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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예능을 보다가 펑펑 울었다. 단순히 설 명절 때의 그 한가한 서울에서 흔히 지나치게 되는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회차라고 생각해서 지난주, 혹은 그 지난주들처럼 깔깔 웃으며 가족과 함께 가볍게 시청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진들에 결국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말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을 담아내는 그 순간, 공간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의미를 담고 개개인의 인생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리고 사진은, 그 기억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매개체다. 일박이일 멤버들이 아무 생각 없이 미션을 위해 사진을 찍어온 바로 그 장소에서, 그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과거가 존재했다는 것을 빛바랜 사진들이 증명하는 순간, 그들처럼 울컥하는 기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차태현 씨가 대학 다니면서 수없이 지나친 그 남산 팔각정에 이런 추억이 담겨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당장 자식들을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야만 할 것 같다며 웃는데, 그가 느꼈을 그 묘한 감정이 생생히 전해졌다. 사진이라는 게 참, 몇 마디 말이나 글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할 때가 있는데, 세월의 편린을 공유하는 이 짜릿한 순간 역시 그 중 하나이다. 구도도 엉망이고 표정도 이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중한 사진이기도 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사진인데도 보는 순간 사진을 찍을 당시의 햇살과 바람마저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더 나가자면, 작년에 몇 번 화제가 되었던 '똑같은 장소에서 몇 십년 전후로 찍은 사진 비교' 까지 생각났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젊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지긋하게 나이 드신 노년의 신사와 적어도 딸 하나는 있을 법한 중년의 사내가 되어 몇 십년 전 바로 그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것들이다. 비슷한 컨셉의 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감동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빠른 속도로 쉼없이 변해가는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겠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더 가득했다. 서울 안에서만 이사를 두자리 숫자의 횟수로 했던 개인 경력 때문에, 똑같은 집에서 태어나 계속 사는 인생이 정착되어 안정적이라는 동경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 방송 덕분에, 추억은 어느 장소에든 담길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물론 공간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확립되긴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자꾸 멀쩡한 건물을 무너뜨린다거나, 서울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계속해서 건물들 간격을 줄이면서 숨통을 조이는 '공간의 부재' 현상을 지속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살짝 한 마디 또 덧붙이자면, 어제 우결에 정준영 씨 커플이 제주도 용두암에 간 장면이 나왔는데, 용두암을 배경으로 하는 중요한 포토스팟 뒤쪽으로 새로 지은 듯한 건물이 자꾸 시야에 잡혀서 굉장히 거슬렸다. 하필 바로 그곳에 꼭 건물 건설 허가를 내줬어야만 하는 건가.......?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창고에 잠자고 있는 오래된 사진앨범을 꺼내 뒤적거려보고 싶어지는 밤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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