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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한국 사회가 이렇게까지 가부장적으로 변하게 된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 이전에도 왕위는 아들이 물려 받고 성씨도 대개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등의 제도들은 존재했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여자를 홀대하고 아랫사람 취급하는 풍토는 전쟁 이후 파괴된 사회질서를 잡기 위해 지배계급이 적극적으로 퍼뜨린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산상속은 남녀균등하게 의무와 권리를 모두 받았고, 재가에 관해서도 여자와 남자의 차별이 없었다. 돈이 많은 집안의 여자는 부부관계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가졌다.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해당 시기에 사용되었던, 혹은 그 시대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의붓'이라는 단어가 있다. 조선초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이 단어는 義父, 즉 '의리 상의 아버지'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아이가 있는 부부 중에서 한 사람이 먼저 죽었을 경우에 아이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한 통념이 존재했다. 어머니가 죽은 경우, 아이는 이모 혹은 외조모가 양육하고 아버지는 부담 없이 새장가를 갔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새엄마, 즉 계모를 만날 확률이 적었다. 이는 콩쥐팥쥐와 같은 동화 등에서 '계모'가 거의 항상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아버지가 먼저 죽은 경우,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간다. 즉, 계부를 만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이렇게 새아버지가 된 새로운 남자는 의리 상의 아버지, 의부가 되고 이것이 '의붓'이라는 단어로 파생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복'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굉장히 흔하게 쓰인다. 이복형제, 이복자매는 말 그대로 배가 다른, 어머니가 다른 형제 혹은 남매를 뜻한다. 하지만 '이부'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은 없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는 마땅히 異父라고 불러야 함에도, 그런 단어는 현실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는 조선 후기에 여자는 재가가 금지되었던 것과 관련된다. 여자는 남편이 죽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수절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남자를 만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다른" 형제, 자매, 남매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내용은 다 교양시간에 배운 거고, 실제로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도 많다. 부부가 상대의 가족에게 부르는 호칭, 혹은 말투를 생각해보면 뭔가 위화감이 있다. 부인은 나이 불문 항렬에 맞춰서 존대를 해야 하지만, 남편은 본인 기준에 맞춰서 말을 높이고 낮춘다. 나이도 한참 어린데 꼬박꼬박 도련님, 아가씨, 하면서 존대해드려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불편하다. 그리고 아주 사소하게는 부인 아버지를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면서, 어머니는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도 짜증... 남자는 그 집의 가장 높은 '어른'이라는 거고 여자는 그냥 높여 불러 드리겠다는 거잖아. 세대가 변하면서 호칭 문제 역시 조금씩 바뀌고 있다지만, 오랜 시간 사용되어 온 많은 단어들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있는 이 차별 정신은 쉽게 판별해내고 고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