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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법정

in 아트원시어터 2관, 2022.10.01 7시

 

 

 

 

박민성 호윤표, 이재환 아오, 김승용 한시로/서인구, 이상아 오미나/카운슬러.

 

 

기회가 닿지 않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켄의 무대를 대학로에서 보게 됐다. 창작 뮤지컬 초연이라서 극의 뚜껑이 열린 다음에 표를 잡을까 했는데, 어쩌다 보니 프리뷰 기간인 켄아오 둘공에 객석에 앉아있더라. 후기를 먼저 보면 표를 잡을 리가 없다는 선견지명이었던 것일까.

 

 

캐스팅 공개 이후에 원작 소설을 미리 읽어봤다. 초반 열 장을 넘기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럴싸한 논리를 통해 풀어내는 로봇법이 모호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의식 생성기 설치 하나로 안드로이드가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이해되지 않은 것도 있고. 사건이 일어나고 재판이 진행되는 부분은 집중이 되긴 했지만, 시로의 여자 친구 미나를 묘사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말의 대사가 소설을 관통하며 제목의 이유를 정의 내린 점은 좋았는데, 오히려 그 부분을 극에서 제대로 살리지 못하여 의아했다.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혼란과 슬픔에 사로잡히는 아오를 극 내내 볼 수 있다. 특히 앞열 정중앙은 거의 달려들듯 가까이 다가오는 배우와 정확하게 눈을 맞출 수 있겠더라. 71년 전 유행곡 'VIXX'의 사슬을 생각보다 길게 춰서 좋았고, 안드로이드 탄생 부분은 본업 Error가 떠올라서 재밌었다. 거의 재롱잔치 수준으로 아오가 주도하는 이 초반 장면만으로도 아오 팬들은 만족할 수 있으리라. 성윤표는 오랜만인데 역시 대극장 발성이 참 좋았고, 쓰리피스 정장도 좋았다. 각 역할마다 의상이 하나씩밖에 없어서 배우들이 크게 힘들진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표는 법정을 포함하여 왼쪽 동선이 엄청 많아서, 켄아오보다 성윤표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온 느낌이다.

 

 

이상아 배우가 무척 좋았는데, 베알에서 이미 만났더라. 초반 미나의 사랑스러움과 카운슬러의 단단한 다정함이 매력적이었다. 승용배우는 이미 믿보배인데, 상대 변호사 역의 후반부 솔로 넘버가 특히 좋았다. 대부분의 넘버들이 다소 서정적인 데다가 똑같은 가사를 네댓 번씩 반복하는 후렴구가 귀를 지치게 만들었는데, 인간의 오만한 탐욕을 드러내는 승용인구의 이 넘버만이 감칠맛을 끌어올렸다. "어이가 없습니다", "납득이 안됩니다" 라는 서인구 말버릇은 자첫자막러의 입에도 착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송스루 느낌으로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반복하는 아오의 "어쩌면 좋을까요" 소절은 극 내내 몇 번이나 나오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체감상 최소 스무 번은 넘을 듯. 

 

 

인간의 본질은 의식인가? 의식을 지닌 존재는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하는가? 그 기준을 의심하는 것도, 주장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모두 인간일진대, 그마저도 인간의 교만함이 아닌가. 인간들만이 공방을 주고받으며 논쟁할 때 주체인 안드로이드는 배제되어 있는 인간'만'의 법정 그 자체가 거대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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