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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2014.07.30 개봉)
드물게도 아빠가 영화보자는 제안을 먼저 하신 영화.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수 있는 '명량'의 흥행은, 중장년층의 이러한 호감과 관심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역사 속 현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더 극적이었다.
해전 자체를 생동감있게 살려낸 전투씬이 훌륭했지만, 투박하고 거칠던 당시의 칼부림 전투를 아주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장면이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전반적인 배우들 연기가 어색함이 없어 몰입하기 좋았다. 다만 백성을 끌어들여 담아낸 장면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인위적이어서 불편했다. 과한 슬로모션은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지루하고 산만했다. 특히 속편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영화가 추구하는 최근의 추세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매우 불쾌했다.
관객이 많아 맨 앞좌석의 사이드 끝자리에서 관람했기에 아빠의 아쉬움이 컸다.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중앙에서 보고 싶으시다는 희망을 강렬히 표출하고 계실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보신 듯하다. 전투장면에 중점을 둔다면 좋은 평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영화였다.
해적 (2014.08.06 개봉)
근래 영화에 푹 빠져있기에 챙겨봤지만, 평소였다면 관심도 안 주었을 법한 영화. 재미가 전혀 없던 건 아니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웃음이었다기 보다는 피식거리는 허탈감 섞인 웃음이 더 많이 터져나왔다.
산적들이 유머를 다 담당하고, 해적은 정색을 유발했다. 주연급 배우 몇 명의 연기가 혹평을 받아 마땅했다. 특히 이경영 씨는 한국영화 감초로 자주 등장하셔서 얼굴도 익숙하고 연기도 평타라고 믿었건만, '해적'에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였다.
차라리 실제 연대를 도입하지 않은 판타지 사극의 형태를 취했더라면 개연성 측면에서 호된 비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결말이 다분히 한국영화스러운 교훈을 전달한 점과, '이성계'라는 실존 인물을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게 비꼰 시나리오가 일부 관객들에게 상당한 불편함을 야기한 듯하다.
'캐리비안의 해적'보다 낫다는 감독의 인터뷰가 오히려 조소를 낳았다.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기존 작품을 뛰어넘으려면 적어도 뚜렷한 독창성이 있어야만 하는데, 음악이든 연출이든 모티브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차용했다. 한마디로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킬링타임용 영화.
해무 (2014.08.13 개봉)
한정된 공간과 그 안에서 인생을 바쳐 살아온 자아정체성 강한 인간이 극단적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잔혹해서 저절로 인상을 구기며 역겨움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지만, 현실 속에서 이보다 믿기 어려운 인간성 상실을 보여준 사례들이 분명 여럿 존재했기에 "불쾌함"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두 번은 절대 못 보겠지만.
생생한 날 것의 극한을 각오한다면, 잘 짜인 괜찮은 영화가 깊은 인상을 남겨줄 것이다. 누구 하나 어색함 없이 영화 전반에 적절히 녹아 들었기에 이토록 선명한 불편함을 선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올여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네 개의 개봉작들 (군도, 명량, 해적, 해무) 중에서 이 영화를 독보적인 '웰메이드 작품'으로 추천한다. '인간'이 행하는 광기를 목도하며 그 무엇보다 오싹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추신. <군도> 감상평 링크 http://tinuviel09.tistory.com/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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