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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in 샤롯데씨어터, 2017.07.25 8시 공연
한지상 나폴레옹, 박혜나 조세핀, 정상윤 탈레랑, 박송권 바라스, 진태화 뤼시앙, 박유겸 앤톤, 이상화 가라우. 이하 원캐. 지폴레옹, 혜세핀, 톨레랑. 나폴레옹 및 핝폴 자첫. 핝폴레옹 생일. 하나카드vip 행사 단관일. 무대인사가 있었는데 톨레랑이 아주 능숙하게 진행했다. 다만 마지막 커피 쿠폰 주는 좌석번호 내가 앉은 번호를, 그것도 두 번이나 뽑았으면서! 앞 당첨자와 겹친다고 굳이굳이 다시 뽑은 건 좀 미웠다 흑흑ㅋㅋㅋㅋㅋㅋ 극과는 다르게 핝폴을 애기 대하듯 하는 것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인이 너무 재미있어서 극이 다 휘발될 뻔했으나, 어찌저찌 기억을 더듬어 리뷰를 시작해보자ㅎㅎ
워낙 혹평이 많아서 기대를 아예 내려놓고 갔는데, 꽤 재미있었다. 전반적으로 '좋은 극'이라고는 결코 평할 수 없긴 했지만, 그 평가의 근간이 되는 요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약간 핀트가 달랐다. 기대치를 버리고, 엄청 길고 지루하며 해설자가 무대에 상주하면서 한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주르륵 나열하는 극이라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각오한다면 기나긴 런닝타임이 그리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닐 듯 싶다. 물론 저 모든 걸 감내하고 굳이 노력을 들여 예매창을 켜고 돈을 들여 표를 구매하고 시간을 내어 공연장을 방문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부터 끝낸 뒤에 말이다. 배우든 스탭이든 매 공연 열과 성을 다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이는 관객 입장에서는 비판할 권리가 있다. 왜 이렇게 밑밥을 깔고 시작하냐면, 이 극을 올린 제작사 쇼미디어그룹 만큼은 필터링 없이 대차게 깔 예정이기 때문이지. 일을 못하는 건 차치하고, 극이라도 좀 재미있게 잘 만들기만 해도 이렇게까지 극혐하진 않을텐데. 이 캐슷에 이 음악이었으면 생각 없이 돌았겠지만, 쇼미극이라서 자제할 예정이다.
도입 사족이 너무 길었다. 일단 스포 없이 간략하게 정리해보고 배우 디테일이나 내용 전개 등은 뒤에서 짧게 얘기해야겠다. 원래 아예 극호인 극보다는 애매하거나 완전 불호인 극이 더 할 말이 많은 법. 나폴레옹은 내 취향에 들어맞는 부분이 얼추 있어서 약불호임에도 관극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나폴레옹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다룸에 있어, 어느 정도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한 점은 좋았다. 다각도로 평가될 수 있는 인물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여주었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그를 미화하게 만들 만한 여지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폴레옹의 대사들에서 위선과 선동, 자가당착 및 변절을 고스란히 인지하면서, 보다 냉정하게 그의 삶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감이 극 내내 유지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식이 관객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는 점이다. 보는 입장에서는 무대 위 캐릭터에 대한 강한 공감이나 비판 등 감정적인 끌림이 있어야 이야기에 몰입하기 쉬운데, 이 극은 나폴레옹의 인생 굴곡에 대해 큰 감흥이 들 정도의 매력을 그에게 담아내지 못했다. 미화하지 않으면서 매력적으로 다듬는다는 게 무척 까다로운 일이란 건 알지만, 그걸 해내야 주인공 이름을 내건 주인공 원탑극으로써 '잘 만든 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포우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배우들의 고군분투나 멋진 음악만으로는 극 자체의 한계를 결코 넘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연출과 프로듀서에게 향하는 거고.
