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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기만 한 마지막 날이 밝았다. 준비를 더 잘 해왔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후회는 이제 공허할 뿐이다. 기말고사였다는 핑계가 있긴 하다. 하지만 역시 나는 철저한 준비보다는 직접 부딪히며 많이 걷고, 가끔은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다니는 것이 더 잘 맞는 여행 체질이다. 이걸 이제는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남기고 온 아쉬움은 언젠가는 올 것으로 믿는 '다음 기회'에 채워보기로 해야지. 10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돌아오기 위해 일찍 숙소를 나서서 은각사로 향했다.
은각사로 가는 길인 '철학의 길'은, 정말 이름을 기똥차게 지은 것 같다. 생각보다 좁고, 별 거 없는 길임에도 단순히 저 이름 하나 때문에 기꺼이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사람 많으면 완전 아웃일 듯.
작은 돌다리가 교토의 분위기를 뽐낸다. 일상적인 산책로로서의 철학의 길.
여행 내내 자주 목격한, '술'을 관장하는 것 같은 뚱땡이 너구리를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찍을 수 있었다.
은각사까지 올라가는 길 역시 좌우로 가게들이 많았다.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수많은 교복 입은 학생들....... 이른 아침인데, 일정이 바로 여기부터구나 얘들아ㅠㅠㅠ 입구에서부터 들기 시작한 불길한 마음은 은각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현실이 되었다.
은각사-하면 대표로 꼽히는 모래 언덕. 독특한 모양의 모래를 다듬느라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관리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이렇게 관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새삼 대단하다.
특이해서 찍어 본 창틀.
이런 모래 정원을 처음 가꾼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잔잔한 수면 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절로 들었다.
바글바글한 학생들. 수십 명의 학생이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여 열 명 내외로 무리지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움직였기 때문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간다' 혹은 '발걸음을 빨리 해서 추월한다' 라는 선택지가 모두 불가능했다. 앞뒤로 치이며 불편하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ㅠ
순로대로 걷다보면 언덕 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래 정원과 건물들이 어우러져 멋진 광경을 만들어냈다. 나무가 걸리지 않는 유일한 포토 스팟은 학생들로 계속 채워져서 나는 낄 틈이 없었다ㅠㅠ 은각사는 정말 '후다다닥'이라는 정확한 표현으로 보고 나왔다. 이른 아침에 가면 관광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짠 일정이었지만, 아침이기 때문에 단체 관광객이 많을 수도 있다는 걸 예측하지 못한 나의 패착ㅠ 결국 내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은각사보다는 금각사가 더 취향인 걸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찍은, 철학의 길에서 한가롭게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는 앙증맞은 곰돌이네 가족.
가는 날이 되어서야 찍은 숙소 로쿠로쿠의 입구. 왼쪽이 구비된 자전거들이다.
캐리어를 어디에 맡길지 고민하다가 전날 인터넷으로 기온시조역에 코인락커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온거리로 향했다. 400엔 주고 짐을 맡긴 뒤, 우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체인점 하나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아서 잠시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판기를 발견해서, 자판기로 계산을 해야 주방에 주문이 들어가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주문했다.
튀김우동과 규동.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청각사, 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기온거리에서 바로 보이는 입구.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을 뒤로 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걸었다. 한참 걸어야 함.
인적이 드물어 과연 맞는 길을 걷고 있는 건가 싶긴 했지만, 표지판도 더러 보이고 이것보다 큰 길에서는 지나가는 인력거도 마주치는 걸 보아하니 맞는 길인 듯 했다.
걸린 그림이 너무 예뻐서 잽싸게 찍어 본 가게 외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다만 구름이 없는 푸른 하늘 아래의 교토는 점차 찜통 날씨로 변해갔다는 슬픈 이야기가.....ㅠ 정말 너무 더웠다. 게다가 오르막... 한여름의 교토를 맛보기로 경험했다.
