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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in 충무아트홀 대극장, 2015.12.18 8시 공연
개막하고 아직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벌써 5차다. 가볍게 지크슈 기록을 깰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박건형 빅터/쟈크, 박은태 앙리/괴물, 서지영 엘렌/에바, 안시하 줄리아/까뜨린느. 5연속 윤우, 주디. 프리뷰 공연 이후 형은 페어 둘공. 형은서안. 은앙/은괴와 서엘렌/서에바는 자첫이다.
기대했던 은앙은 생각만큼의 취향저격을 하지 못했지만, 은괴의 연기를 보며 결정타를 입었다. 내가 이 배우의 팬이었다면, 정말 전관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 같다. 배우의 역량에 따라 동일한 컨텐츠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해질 수 있는지, 은괴의 연기를 통해 생생하게 실감했다. 2막을 보면서 괴물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갈망이 생긴 건 처음이었다. 빅터에게만 집중하기에는, 이 극의 가능성이 너무나도 아깝다.
※스포있음※
은앙은 무난했다. 프콜 영상들로만 접했던 모습을 실제로 봤다는 것에 만족한다. 하지만 괴물. 3년 만의 만남에서 냉랭하게 빅터를 대하는 은괴. 과거회상으로 들어간다. 처음 격투장의 시합에 나선 은괴는 에바의 눈치를 보면서 상대를 제압한다. 하지만 목전에 죽음을 둔 사람의 표정을 보고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붙들며 괴로워한다. 마치 뭔가가 기억난다는 듯이. 안, 녕. 시야에 들어온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 그 자체의 손동작이다. 아침부터 머릿속에서 쏟아져나오는 언어와 생각들과는 별개의, 괴물 자신의 정체성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함. 독방의 창문 너머로 빠르게 흔들어대는 손, 시합 직전 추바야에게 건네는 손인사, 그리고...... 난괴물 직전 까뜨린느에게 너무도 천진하게 잘 가눠지지 않는 몸을 움직이며 손을 흔드는 모습까지. 정말 이러깁니까, 박은태 배우님. 하아. 난괴물에서 "창조주시여" 라고 이를 악물고 외치던 목소리. 그리고 정적. 길다. 왼쪽 손목, 오른쪽 손목을 만진다. 조금 더 급한 손길로 오른쪽 팔뚝의 접합부분까지 주섬주섬 더듬는다. 그리고 목. 그 상처. 끄으으. 깊숙한 곳부터 끓어오르는 신음을 참아보려 꾸욱 누르지만 새어나오는 소리. 순간 터져나오는 절규. 고통. 괴롭다.
빅터를 대하는 태도는 냉랭하다. 감정이 전혀 없는 말투. 서늘한 목소리. 다 부숴놓은 실험실에서 빅터를 대하는 동작들 역시 군더더기 하나 없이 무감각하다. 그런데, 줄리아까지 죽인 그가 창문을 타 넘기 직전 말한다. 북극의 가장 높은 곳에서, "기다릴게" 라고. 심장이 내려 앉는다. 다음 호수씬에서 아이에게 말한다.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내 친구" 라고 지칭하는 목소리에 부드러움과 익숙함이 실려있다. 은괴에게는 분명 앙리의 기억, 앙리의 감정이 존재한다. 괴물이 곧 앙리라는 말이 아니라, 그의 뇌를 공유하기 때문에 무의식의 일부로 툭 튀어나오는 자의식 중 하나가 바로 앙리다. 은괴를 보며, 이중인격을 느꼈다. 완전히 다른 정체성이 공존하는 존재. 호숫가의 아이가 묻는 정곡. 아저씨가 인간이 만든 생명이에요? 너무나도 천진한 목소리로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누가 들어도 그 아이와 비슷한 또래가 호기심을 잔뜩 담아서 묻는 목소리다. 풍덩. 잠시의 공백. "그러지 마". 역시 지독히도 순수하고 때묻지 않았다. 하지만 북극의 가장 높은 곳에서 기다릴 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즉시 몸을 돌려 억지로 걸음을 떼며 다가오는 빅터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만나자마자 그 어떤 말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빅터를 쉽게 제압하고는 분노에 찬 고함을 뱉어낸다. 단 한 마디의 위로나 사과가 있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해도 괴물이라는 캐릭터가 이토록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와, 정말 너무 좋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엘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엘렌의 "넌 이제 혼자란다" 라던 말, 그리고 괴물의 "넌 이제 혼자가 된 거야" 라던 선고. 