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도리안 그레이

in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016.09.12 8시 공연





결국 현매 갔다. 회사에서 현매를 갈 수 있는 공연장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현매를 하지 않는 이상 감히 관극을 시도할 엄두가 안나는 최악의 위치조건을 지닌 공연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공연장 자체의 하드웨어도 얼마나 열악한지, 음향도 조명도 좌석시야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다. 성아센이 아닌 곳에서 올라왔으면 못해도 두 번은 더 봤을 것 같은 공연인데, 이 극장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자둘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는 단언이 저절로 나온다. 성남이랑 예당이랑 세종에는 진짜 뮤지컬 좀 올리지 말자. 특히 앞에 두 개는 공연장 이름조차 '오페라하우스' 라고. 





김준수 도리안 그레이, 박은태 헨리 워튼, 최재웅 배질 홀워드, 홍서영 시빌 베인, 김태한 앨런 캠벨, 구원영 브랜든 부인. 샤리안, 은헨리, 웅배질, 홍시빌, 은샤웅. 

 

은헨리는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았는데, 음향이 거지라서 재회의 기쁨을 맘껏 누리지 못해 아쉬웠다. 박은태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를 만난 건 은저스와 은괴(은앙) 이후로 세 번째였다. 기존 캐릭터들과 전혀 다르게 이성적이면서 장난기 많은, 단정하지만 쾌락을 찬양하는, 논리적인 척 하는 궤변론자여서 섹시하고 매력적이었다. 일단 그렇게 정장 입은 은배우 비쥬얼만으로도 감사했다ㅋㅋ 하지만 캐릭터성에 있어서는, 글쎄. 2막을 보면서는 내내 헨리의 캐릭터가 캐붕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2막 자체가 원작과는 아주 많이 달라진, 재창작 그 자체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뮤지컬 극 안의 헨리 워튼이라는 인물이 명확한 중심을 잡고 표현되지 못했다. 연출 상의 한계 같긴 하지만,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넘버 소화는 정말 좋았다. 뮤비로 공개된 'Who is Dorian?' 도 현장이 훨씬 좋았고, '찬란한 아름다움' 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풍성하고 눈부신 넘버를 들려줘서 정말 좋았다. 마치 새하얗고 화려한 꽃송이가 오므라들어 있다가 순간적으로 확 피어나며 안에 꼭꼭 담겨 있던 짙고 자극적인 향기와 꽃가루가 작은 폭죽처럼 응축되어 팡 터지는 느낌이었다. 감각의 끝, 쾌락의 절정을 추구하는, 무의미하지만 그래서 극도로 아름다운 언어들. "쾌락 인간의 머릿속 죄악일 뿐 / 즐겨라 잡아라 이 순간을" 이라는 가사가 무척 매혹적이었다. 미성과 묵직함을 오가는 대사 목소리 역시 아름다웠다. 


