기심이 번지며 파트너 없이 혼자 팔을 들고 스탭을 따라 밟다가 벽에 부딪히고 화들짝 놀라서 다시 자세를 고친다. 혹여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았는지 옆을 힐끔힐끔 보며 눈치를 보다가 부딪힌 벽을 쓰다듬으며 어후, 하는 표정으로 입에 바람을 넣기도 한다. 그리고 재판정 혁명 씬에서도 형형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이끄는데, 나폴레옹의 치부 얘기가 나오기 전 마폴과 눈빛도 교환하고 귓속말도 하며 계획을 짠다. 그의 가슴을 겨누려 칼을 뽑아드는 자세도 군인 같이 절도 있고 멋있다기 보다는, 열의만 흘러 넘치는, 칼이 어울리지 않는 혁명가 느낌이었다. 마폴이 한 발짝 가까이 오며 칼 끝이 그의 가슴을 거의 찌르자 형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 눈빛이 흔들리는 것도 좋았다. I'm The Revolution 넘버가 이날 정말 좋았는데, 강렬하되 설득력과 절박함이 묻어나는 켱시앙의 설득이 매력적이었다. 진심으로 형을 사랑하고 아끼는 동생이어서, 찌르라는 마폴의 말에 형 정말 나한테 왜 이래, 이럴거야? 하는 애절한 눈빛으로 애원하듯 쳐다보다가 결국 칼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은 채 절박하게 마음을 돌려달라 말하는 감정선도 훌륭했다. 감옥을 찾아온 마폴 앞에서는 비록 무릎을 꿇었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신념을 결코 굽히지 않았으나, 그가 뒤돌아 나가자마자 힘이 확 풀린 듯 자세가 무너지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심장을 부여잡는 고통을 보여줬다. 솔로곡 역시 훌륭했고. 2막은 의사 역으로 잠깐,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만 나와서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빅토리를 선창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청아하게 시원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정식으로 뮤에 입덕하기도 전인 쓰루더도어 초연에서 2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실력이 늘어서 감탄스럽다. 켱시앙 최고였다.
그리고 기앤톤. 배우 자첫이어서 첫 만남의 설렘이 조금 있었는데, 일단 노래가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고 시원스럽게 짱짱해서 저절로 광대가 치솟았다. 성량이 크고 음색이 깔끔한데다가 단정하게 감정을 실어올린 노래가 뮤지컬 넘버 특유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며 극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캐릭터 이해도가 높아서 행동 하나하나에서 '앤톤'의 성격이 묻어났는데, 나폴레옹이 발코니에서 인사할 때 톨레랑과 혜세핀의 기싸움 사이에서 과연 자신들이 먼저 나가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눈치를 보면서 클라리시를 섬세하게 챙기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2막 Last Crusade 초반 정말 훌륭했다. 프레스콜보다 훨씬 좋았음. 그리고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던 러시아 장면 또한 아주 잘 살려냈다. 절망적인 최후의 순간 클라리시의 환상을 발견하고 마치 엄마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온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어내는데, 훅 변하는 공기에 담아내는 감정 전환의 순간을 이토록 짜릿하게 보여주는 연기력에 그 캐릭터의 아픔이 섬광처럼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이 극을 보면서 울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안했는데, 그 눈빛, 그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 극과 거리를 두고 있던 내 마음이 완전히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눈물 어린 눈으로 저기 클라리시 좀 보라며 장인인 헨리 원수의 몸을 흔들다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를 느끼자, 마치 유일한 온기였던 마지막 성냥불이 꺼져버린 성냥팔이 소녀처럼 훅 현실의 냉기를 마주한다. 떨리는 입술, 손 끝으로 다시 절망에 빠졌다가, 멀리 환상 속 따뜻하고 황홀한 빛 안으로 재차 집어삼켜지며 눈물 가득한 눈으로 온 영혼을 다해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 소년 같은 얼굴. 고단한 삶의 마지막 불꽃 같은 환희. 와, 정말 기앤톤 연기 너무 좋더라. 추후 차기작들에서도 자주 뵙시다.
