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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The Pride)

in 수현재씨어터, 2015.09.21 8시 공연





극의 시놉시스를 읽고 한 번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미션 때는 한 번쯤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2막까지 보고 나오면서는 아쉬움이 좀 남아서 자둘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고 판단했다. 생각보다 깔끔했지만 기대보다는 뭔가 부족하고 아쉬웠다. '연극'은 마치 영화관람처럼 약간 거리를 두고 제3자의 시선에서 분석하듯 바라보게 되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 극이 다루는 소재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따뜻한 극이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해주고픈 극이다.    





배수빈 필립. 정동화 올리버. 이진희 실비아. 이원 멀티.



1958년과 2015년을 넘나드는, 마치 전생과 현생을 교차시켜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 인상 깊었다. 똑같은 공간에 존재하되 각기 다른 시간에 속해 있는 동선이 많았는데, 어색함 없이 잘 이어졌다. 영화에 삽입하여 장면 전환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cg가 눈 앞에 스치듯 지나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이런 연출은 주로 1막에서 사용되고, 2막에서는 보다 스토리에 집중한다. 인물들의 갈등과 감정선을 장면장면으로 분할하여 보여주는데, 그 이야기의 전개가 썩 개연성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1958년 실비아의 독백이 지나치게 많다. 아무리 좋은 대사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말이 너무 길게 늘어지니까 '교훈을 전달받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오히려 집중도가 떨어졌다. 극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으로서 말하고 싶은 바를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절반 정도는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했는데, 나머지 절반은 독백이 억지로 이끌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화자가 실비아이고 그가 이야기를 말해주는 형식이었다면, 물론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주제 자체는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 



사실 1958년 캐릭터들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기도 했다ㅠㅠ 2015년 런던의 발랄한 캐릭터들은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는데, 1958년도의 그들은 뭔가 어색하고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딱히 연기력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왜일까. 상황이나 감정이 이해는 되지만 그걸 바탕으로 하는 행동들이 전혀 공감이 되지 않은 탓도 있는 듯하다. 으앙, 뭐가 아쉬웠는지 확실히 알려면 재관람을 해야할 것 같네ㅠㅠ 그러나 2015년 필립과 올리버, 실비아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키득대고 빵빵 터지고, 배우들 간의 합이 참 잘 맞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실비아와 올리버 두 사람의 우정이 귀여워 미치겠더라ㅎㅎ 때리고 욕하고 갈구는데 그 아래 애정이 뚝뚝 묻어나서, 보고 있자니 그저 웃음이 나왔다. 



대사 중 좋은 말들이 많았다. 저 캐릭터가 했던 말을 과거에는 다른 캐릭터가 하고 있기도 하고, 같은 단어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아까 나왔던 대사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극 제목인 "프라이드"가 여러 번 나왔는데, 스스로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용기, 정도로 정의내릴 수 있겠다. 단순히 성소수자의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일상과 현실이라는 제약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로 확장시켜 나간다. 소소하지만 핵심적이고, 따뜻하지만 날카로우며, 진지하지만 위트있다. 곱씹을만한 것이 많은 극이다.





리뷰가 썩 호평은 아니지만,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하여 3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많이 웃고 조금 울고 내내 집중했다. 지루하지 않고 적당한 긴장감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몰입을 높인다. 극장의 의자가 불편해서 암전이 내릴 때마다 사방에서 의자 삐걱대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울렸지만, 그만큼 다들 집중하고 있었단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일 마지막 티켓팅이 있는데, 일단 해보긴 해야겠다...ㅠㅠ 좀 더 고민하면 더 풍부한 리뷰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월요일 관극을 해서 그런지 몸이 너무 피곤하다. 주말까지 미루기엔 기억력의 한계도 있고, 하필 연휴라서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관극을 많이 하고 싶은데, 그러자니 집중력과 효용이 떨어진다. 관극도 꽤 많은 체력과 열정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만 하자, 좀. 보고 싶은 극이 왜 이토록 많은 건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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