연출 쪽 얘기 마저 하고 배우 얘기로 넘어가겠다. 일단 무대연출은 생각보다 좋았다. 쇼케이스 보면서 바람사 무대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건가 싶어서 걱정이 컸는데, 생각보다 무대 구조물이 다양했고 위치를 잘 설정해서 여러 장면의 다양한 장소를 영리하게 배치했다. 다만 엘바섬 나폴레옹 집은 더 튼튼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배우가 지나가기만 하면 벽이 막 흔들려서 몰입을 방해했다. 중간 불투명막을 여러 번 사용했고, 무대 제일 안쪽은 주로 배경처럼 활용했다. 전반적으로 배우들 동선이 무대 앞쪽 객석과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샤롯데가 은근히 가로폭이 좁고 안으로 깊은 무대란 말이지. 샤롯데 1층을 JCS 이후 거의 2년만에 간 거였는데, 역시 무대와 객석 간 거리가 엄청 가까워서 좋았다. 특히 이날 앉은 자리가 나폴레옹 무릎 꿇었을 때 시선 맞는 자리여서 좋았다. 초반 코르시카 섬에서 제압 당한 핝폴이 무릎 꿇었을 때 눈이 딱 마주쳐서 순간 눈싸움을 잠깐 하다가 결국 못 참고 먼저 깜빡거리니 그제야 시선 옆으로 돌리더라ㅋㅋ 2막에선 톨레랑과 눈 두어번 마주쳤고. 역시 관극은 자리가 좋으면 몰입이 확 높아진다. 조명연출은 불호. 샤롯데라서 평타는 치겠거니 했지만, 2막 초반 넘버들의 그 총천연색 조명 색감은 도저히 무난하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냥 포우 봤을 때와 감상이 똑같다. 어떤 건 좋은데 나머지, 특히 전반적 색감이 극불호다. 음악은, 좋았다. 좋았는데 배우 노래의 멜로디를 오케 반주가 받쳐준다는 느낌이 거의 없어서 대체 어떻게 노래를 외우고 부르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쇼케 때 공개된 넘버 몇 개를 미리 듣지 않았더라면 관극 내내 엄청 힘들었을터다. 물론 이 점은 취향 타는 지점이고, 쇼케이스나 프레스콜 영상을 통해 반복 청취하며 익숙해진 일부 곡들은 좋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넘버를 부르는 배우들이 워낙 안정적으로 잘 소화해주니 들을 때 크게 거부감이 없다. 여기도 킬링넘버가 없는 거 같은데 자둘하면 달라지려나. 음악과 관련하여 단언할 수 있는 하나는, 오케스트라의 훌륭함이다. 김성수 음감님을 엄청 좋아한다는 사적인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풍성하고 다채로운 악기의 음색들이 아름다웠다. 이외에 안무나 무대 동선, 의상, 기타 연출들은 크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탈레랑을 제외하고는 극이 거의 쏭쓰루 수준으로 전개되는데, 가사에 너무 많은 걸 넣어서 오히려 넘버도 내용전개도 기억에 남질 않는다. 시라노는 '대사'가 많다면, 나폴레옹은 '가사'가 많다. 반복되는 대사를 통한 "내가 다가가는 걸 적들이 몰라야 한다" 거나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등, 나폴레옹 하면 떠오르는 대사들을 두어 차례 반복하는 연출은 괜찮았다.