그리고 이제 마폴 얘기 좀 해보자. 아무리 자둘 관극이라지만 주연 배우 얘기를 이렇게 마지막에서야 해야겠냐고. 록호쇼의 마랑큰에서 헤드윅으로 넘어가기 전, 디바가 아닌 마이클리 배우를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두 극 사이의 기간에 마폴을 보게 됐다. 핝폴로 자첫을 하기도 했고, 마이클리 배우의 딕션에 익숙해지기도 해서 내용 이해에 크게 무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기본적인 '대사 딕션'이 아쉬웠다. 이것만 아니면 어떤 극의 어떤 캐릭터든 주변에 마음껏 거리낌 없이 추천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뭐,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이 단점마저 다 수용한 있는 그대로의 이 배우를 몹시도 아끼고 사랑하지만 말이다. 마폴의 노선은 열정은 있으나 내면의 유약함에 톨레랑에게 휘둘리고 상황에 휩쓸리는 이미지일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서 신선했다. 왜곡된 자신만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믿으며 그 확고함에 스스로 파멸로 치닫는 야욕적인 지도자지만, 특유의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질 덕분에 말년의 그 비참한 끝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배우 본인이 디폴트로 지닌 이 홀리함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배우 역시 그 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노선으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해석해서 내보여서 매번 만족스럽다. 하지만, 관객이 잘 알고 있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평가를 확고히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극이기 때문에, 내 해석과 다른 지점이 조금 불편했다. 핝폴을 볼 때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동정'의 감정이 든 것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유약하며 방황하고 고민하지만 나름의 신념과 강단으로 제 삶을 확고히 살아가는 캐릭터를 무척 사랑하지만,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 그러한 해석을 뒤집어 씌우는 건 내 신념과 심각한 괴리가 있다. 이래서 실존 인물 혹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2차 창작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아무튼 실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아니라, 완전히 재탄생 된 새로운 캐릭터라고 자가 해석을 끼얹는다는 전제 하에, 마폴은 매력적이고 훌륭했다. 이런 류의 넘버들을 양껏 불러주는 마이클리 배우의 목소리를 무척 오랜만에 듣는구나 싶어서 반갑기도 했고.
가장 좋아하는 넘버가 1막에서는 I'm The Revolution 및 Sweet Victory Divine 이고, 2막에서는 The Last Crusade 다. 이 세 곡에서 마폴이 정말정말 좋았다. 스윗디바인은 마지막 가사를 "Sweet Victory BE MINE" 하면서 뽑아내는데, 그 길고 탄탄하고 매력적인 음색에 새삼 심장이 녹아났다. 그리고 라스트 크루세이드도 연기와 대사톤까지 다 좋았다. 핝폴과 디테일도 박자 변주도 가사도 조금 다르다. 중간 막 내려온 뒤에 핝폴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 뒤 속삭이듯, "그래, 난 야망이 있.다." 라고 꾹꾹 눌러서 말하는데 마폴은 "그래↗ 난 야망이 있었지" 하고 음정을 넣어 '과거형으로' 말한다. "당신들은 날 잊을 수 없어" 하는 핝폴과 다르게 마폴은 "당신들이 날 지울 순 없어" 하고 부르더라. 이런 노선 차이 완전 사랑하구요ㅠㅠ 흐으 요새 시라노도 그렇고 나폴도 그렇고 대극장 극에서 배우마다 노선이랑 디테일 다른 거 대조하면서 관극하는 거 너무 즐겁고 짜릿하다ㅠㅠㅠㅠ
다른 주연 배우들은 지난 리뷰에서 다뤘으니까 넘어가자. 클라리시 역의 김사라 배우는 지난달보다 더 좋아졌더라. 이 배우랑 테레즈 역의 방글아 배우의 목소리가 꾀꼴꾀꼴한데, 방글아 배우 노래가 정말 안정적이고 예쁘다. 다른 극에서도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세핀에게 거울 들이미는 배우가 김하나 배우 맞나? 포우 했던? 목소리 새삼 예뻐서 눈길이 갔다. 몇몇 남자 앙상블도 목소리가 빼어날 정도로 귀를 치고 들어왔는데, 누군지 모르겠다는 게 슬프다. 대극장을 사랑하는 이유인 앙상블 떼창이 무척 만족스럽다. 극의 장점이 넘버와 배우 뿐이라니. 휴우. 극을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뜯어고치고 싶은데, 이야기의 전개와 연출의 재설정을 모든 장면마다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며 다듬어보고자 하는 열정이 전혀 생기질 않는다. 그것도 극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거임. 넘버만 너무너무 좋은 극에 애정배우들이 한가득인 경우, 덕후는 매우 고통스럽다. 사실 짜증난다. 예술작품을 이렇게 안이하게 올려도 되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고민부터 시작하여, 왜 그럼에도 쿨하게 관극을 포기해버릴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자괴감까지 휘몰아친다. 지겹다, 진짜ㅋ
정확히 2년 전, 2015년 8월 18일, 바로 이 공연장 샤롯데씨어터에서 마저스와 재유다를 봤었다. 아마 김음감님이셨겠지. 괜한 JCS 지뢰를 밟으며, 지나간 공연에 대한 그리움만 짙어졌다. 핝폴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고 싶은데, 고민이 되네.
'공연예술 > Music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폴레옹 (2017.09.26 8시) (0) | 2017.09.27 |
---|---|
벤허 (2017.09.19 8시) (0) | 2017.09.20 |
시라노 (2017.08.16 8시) (0) | 2017.08.17 |
나폴레옹 (2017.07.25 8시) (0) | 2017.07.26 |
록키호러쇼 (2017.07.15 2시) (0) | 2017.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