이 두 평행선이 빅터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직시해야 했다. 서엘렌은 귀족 아가씨로서 도도하고 품위 있다. 앙리와 대화할 때, 그리고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 넘버를 부를 때 말투와 감정선이 완벽하게 상류층 특유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내적감탄을 던졌다. 그 지위와 성격 덕분에 친동생에게도 선을 긋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1막의 회상과 2막의 회상 장면을 중복해서 넣은 이유를, 서엘렌을 보며 깨달았다. 1막은 덤덤하다. 하지만 2막은 동생을 억지로 떠나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죄책감과 그를 향한 안쓰러움에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쏟는다. 엉엉 운다. 그 온도의 격차가 엘렌의 죽음에 무너지는 빅터의 감정선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강조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서엘렌의 이런 연기 덕에 재연의 연출과 2막의 개연성에 대한 이해도가 확연히 높아졌다. 서엘렌의 노선과 형빅의 노선이 잘 맞는다. 어른스럽게, 귀족답게, 지위에 어울리게 자랐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하는 외롭고 고독한 빅터. 동생을 사랑하지만, 상황과 위치 때문에 그 애정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던 엘렌. 어긋나버린 관계.
형빅은 오늘 은앙을 거의 온전히 친구로 받아들였다. 연출의 지시수정이 있었던 건가, 빅터들 다 이런 노선으로 가고 있다니... 뭐야 왜 초연처럼 가는 거야ㅠㅠ 단하미. 초입에선 형빅, 은앙 둘 다 목상태가 베스트는 아니구나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왔다. 숨을 살짝 들이키며 "대위님은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묻는다. 그가 반론할 때 귓등으로도 듣고 있지 않다는 듯 등을 돌리고 반대쪽 난간을 붙들고 있던 형빅이 역시 느긋하게 대사를 치며 뒤돈다. 설득당한 앙리. 여기 듀엣은 은앙 목소리 잘 들리네!!! 형빅이랑 은앙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한잔술. 여기부터 은앙은 진심으로 빅터를, 그의 연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그나저나 팔짱을 끼고 앞발차기(..) 하는 안무에서 무릎을 너무 정직하게 쫙 핀다ㅋㅋㅋㅋ 동빅은 허우대를 주체하지 못했다면, 은앙은 뻣뻣하다ㅋㅋㅋ 정말 한잔술은 봐도봐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즉시 이어지는 살인자. 룽게가 엘렌들에게 사정을 설명할 때, 마지막 앙리의 말이 직접 앙리의 목소리로 나오는 거였구나. 다른 앙리들로 볼 때는 왜 캐치 못했지? 그러고 보면 하지만 넌 넘버 때도 뒤쪽에 나오는 영상들이 '종전'을 의미하는 것임을 5차 관극 때서야 깨달았다. 매번 앙리들 얼굴표정만 보느라 바빠서..ㅎ
나는 왜. 엘렌의 말에 발끈하는 빅터. "그러면 안돼" 라고 매번 단호한 제지를 받으며 자라온 귀족소년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빅터들이 앙리를 꽤나 아끼기 시작하는 노선으로 자리잡으니까, 나는 왜 넘버가 살짝 위화감이 느껴진다. 형빅 목소리 잘생겼다. 너꿈. 정말 좋은데, 이상하게 눈물은 안났다. 은앙 표정도 얼른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지금 당장 들고 있는 다음 표가 너무 멀리 있다. 생창. 새삼 느끼지만 정말 자비없네. 근데 시체 끌어올릴 때는 빅터가 도르레 사슬을 끌어당기는 타이밍에 맞춰 주면서, 시체 내려갈 때는 그 타이밍 전혀 맞출 생각 없이 넘버 끝나자마자 사라져버리는 거 조금 거슬린다. 이거 자첫 때부터 느낀 건데 매번 이러네. 괴물의 탄생. 은괴가 너무 적극적으로 형빅의 목을 졸라서, 룽게가 괴물을 공격하는 이유가 온전히 납득이 갔다. 괴물의 입장에서는 자기방어의 일환으로 그의 목을 물어뜯는다. 20년을 곁에 있어준 룽게의 개죽음 앞에, 형빅은 오롯이 깨닫는다. 저 괴물은 앙리가 아니라고. "내가 앙리를 살려냈어!!" 라고 했던 그 말이 실은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쇠사슬을 쥐는 손에 힘이 실린다. 은괴는 뭔가가 머리 가득 휘몰아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느낌으로 실험실을 휘젓는다. 주체하지 못하는 동작들. 세 괴물의 탄생 순간이, 노선이, 이토록 다르다니.