드디어 조금은 북적이는 거리에 도착! 슬슬 관광지라는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청수사에 가려면 우선 계단 많은 건 각오하시는 게 좋습니다.
드디어 도착! 입구부터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었다. 사진 함께 찍어달라는 부탁에 매우 바쁘시던 언니들.
독특한 건물이 많아서 동생은 벤치에 앉혀놓고 사진 찍느라 바빴다. 조금 옆으로 빠지면 한산한 경내가 나온다.
본당은 유료 입장. 시간도 그렇고, 체력도 그렇고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 들어가진 않았다. 유명한 세 개의 물줄기는 아마 이 안에 있는 듯하다.
지붕에 집착한 사진들.
내려가다 보니 왼쪽에 탁 트인 곳이 보여서 재빠르게 가봤다. 완전하진 않지만, 교토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밤에 오면 야경이 정말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어디를 가든,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야가 너무 매력적이다♡ 사진에는 온전히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눈에 가득 담고 왔다.
거의 교토타워만이 유일하게 높은 건축물이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시내의 모습. 다음에 교토에 다시 들리게 된다면 기요미즈데라 만큼은 반드시!! 재방문 해야지^^
더위에 지쳐 시럽을 잔뜩 올린 300엔짜리 얼음빙수를 사먹었다.
기념품과 먹거리를 잔뜩 팔던, 교토 느낌 물씬 나는 거리. 여기서 부채 하나 사서 여름 내내 잘 썼다.
기온거리에서 기요미즈데라까지 가는 도중에 신사와 사찰이 꽤 많았다.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 기요미즈데라만 보고 왔지만, 여유를 가지고 이곳저곳 둘러본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여기를 조금 일찍 일정에 넣었어야 했다는 후회도 들고..ㅠㅠ 그래도 기념품과 선물을 사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기에 마지막 일정으로 넣은 곳이었고, 덕분에 일정의 끄트머리에서 편하게 쇼핑할 수 있었다.
코인락커에서 짐을 찾고 교토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기온거리 빠염~~ 교토역에서는 이코카 카드에 남은 돈을 모두 먹을거리로 소비하고 보증금을 환급받았다. 하루카 출발 시간에 맞춰 간사이 공항까지 이동한 뒤, 피치항공을 타고 무사히 한국으로 귀환했다. 엔화를 다 쓰겠다는 일념으로 공항에서 이것저것 먹거리 선물만 잔뜩 샀다. 초반에 아끼다가 마지막 날에 후회하며 마구 지르는 이 여행 소비패턴은 다음 여행부터는 고쳐나가야 겠다. 앞으로는 지를 땐 확 지르고 모자라면... 음... 신용카드 긁는 걸로?!?ㅋㅋㅋㅋㅋ
교토여행은 사실 동생 덕이 컸다. 아직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 동생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홀로 쾌재를 부르고 계획을 세웠다. 사실 방사능 때문에 일본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동생이 동남아보다는 일본에 가고 싶어해서 결국 교토로 합의를 봤다.
지난 도쿄 여행에 비해서는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토보다 도쿄가 더 취향에 맞았다는 것이다. 교토는 고풍스럽고 전형적인 '일본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어딘가 색이 바랜 동네라면, 도쿄는 일본의 느낌이 남아 있는 곳도 있으면서 신주쿠처럼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선 세계적인 대도시의 분위기도 물씬 풍긴다. 몇 년 간의 여행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취향이 그 곳의 분위기와, 무엇보다도 '건물'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깨우쳤다. 교토는 그런 의미에서 내 취향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본풍의 건축보다는 세련된 곡선미를 뽐내는 한국식 가옥이 더 좋다. 날카롭고 투박한, 소위 말하는 '사무라이'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교토는..... 뭐랄까, 조금 불편하기까지 했다. 도시에 대한 기본 인상이 썩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여행의 후기 역시 조금은 부루퉁한 느낌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역시, 근 2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는 점에 너무 감사했고, 동생과 둘이서만 함께 한 첫 여행이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다음 여행에서는 더 나은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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