이제 배우 얘기 간략하게! 한지상 배우는 데놋 이후로 6개월 만에 만난 거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작년 초 프랑켄 이후로 1년 반 만이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일단 비주얼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만족스러웠고, 노래도 엄청 짱짱해서 귀가 행복했다.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시원하고 잘생긴 그 목소리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새삼 인지했다. 시라노와 비슷한 수준의 나폴레옹 원탑극이어서 공연 내내 무대 위에 있다. 잠깐 안 나온다 싶으면 다음 장면에 바로 옷 갈아입고 나옴ㅋ 그러니 나폴레옹 역 배우를 좋아한다면 적어도 한 번 쯤 볼 가치는 있습니다! 박혜나 배우는 데놋으로만 만났었는데 처음으로 분장 심하지 않고 아름다운 매력이 뿜어나오는 역할로 만나서 반가웠다. 노래야 당연히 좋았고, 개성 있는 조세핀이라는 캐릭터를 멋지게 표현해서 아주 좋았다. 다만 의상 진짜ㅋㅋㅋㅋ 안 어울리고 안 예쁘다. 첫 붉은 드레스도 그렇고, 2막 초반 하늘색 드레스도 그렇고, 가슴 위쪽 의상이 총체적 난국이다. 어깨뽕도 안 예쁘고, 팔을 감싸는 반투명 망사 무늬도 촌스럽고 시대와 안 어울린다. 의복사에 문외한이어서 고증까지 운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른 예술작품에서 접한 18-19세기 유럽 복식은 결코 저렇지 않았다. 메이크업도 너무 어린 느낌이 강해서 조세핀이라는 캐릭터와 괴리가 느껴진다.
이 극의 진짜 주인공은 탈레랑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이 캐릭터의 비중이 매우 높다. 탈레랑 배우를 좋아한다면 역시 한 번 쯤 볼 가치가 있는 극입니다!!ㅋㅋㅋㅋㅋ 쇼미는 주인공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도 사랑하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선호한다. 이런 복잡미묘한 관계성이 아주 흥미진진한 소재인 건 분명하지만, 너무 과한 조미료는 오히려 주인공의 존재감이나 극 전체를 통과하는 주제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게다가 대중성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는 대극장 극에서는 이런 전략이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는 걸, 분명히 포우 올리면서 느꼈을텐데 대체 왜 모를까. 연출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방법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배우들이 행간을 읽어 저마다의 캐릭터성을 구축하여 고유한 매력을 창조한 덕분에 포우 초연이 그나마 덕극으로써 팔린 것이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기반성이 있었다면 이 극을 올릴 땐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극 뚜껑은 열렸을 뿐이고ㅋ 연말 포우 재연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몹시 궁금하다. 아무튼 정상윤 배우는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ㅋㅋㅋㅋㅋㅋㅋ 개그 요소를 엄청 잘 넣고 잘 살린다. 엉덩이 씰룩씰룩 거릴 때 제대로 터졌고, 그 이외에도 어투나 표정, 대사를 말할 때의 호흡 텀과 눈빛, 동작들이 너무나 능숙하고 강렬해서 인상적이었다. 노림수가 강해도, 아예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버리면 오히려 내려놓고 감상하게 되고, 이 배우는 그걸 참 잘 활용한다. 아무튼 톨레랑은 가타부타 말할 것 없이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토그리보다 좋았다.
다른 캐릭터는, 굳이 트리플 쿼드까지 필요 없는 비중이다. 바라스는 트리플 배우들 모두 재능 낭비고, 뤼시앙은 1막에서 꽤 많이 나오고 솔로도 있어서 괜찮은가 싶었는데 2막에서 실종됨ㅋ 앤톤은 나름 역할이 있지만 상대 배우도 원캐로 충분히 소화하던데 굳이 이 역만 트리플까지 필요할까 싶었다. 송권바라스는 노담에서 보고 처음 만나는 것 같은데 그 너저분한 가발이 없으니 엄청 얄쌍하니 잘생기셨더라. 진태화 뤼시앙은 연기는 나쁘지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크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유겸앤톤은 솔로 노래야 잘했지만 아직도 캐릭터로서 극에 같이 동화되는 느낌이 적다. 궁금한 조합은 기앤톤-켱뤼시앙인데 왜 없죠.....ㅎ..... 원캐로도 충분히 가능한 역할은 트리플, 쿼드로 캐스팅 좀 안했으면 좋겠다.