웅배질은 힘주어 꾹 눌러부르는 부분의 노래가 정말 좋았다. 배질의 성격에서 교화적인 부분이 조금 과하다 싶게 강조되어서 캐릭터 자체가 평면적이고 무매력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 아쉬웠다.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극을 비틀 수 있었는데 캐릭터가 펼쳐보일 수 있는 틀이 너무 빡빡하게 제한되어 버린 인상이 들었다. 그나마 배우가 잔잔하고 차분한 부분과 응축된 감정을 터뜨리는 부분 사이의 갭을 긴장감 있게 만들어내서 끝까지 주의 깊게 따라붙을 수 있었다. 홍시빌은 데뷔작임에도 큰 무대 홀로 있을 때도 크게 허전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극 안에 녹아들었다. 본인 마지막 씬에서 좀 빨리 퇴장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정도 들었고, 동생 샬롯과의 듀엣곡 '돌아올 그날까지' 에서 발성의 일관성이 좀 떨어지는 건 불안하게 들려서 아쉬웠다. 목소리도 그렇고 절정 부분에서 힘있게 부르는 부분은 좋았다. 샬롯 배우가 어떤 앙상블인지 모르겠는데 노래 잘하더라. 연기는 그냥 그랬지만, 노래는 괜찮았다. 아, 살짝 삑이 난 부분이 있긴 했다. 은헨리도 월욜 공연이라서 그런지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았고, 샤리안은 목상태가 베스트는 확실히 아니었다. 본인도 그걸 알아서 자기 음역대에 맞아서 자신 있는 부분을 오히려 힘 있고 강렬하게 소화해줬는데, 그래서 솔직히 더 좋았던 것도 있다. 마지막 곡 감정선도 그 덕분에 더욱 깊이 있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태빌, 이 아니고 김태한 배우의 앨런 캠벨은 쏘쏘. 피날레 부분이 무척 아름다웠던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브랜든 부인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인데다가 대사 처리가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노래는 그냥 그랬다. 앙상블도 전반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안무가 오버츄어를 비롯하여 샤리안 중심 넘버들에서 유난히 발레동작이 많았는데, 남앙들 몸이 무거운 게 티가 확 나서 연출이 의도했을 아름다움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몸무게가 무겁다는 뜻이 아니라 길쭉길쭉하게 뻗는 몸짓이 섬세하고 가볍지 않았다는 의미임은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1막 마지막 곡 'Against Nature' 의 안무는 정말 취향이 아니었다. 솔직히 페스트가 떠오를 정도로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인 건 알겠는데 현입이 확 되면서 헛웃음이 났다. 아이돌 무대도 아니고. 초상화 역할을 맡은 진태화 배우는 2막의 첫 넘버 '넌 누구' 에서 별로 없는 파트 전부에서 가사가 단 하나도 안 들렸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스포 없이 배우 감상 위주로만 적은 건데도 벌써 길어졌네. 아직도 할 말 많은데. 재연은 회전문 팽글팽글 돌 수 있게 엘아센이나 샤롯데로 옵시다. 아님 블퀘도 진심으로 괜찮다. 블퀘의 조명만큼은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도리안 조명이 정말 별로였던 근거가 몇 가지 있다. 일단 새하얀 도리안을 강조하기 위해 무대 자체를 극 내내 지나칠 정도로 어둡게 유지하여 가뜩이나 깊고 넓은 성남 무대를 더욱 멀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또한 3층 객석 위에서 내리찍는 밝고 하얀 스포트라이트를 제외하면, 큰 무대에서 홀로 노래하는 배우들을 비추는 핀조명이 대부분 어두침침했다. 무대 전반에 사용되어 소품 등을 강조하는 조명마저도 어둑어둑했다. 초반에 작업 중인 도리안의 초상화가 있는 이젤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소모품 취급하도록 만든 것도 조명이 없어서라는 이유가 컸고, 극 중간중간 무대를 너무 휑하게 느끼도록 만든 것도 조명을 영리하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색감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이건 뭐 무채색 투성이인 조명 뿐이니 뭐라 할 말이 있어야지. 



놀랍게도 이 극은, 정석적인 무대효과인 조명 등의 요소 대신 '영상' 을 주된 연출기법으로 사용했다. 체코 로케촬영 갔다온 뽕을 뽑는구나, 하고 극 내내 속으로 감탄했을 정도로 영상을 이곳저곳 많이 집어넣었더라. 은헨리랑 샤리안 각각 솔로할 때 뮤비 장면이 일부 비춰졌는데, 무대 가운데에서 노래하는 배우의 모습을 360도의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식으로 동선을 짰으면 감탄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냥 타이밍 맞춰 손동작 정도만 일치시켜서 아쉬웠다. 그거 말고 아예 무대 앞쪽에 장막 내려서 영상 보여주는 건 정말 별로였다. 저는 비싼 돈 주고 2d를 보러온 게 아니라 3d 공연을 보러 온 겁니다만. 신박하긴 했지만 그리 세련되게 느껴지지 않았던 연출이라서 미묘한 불호다. 그리고 무대전환 진짜 너무 많더라. 다음 씬으로 유연하게 넘어가는 장면이 거의 전무했다. 장면 전환을 위한 암전이 계속되니까 역시 몰입이 깨지고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주연배우 솔로 넘버들은 거의 다 무대가 텅 비어있어서 배우의 존재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다. 그리고 성남 무대가 깊고 넓고 크다는 걸 연출도 잘 알고 있는지, 그런 솔로곡 클라이막스에서 배우들이 꼭 지휘자 바로 앞 무대 끝까지 나와서 노래를 하던데 의외로 그런 동선이 꽤 현입포인트가 됐다. 캐릭터의 감정선보다는 배우의 노래에 집중하게 된달까. 이건 내 자리가 2층, 그것도 5열이었기에 무척 멀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스포주의, 개인적 해석 및 개취 주의※