지난 3차 때와는 다르게 되찾은 실험일지를 붙들고 광기에 찬 웃음을 조금 뱉어내는 형빅. 이미 괴물을 앙리라고 보고 있지 않다. 그 얼굴을 마주했기에 불현듯 뱉어낸 호칭은 단 한 번 뿐이다. 엘렌의 죽음 앞에 무너지는 빅터. 가지마... 엉엉 우는 엘렌, 그리고 빅터.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다 부셔놓은 실험실을 보고 "이젠 살릴 수가 없어" 라고 절망하는 목소리가 처절하다. 제발 날 죽여. 하지만 괴물은 냉정하다. 결국 줄리아까지 죽는다. 후회. 아예 눈을 감고 들었다. 하지만 오케가 역시 너무 희망차다. 북극까지 가는 빅터는, 반쯤 미쳐 있는 상태다. 사리분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 그 자체. 그런 빅터에게 들려오는 단어, '혼자'.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죽은 괴물을 끌어안고 절규한다. 나는.. 나는... 프랑켄..슈타인...!!..... 오싹하다. 정말 이곳이 북극인 것처럼.
까뜨린느 가발이 벗겨진 참사가 있었다. 자첫 이후로 윤간 장면은 쳐다도 보지 않아서 사고 경위는 모르겠지만, 산다는 건 전주가 나오는데 머리가 짧아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단단한 감정으로 훌륭하게 넘버를 소화했다. 고음이 조금 힘겹게 들리기는 하지만, 감정선이 참 좋다. 오늘 주연 4명은 전부 연기 존잘들 뿐이어서 스토리가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시하줄리아 역시 형빅이랑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다. 아, 정말 망했다. 차라리 더블이나 트리플 캐슷 중 한 명이 완벽하게 취향이라면 그 배우만 고정하고 다른 캐슷만 고민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빅터 둘, 괴물 셋, 엘렌 둘, 까뜨린느 둘이, 다 각자의 매력이 있고 취향 호불호가 조금씩 섞여있어서 그냥 "캐슷 상관없이" 봐도 된다는 기분이 들어 난감하다. 유빅은 평이 정말 좋긴 한데, 유쟠을 볼 자신이 없어서 아직도 엄두가 안나서 일단 제외했다. 아역은 뭐 차라리 이대로 윤우주디 고정해서 기록을 세워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ㅋ 주디가 "왜 어른들은 너의 진심 몰라줄까" 음정만 제대로 잡아주면 그리 나쁘지 않은데. 귀엽고. 윤우는 힘이 든지 한 번 삑이 나긴 했는데, 역시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예쁘다. 오히려 원캐이신 이희정 슈테판 목소리와 조금 싸우고 있어서 힘들다..ㅠㅠ 빅터 변호해줄 때 목소리 좀 덜 긁어주시면 안될까요....
2층은 표정이 잘 안보여서 답답하다. 형빅, 은괴 얼굴 좀 가까이서 보고 싶다. 4차 때처럼 여자지휘자님(부음감)이셨는데, 여전히 배우와의 박자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난다. 그나마 은앙/은괴는 마지막 음 마무리할 때쯤 무지 친절한 손동작을 해줘서 타이밍이 딱 맞긴 했지만, 다른 배우들과는 미묘하게 어긋났다. 오케가 살짝 삑난 것도 있었다.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오.. 그 넌괴물이야 뒷부분 좀 어떻게 바꿔주고... 적응 안되서 미치겠어....ㅠㅠ
회차를 거듭하며 배우들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덕분에 다섯 번째 보고 다섯 번째 작성하고 있는 리뷰임에도 글의 길이가 짧아지질 않는다...... 2장 남은 것 중에 올해 표는 이제 없는데 어떡하지. 생각 없이 지르고 싶은데 11만원이 적은 돈도 아니고..ㅠㅠㅠㅠ 하아, 뮤덕질 지친다. 근데 프랑켄은 너무 좋다. 망했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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