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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in 디큐브아트센터, 2022.10.07 7시반

 

 

 

 

하신비 마틸다, 주현준 브루스, 구더기팀 정아인 라벤더, 은시우 토미, 정혜람 앨리스, 임동빈 나이젤, 정은서 아만다, 이서준 에릭. 박혜미 허니, 최재림 트런치불, 강웅곤 미세스 웜우드, 차정현 미스터 웜우드, 이하 원캐. 신비마틸다 데뷔 무대! 재연 마틸다 자첫.

 

 

기적 같은 아이 마틸다가 돌아왔다. 달라진 공연장 무대 위에 새로운 아이들의 얼굴이 담겼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이야기의 본질만큼은 그대로였다. 3년 하고도 9개월 만인 이 놀라운 극과의 재회는 커다란 설렘만큼 만족스러웠고, 또 벅차게 고마웠다. 일상에서 문득문득 떠올랐던 장면들을, 때때로 의지가 되던 대사와 가사들을, 고스란히 다시 마주할 수 있음이 어찌나 기쁘던지 눈물이 자꾸 차올랐다. 특히 마지막 장면부터 커튼콜까지 내내 이렇게 오열할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을 생각보다 더 많이 아꼈고 기억했던 것보다 더 깊이 사랑하고 있었구나.

 

 

 

 

신비마틸다가 처음으로 무대 위에 등장하여 처음으로 입을 열고 "울 엄마는" 라는 첫 소절을 처음으로 내뱉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기적 같은 마틸다의 첫 무대를 함께 하고 있다는 벅찬 짜릿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 특별한 찰나야말로 기적 같은 순간이 아니던가. 똘망한 눈과 맑은 얼굴로 음정 하나 단어 하나를 정성껏 발음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 모습이 너무나 눈부셨다. 브루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트런치불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쬐끄만 몸으로 다부지게 '옳지 않음'에 저항하는 신비틸다의 견고함이 뿌듯한 충만감을 선사했다. 공중곡예사의 임신 소식에 온 세상이 기뻐하며 폭죽이 펑펑 터지는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눈동자만 도르륵 굴리는 그 얼굴이, 극 내내 한결 같이 담담하던 표정과 대비되어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았다.

 

 

초연을 네 번 보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해 무척 아쉬웠던 혜미허니를 드디어 만났다. 내면이 단단하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일 정도의 허니쌤이었는데, 그렇기에 문제로부터 매번 도망치려고만 드는 소심함이 어떠한 성장과정에서 비롯되었을지 더 와닿았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반복된 학대와 상처가 겹겹으로 쌓여 불투명한 막이 된 채 제니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구속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기적 같은 아이"를 떠올리며 기어코 한 걸음 내디뎌보는 그 작은 용기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지하실에 갇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던 어린 소녀가 비로소 알을 깨고 어른이 되는, 성장 스토리.

 

 

초연 자첫 공연에서만 만나고 무려 4년 만에 만난 재런치불은 여전히 악랄하고 얄미웠다. 경력직답게 장면마다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곳곳마다 재미있었다. 이토록 무시무시한 트런치불이 군림하고 있음에도, 그의 의자에 방귀 방석을 놓고 케이크를 훔쳐 먹으며 주전자에 도롱뇽을 집어넣는 온갖 용감한 장난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들의 순수함과 대담함을 절감하게 한다. 아무리 억압하고 핍박해도 아이들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나도 틀렸으니 나 또한 쵸키로 데려가라고 외치는 그 용감한 동지애가 그래서 더 찬란하고 존경스럽다.

 

 

 

 

익숙한 얼굴이 여럿 있는 성인 앙상블 배우들은 이미 수차례 공연을 해온 듯한 능숙함으로 아이들을 받쳐줬다. 합을 맞춰 짜임새 있게 완성해야만 하는 장면이 많은 이 작품을 온전히 완성시켜주는 배우들이다. 현준브루스는 성인 배우와 다름없는 안정적인 완성형의 연기를 보여줬다. 자연스러운 성숙함과 선명한 톤의 목소리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쵸키에 다녀온 후로는 몸에 새겨진 압도적인 공포에 무력해진 모습으로 속상함을 자아냈다. 리볼팅 도입도 시원하니 짜릿했다.

 

 

구더기팀 역시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뽀짝 대며 무대를 굴러다니는 뽀시래기 서준에릭은 그의 데뷔작인 안나 재연에서 세료자로 이미 만났던 배우여서 더 반가웠다. 가장 어린 아이다운 귀여움이 있지만, 리볼팅 직전에 dog의 스펠링을 일부러 틀리며 트런치불을 노려보는 눈빛은 절대 예사롭지 않다. 얼굴을 구기며 개기는 표정 또한 일품이니 놓치지 말기를! 초연 때도 몹시 사랑했던 아만다와 라벤더를 다른 배우로 다시 만날 수 있어 새롭고 기꺼웠다. 은서아만다의 격렬한 춤 동작과 아인라벤더의 찰떡같은 능청스러움이 광대를 자꾸만 끌어올렸다. 곳곳에서 안정감 있게 날아다니는 혜람앨리스와 든든하면서도 은근히 팔랑거리는 시우토미에게 계속 눈길이 갔고, 감초처럼 톡톡 튀는 동빈나이젤에게 자꾸 시선을 빼앗겼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리볼팅 때 눈이 다섯 개만 더 있었으면 해.

 

 

 

 

긴장했는지 중간중간 대사 속도가 빨라지며 발음이 살짝 뭉개지는 부분들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고 침착하게 장면을 마무리하는 신비틸다는 마틸다 그 자체였다. 어떤 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듯한 한결같음이 바로 신비마틸다의 노선이자 매력이었다. 이제 막 첫 무대를 멋지게 끝마친 이 배우가 앞으로 어떻게 마음껏 가지를 뻗어내며 마틸다를 그려낼지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나의 여섯 번째 마틸다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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