선공개된 뮤비의 넘버들이 기대보다 별로여서 실망했었는데 또 듣다보니 괜찮아져서 흥얼거리게 됐다. 그리고 막상 공연장에서 넘버를 들어보니 낮아진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어서 기뻤다. 곡 구성도 그리 진부하지 않았고, 웅배질 넘버의 "긴-긴-긴- 여름날" 이라는 구절의 반복이나 은헨리 및 샤리안 넘버에서도 적절하게 반복되는 가사 구절과 멜로디가 곡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줬다. 적합한 장면에서 맆 많이 넣은 것도 좋았다. 킬링넘버가 없다는 평이 더러 있었지만, 이 극에서는 이렇게 유려하게 진행되는 넘버구성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에 만족스럽다. 가사가 조금 많은 듯한 건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배우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잘 소화해서 좋다. 은웅 듀엣은 풍성하고 속시원했고, 샤은웅의 삼중창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오슷 소문이 돌던데, 내주기만 한다면 성아센 직접 가서 오슷만이라도 살 의향이 있다. 라센 비용도 없는 창뮤에서 오슷 내주는 거 비싸게 굴지 않아줬음 좋겠다ㅠㅠ 



이 극의 원작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극도의 탐미주의를 섬세하고 치밀하며 집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든다고 했을 때 그 극강의 탐미주의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낼 지 가장 궁금했다. 하지만 이 창작 초연극은 그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저 감각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쾌락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줄 뿐, 탐미라는 이미지는 부재했다. 돈, 성욕, 마약, 그 이상의 쾌락은 전혀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웠다. 원작소설에서 그려냈던, 온갖 분야의 덕질을 하며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젊고 눈부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도리안 그레이의 인생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질투했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 보여주는 도리안은 그저 타락하고 쾌락에 스스로를 내맡겨버린 수동적인 캐릭터여서 공감도 동경도 애틋함도 생기지 않았다. 농염한 퇴폐미를 잘 살린 샤리안의 매력이 남았을 뿐, 캐릭터 자체는 크게 섹시하지 않았다. 2막 내내 20년 동안 도리안이 어떤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는지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짙은 섭섭함을 남겼다.   