※스포주의※
으어, 나폴 리뷰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일인가ㅠ 심지어 자첫인데. 그러나 핝폴 연기나 디테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보자ㅋㅋ 지폴레옹, 정말 잘 어울린다. 지괴 같이 인간을 초월한 존재나 지라이토 같은 소악마 이미지에 찰떡이라고 생각했던 배우인데, 강건하고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청년부터 가장 높은 권력자의 위엄, 그리고 몰락한 영웅의 이미지까지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하리라고는 미처 기대하지 못했다. 정말 잘 함. 1막 초반 톨레랑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독수리 같은 눈빛"이 형형하게 빛난다. 권력을 쥐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시위하는 군중을 향해 대포를 겨누고 잠시의 정적 뒤 생명력 없이 흐릿하지만 분명한 발음으로 "발사" 라는 한 단어를 읊조리듯 명령하는 목소리에 수많은 감정이 담긴다. 재판정에서 바라스를 끌어내린 뒤 군중들고 부르는 넘버 'The Day Is Won' 에서 당신들 한 명 한 명 덕분이라며 눈을 마추지고, 마지막 부분에서 무대 저 안쪽에 다른 사람들과 일열로 서서 객석을 향해 마치 당신들도, 하는 눈빛을 보내며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슥 손짓한다. 'I am the Revolution' 에서 탈레랑의 유혹적인 제안에 꽁꽁 억눌러왔던 야망이 커다란 눈동자 안에서 넘실거리며 차오른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대관식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한 'Sweet Victory Divine' 속 감정이 고조되며 가장 강렬하고 웅장하게 권력의 최정점에 선 인간이 경험하는 절정의 찰나를 내뿜는다. 황제는 꼿꼿하게 선 자세에서 등은 살짝 뒤로 젖히고 배 부근의 몸 중심부는 앞으로 내미는 권위와 위엄 넘치는 자세를 유지한다. 누군가는 가혹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는 탈레랑의 말에 대답하는 넘버 'The Last Crusade' 의 오만하고 위압적인 설득 아래에 깔린 확고하고 단단한 신념이 온 세상을 삼켜버릴 듯 묵직하게 좌중을 압도한다. 러시아 원정 실패 후 엘바섬에 유배됐을 때 선명한 듯하면서 공허한 눈동자와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말 속에 한 고독한 개인의 씁쓸한 말로가 담긴다. 그 마지막이, 탈레랑이 자신의 위대한 영웅을 추앙하며 극을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하다. 동정의 여지 없이, 그저 허망하게.
무고한 군중을 죽인 바로 그 장면부터, 나폴레옹의 대사들은 조금씩 처음의 신념과 의지, 꿈으로부터 멀어진다. 자유와 평등한 기회,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다는 오만. 저 가치를 운운했으면서 2막 첫 장면에서 제 옆에 있는 앤톤이나 헨리 장군을 아무런 절차 없이 승급시키는 권력남용을 죄책감 없이 태연하게 자행하는 위선.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함께한 전투의 기억과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네들을 위해서, "자유와 평등, 자네들의 권리를 위해서" 라고 선을 긋는 기만.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군중을 제 편으로 만드는 능력은 지도자적 기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 뜻대로 모두를 움직이게 만드는 절대 권력의 시발점인 선동가적 요소이기도 하다. 탈레랑은 "반역"이라고 불렀으나 나폴레옹이 "혁명"이라 정정하며 강행한 그 과정은, 결국 승자가 쓰는 역사를 위해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야 어쩔 수 없다는 독재자의 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The Last Crusade' 넘버에서 "억압하기만 했나?" 라거나 "내 시대에 통했던 건 이 방법 뿐" 라는 가사들은 모두, 독재자 나폴레옹의 위선과 비논리를 역으로 부각시켰다. 이 넘버는 프레스콜 영상이 있으니 따로 포스팅을 해 볼 생각이다. 음악이 너무 좋고 핝폴레옹이 무척 멋지게 불러서 몹시 사랑하게 된 넘버지만, 가사 한 줄 한 줄이 비판할 내용 투성이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관계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저에 깔리는데, 감정의 애틋함은 전혀 살려내지 못했다. 마지막 두 사람의 듀엣이 그렇게나 절절한데, 전부 본인들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이었기에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조세핀이 나폴레옹이 아닌 자의 아이를 밸 정도로 '바람을 피우면서도', 결국에는 진실되고 유일한 사랑은 오직 나폴레옹만을 향한 것이었음을 부각했더라면 좀 나았을 것이다. 혼인종결 선언을 할 때, 조세핀의 차오르는 분노와 울음 노여움에는 자신을 배신한 나폴레옹 뿐만이 아니라 감히 자신을 내치는 탈레랑에 대한 감정까지 뒤섞여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차마 다 읽지 못하는 조세핀의 손에서 서류를 뺏어들고 태연한 척 읽어가다가 "국가의..." 하고 목이 턱 메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하며 감정을 추스리고 조금 이어가지만 결국 끝까지는 읽지 못할 정도로 오롯이 조세핀에 대한 감정만이 차오른다. 두 사람의 감정 낙폭이 궤적을 달리하고, 그에 대한 부가 설명이 전혀 없어서 그들의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다. 종결선언 이후 홀로 남겨진 조세핀의 솔로곡은 무척 강렬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가 아무 것도 없어서 오히려 황망하다. 두 사람의 관계성을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보고 온 게 참 아쉽다.