애초에 이 극에서 표현하는 '도리안 그레이' 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근본적으로 내가 원작을 읽으며 상상했던 감상과는 많이 달랐다. 극 초반 사교계에서 도리안을 '천재' 로 명명하는 것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도리안은 분명 예술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순수하고 순진하여 때묻지 않은 어딘가 부족하고 아직은 미성숙한 '소년' 의 이미지가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도리안에게는 '백치미' 가 있는 아름답고 덜 여문 존재였고, 본능적으로 호기심과 열의에 불타올랐기 때문에 이지적이고 세련된 섹시함을 지닌 헨리 워튼의 언어에 강하게 끌리며 현혹당했다. 물론 헨리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도리안의 언어는 2막에서의 웅배질 절규처럼 "궤변, 궤변, 궤변!!!" 일 뿐이지만, 무척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유혹임에는 틀림이 없다. "유혹을 극복하는 방법은 유혹에 굴복당하는 것 뿐" 이라는 말처럼 듣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는 달콤한 말이 또 있을까. 찰나에 불과한 아름다움의 최정점인 젊음을 찬양하고 집착하게 되는 도리안을 조금 더 히스테리컬하고 치명적으로 묘사했더라면 얼마나 눈부셨을까. 2막 후반부의 도리안은, 정말 어리석고 나약하며 의존적이었다.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 라고 집착하는 도리안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원작을 읽으며 나름대로 구축한 도리안이라는 캐릭터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맹신하며 스스로 찬양하고 사랑하는 나르시스트 그 자체였다. 쾌락을 추구하며 얻게 되는 죄책감 따위는 잠깐의 속죄와 참회를 통해 정화되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철이 들 생각조차 없는 고집스럽지만 마냥 미워하기는 어려운 아름다운 존재. 하지만 뮤지컬 속 도리안은 켜켜이 죄책감을 쌓아가며 고통받는 '인간' 으로 남아있었다. 마지막 순간 칼을 높이 들고 제 목을 찌르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잘못 본 거라고 믿고 싶은데, 분명 원작에서는 광기에 사로잡혀 추악한 제 영혼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초상화를 찢어 파멸로 치닫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정반대에 서있는 초상화를 용납하지 못하고 초상화를 찢어버리는 것과 스스로의 영혼이 타락했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자기자신을 끝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커튼콜의 그 위로와 용서와 이해의 노래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커튼콜에 울컥해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동했다는 점은 차치하고 말이다. 이것도 원작의 재해석이지만, 그래도 나쁜놈을 나쁜놈으로 충실하게 묘사해주는 것도 재미있었을 텐데. 



비슷한 맥락에서 헨리 워튼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이 인물은 저자 오스카 와일드 본인을 투영한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등장 자체도 줄어들고 영향력도 미미해진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타락한 도리안을 어떻게 대할지 작가 오스카 본인조차도 확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처럼 이 캐릭터를 후반부에서 생략할 수는 없었던 뮤지컬에서는, 쾌락주의자인 헨리 워튼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상상하여 나름의 결론을 낸 뒤 보여줬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캐붕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도리안에게 직접적으로 '실패작' 이라는 표현을 들려줌으로써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고 싶었던 목적은 이해하겠지만, 그 결론을 위해 헨리의 캐릭터성이 지녔어야 할 일관성이 훼손됐다. 전반적으로 2막 대사들이 깊은 고민 없이 그저 상황에 어울릴법하게 구성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헨리의 대사들이 유난히 심했다. 이 비판은 극을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편파적이고 왜곡된 이미지로 고정된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 일단 자첫자막러의 입장에서는 헨리 스스로가 굳게 믿고 추구하던 '새로운 인간상' 에 대해 불신하고 번뇌하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굳게 믿는 신념을 바탕으로 일생일대의 '실험' 을 진행한 그가 포기하고 변해버린 이유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개연성을 위해 2막에서 원작에 없던 이런저런 장면을 넣은 것 같지만, 그다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20년 후 자신을 찾아온 샬롯에게 "과거에 집착하는 것 만큼," 이라는 운을 띄운 말에 이어지는 대사가 "어리석은 일이 없죠" 가 아니라 "아름답지 못한 일은 없죠" 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막에서 최악이었던 시빌의 공연을 보고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참지 못하고 절망하는 도리안을 향해 "재능이 없는 것도, 좀 추해" 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무척 자극적이고 무례한 말이지만 너무나도 헨리다운 어법이었다고 생각되어 인상적이었다. 이 인물 또한 '정상' 은 아니었고, 그렇기에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도리안을 향해 '실패' 를 운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판단된다. 물론 이 극과 내 개인적인 해석이 전혀 다르기 때문임을 알고, 그래서 오히려 더 흥미롭게 관극할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한 번만 더 봐도 좀 더 자세하게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안타깝다. 



웅배질 또한 평범하고 일반적인 캐릭터는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올바른 이미지로 묘사되어 아쉬웠다. 배질은 괴짜이자 제 영혼을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낼 정도로 예술에 미쳐있던 화가인데, 극에서는 타락해버린 도리안을 어떻게든 교화시키고 영혼을 되찾게 만들려 노력하는 부분에 크게 방점을 둬서 캐릭터가 외려 밋밋해졌다. 그래도 원작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유지한 인물이긴 한데, 이 캐릭터도 보다 다채롭고 광기 가득한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다. 애초에 이 극에서 제정신인 인물은 단 하나도 없단 말이지. 





도리안이 자신의 초상화를 언제부터 소유하게 되었는가 라는 점이나, 자신의 죄악이 초상화에 대신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불친절한 극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막 첫곡 '넌 누구' 넘버에서 초상화를 생명력 있는 존재로 설정하여 대립하고 저항하여 외면하고 감금하는 도리안의 모습이 흔히 쓰이는 이중인격 테마 같아서 진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액자틀을 사용하여 그 사이로 이동하고 그 틀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등의 연출이 매혹적이긴 했지만, 근래 무대연출에서 근간으로 깔고 가는 이미지가 한정되어 있음이 되려 부각되어 안타까웠다. 



사람은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을 꽤 신봉하는 편이데, 그 어떤 인간이든 자신이 삶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도리안 그레이는 그 수많은 타락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얼굴에 지니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묘사 혹은 설명이 전혀 없는 것도 아쉬웠다. 단순히 세월이 흘렀음에도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보다, 셀 수 없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한 톨의 악영향을 받지 않고 아름답다는 점이 더욱 임팩트 있고 놀라운 일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시시각각 변하가는 세상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외쳐대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저 속없이 beautiful world 만 외치는 옥스퍼드 출신 엘리트 중심의 모임이 아쉽기 그지 없었다. 의상 자체와 그 색감 같은 것들도 너무 미래적인 이미지를 지녀서 당시 시대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도 아쉽고. 20세기 초반이 지녔던 그 시대만의 탐미를 기대했는데 그 점은 충족시키지 못했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간만에 괜찮은 극이었는데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속상하다. 그나마 나름대로 레전이라 불릴 만한 공연이었다는 게 다행스럽달까. 어떤 배우가 오든, 공연장을 바꿔서 재연을 올려준다면 그 때는 회전문을 돌 의향이 있다. 연극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대사를 더 풍부하게 넣어주면 무척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근본 없는 논리로 쏟아내는 궤변임에도 귀담아 듣게 되는 헨리의 말들을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성찰해보고 싶다. 탐미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탐미하는 행위 자체를 긍정하고 어느 정도는 동경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류의 공연이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나는 탐미보다는 찬미에 몰입하는 인간이지. 외적이든 내적이든, 아름다움이란 거의 항상 옳다. 美를 추구하고 사랑함으로써 인간은 그 존재의의를 지닌다고 믿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어렵고 과하지만 그렇기에 가치 있고 위대한 예술가이고, 그런 그의 작품을 이토록 아름답고 우아하게 재창조한 이 극 역시 유의미한 예술품이다. 덕분에 막차가 끊긴 뒤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서도 온갖 생각에 잠겨 행복할 수 있었고, 피곤함에 찌든 채 업무 마감을 하면서도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틀 정도는 이 여운이 지속될 것 같아서 즐겁다. 이래서 내가 덕질을 못 끊지. 암.   



'공연예술 > Music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얼굴 1895 (2016.10.12 8시)  (0) 2016.10.14
킹키부츠 (2016.09.23 8시)  (0) 2016.09.24
스위니토드 (2016.08.24 8시)  (0) 2016.08.26
페스트 (2016.08.19 8시)  (0) 2016.08.20
노트르담 드 파리 (2016.08.14 7시)  (0) 2016.08.15
공지사항
«   2025/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