나폴레옹과 탈레랑의 관계성은 극 마지막에서 가장 강렬하게 부각된다. 엘바섬에서 조세핀과 뤼시앙, 그 외의 이름들을 부르는 나폴레옹을 보며 "모두의 이름, 단 하나만 빼고," 하면서 "나의 이름" 이라고 하는 대사를 들으며 참ㅋㅋㅋㅋㅋㅋ 여기가 더 애틋하더라, 아주.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부르짖는 대사 또한 놀라웠고. 그리고 들었던 것보다 핝폴이 톨레랑 먹금을 안하더라. 'I'm the Revolution' 넘버에서 쇼케 때는 "당신이 죽게 된다면" 라고 했던 가사를 "당신이 죽고 만다면" 라고 부르던데 본공 오면서 바뀐 건가? 나폴레옹은 군인이자 선동가, 그리고 '빛'이라면, 탈레랑은 행정관이자 정치가, 그리고 '어둠' 혹은 '그림자' 이다. 러시아에 정보를 흘려 국익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기도 한 수많은 군인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짓을 한 탈레랑은, 변명이랍시고 "상대의 목을 베는 게 정치" 라고 절규한다. 탈레랑의 생각이나 정치관 역시, 더 재미있게 다룰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 극적인 부분만 뽑아 쓰려고 해서 전체적인 맥락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막에 비치는 나폴레옹 로고가 꽤 인상적이었다. 1막 시작 전에는 월계관 사이 N이라는 글자 주변으로 핏방울과 눈보라가 그려져있다. 오버츄어가 시작되면서 핏방울과 눈보라는 사라진다. 2막 시작 전에는 대관식으로 마무리된 1막의 영광스런 내용처럼 로고가 황금빛으로 번쩍인다. 오케가 시작되면 로고 바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쬐는 햇살 같은 황금빛이 퍼져나온다. 2막 끝 커튼콜 시작 전에는 말을 타고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초상화가 나온다. 이 영상 연출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이외에도, 뮤지컬 관극 시 주구장창 음악과 노래가 쏟아져나오는 연출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극이 취향 범위 내에 들어왔다. 극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동일한 장면인 수미쌍관 구성은 뭐, 이제 그러려니 한다.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나폴레옹 역의 배우나 관객이나 멘탈이 크게 털릴 극은 아니라서 아쉬우면서도 속이 편하다. 매번 바닥에서 뒹굴고 울부짖고 괴로워하는 한지상 배우만 봐왔기에 이런 캐릭터가 생경하면서도 매우 매력적이다. 자주 보면 지루할 것 같기도 하고, 위에 말했듯 쇼미 극이라는 이유 때문에 엄청 많이 볼 생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무대 위에서 한지상 배우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 기쁘고 즐거웠다. 앞으로도 무대 위에서 열일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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