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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해진 게스트하우스의 이층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대강 일정을 확인했다. 동생을 깨워봤지만, 어제 걸은 거리가 꽤 부담이 컸는지 도통 일어나질 못했다. 그래서 더 자게 내버려두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무료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은각사 철학의 길에 사전답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와 은각사가 가까운 거리임에도 마지막 날 일정으로 잡았기에 아직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자전거 자물쇠 비밀번호는 체크인 때 알려준다.



철학의 길은 자갈길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기에는 썩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도로 이동해 살짝 돌아서 은각사 앞까지 갔다. 일요일의 이른 아침에도 철학의 길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이나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을 드문드문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길을 산책로로 사용하고 있는 현지인이라. 멋진데? 







이렇게 한산한 은각사 입구는 내일 오면 결코 찍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에 이 날 몇 장 찍었다. 음, 현명했어.





이 날은 일정 상 버스1일권을 사용하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날 체크인할 때 구입했던 버스1일권 개시! 우선 교토역까지 이동한 뒤 거기서 다시 마을버스 느낌의 버스로 갈아타서 후시미이나리로 갔다.





한국어로 가득찬 南5번 버스 안의 소음에 익숙해질 무렵에 도착. 내려서 조금 헤맸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쫓아가면 아침부터 문을 연 가게들과 많은 관광객들을 마주칠 수 있다. 바로 이 때부터 날씨 조짐이 좋지 않았다.... 첫 날은 비가 왔지만 둘째날은 오지 않았기에 우산을 안 들고 나왔는데...... 실수였다ㅠㅠ





일단 후시미이나리 앞에서 손을 씻었다. 여기는 물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ㅋㅋ 안내판에 그림과 함께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도 무심결에 마시고 나서 '으악?! 이거 마시는 거 아니었어!?!'라고 외치는 분들을 여럿 목격했다. 내 동생도 그 중 하나였다는 건 말 못함 ㅇㅇ






여우를 모시는 신사답게 여우상이 많이 보였다. 날카로운 인상의 여우상!





종을 치는 줄이 여러 개 있었지만, 멀찍이서 구경만^^






붉은기가 가득한 주황색으로 온통 물들어 있는 건물들.





후시미이나리 도리이 모양의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걸면, 정말로 이루어질 것만 같다.






저 지붕이 굉장히 신기했다. 가까이서 보면 풀을 말려서 압축해서 넓게 만든 다음 지붕 위에 얹은 것 같은데...






이제 교토여행기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후시미이나리의 명물, 도리이의 행렬이 이어진다. 당연히 끝까지 가볼 생각이었는데, 동생도 굉장히 힘들어하고 나 역시 불편한 신발 때문에 고생하다가 결국 중도에 포기했다ㅠ 완전한 산길이라 모기도 많고, 사람이 없으면 스산했다. 중간중간 묘지 같은 것도 보였고, 옆에 오솔길도 있었다.





지도를 미리 찍은 뒤 그걸 참고하면서 걷는다면 한결 수월할 듯하다.






이런 길이 계속해서 쭉 이어진다.






도리이 뒤편에는 이렇게 기부자로 추정되는 이름들과 해당 연도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도리이 기둥들 안쪽에서 찍으면 어두워서 색이 잘 안나온다. 그나마 밖으로 빠져나와 햇볕을 받으며 사진을 찍어야지 쨍한 주황색이 사진으로 담긴다. 대부분의 좋은 사진들은 후보정인듯?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되기도 한, 세계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곳이다. 한 번쯤 꼭 가야 할 곳!





가이드북에도 실린 맛있다던 타코야끼. 막 만들어 뜨거운 타꼬야끼를 후후 불어대며 금세 해치웠다. 후시미이나리를 나올 때만 해도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갑자기 굵어지더니 쏴아아아아아-하는 엄청난 기세의 빗줄기로 변했다. 황급히 기차역으로 피신해서 폭우를 바라보며 타코야끼 시식을 완료했다. 그래도 비는 그칠 기색이 없길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실내에서 기다리다가 숙소로 돌아가 우산을 들고 나오기로 했다.





동일한 이름의 빵집이 1층, 카페가 2층이기에 한국의 평범한 카페라고 생각하고 1층에서 빵 사면 2층에 앉아있을 수 있겠지 싶어 빵을 사서 올라갔다. 빵집 점원에게 확인까지 했는데, 막상 올라가보니 별개의 가게였다...;; 그래서 따뜻한 커피 한 잔 시키고는 잠잠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막상 교토역에 도착하니 비는 거의 다 그쳤고, 지금 숙소로 가면 다시 나오기 싫을 것 같다는 동생의 불만에 그냥 우산 없이 처음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다음 일정은 금각사! 






금각사의 입장료는 400엔이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금색 건물에 우와-하는 탄성부터 터져나왔다. 교토의 관광지는 주로 은각사vs금각사로 양분되는데, 후기의 약 80% 이상이 은각사를 선호했고 금각사에 대한 평가는 많이 박했다. 그렇기에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줄기가 금각사의 운치를 더한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건물이 꽤 독특해고 매력적이었다. 다만 한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았고, 내가 지금 있는 곳이 한국인지 교토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자 조금 아쉬웠다. 이건 내가 한국인 관광객이 없는 곳을 선호하기 때문임.





금을 얇게 발라서 온통 금색인 외관을 뽐내는 건물을 만든 그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할까. 일본식 정원과 금빛의 휘황찬란한 건물은 위화감을 풍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일본풍의 분위기를 가득 자아내서 깜짝 놀랐다. 호수 너머로 보이는 건물에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반영사진도 예쁘게 찍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모래 정원과, 그 정원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마루.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멋진 위용을 뽐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닭일까 봉황일까.....? 아무래도 후자겠지?ㅋㅋㅋ



정원도 나름 잘 꾸며놨지만, 역시 금각사에서 볼 건 저 건물뿐이긴 하다. 하지만 건물이 썩 마음에 든 나로서는 금각사에 일단 합격점! 그리고 다음 일정은 근처의 료안지였다. 버스를 타러 큰 길까지 나왔는데, 왜 료안지에 가는 버스가 없는거죠?! 한참 멘붕이다가 가게에 들어가서 묻자, 금각사 입구 바로 맞은편에 있는 정류소에 버스가 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정류소를 찾아 료안지 도착! 





료안지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건 돌 정원. 어디에서 보든 정원의 돌을 '전부'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 독특한 정원은, 생각 외로 차분하고 고요했다. 여기를 '철학의 정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위 사진은 정원 전체의 돌 위치를 조망할 수 있도록 입구에 만들어둔 모형이다. 어느 시야에서든 돌 하나 이상은 반드시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는 발상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비가 추적추적 내려 더욱 운치 있는 정원을 마주하고 마루에 앉아 한동안 조용히 멍 때리며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던졌다. 사색에 잠기기 보다는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 많이 찍었는데 갑자기 파일이 에러가 나서 우선 한 장만..ㅠ 실제로 돌들을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집어 넣는 것도 불가능했다. 가로로 퍼진 넓은 정원이다.





내부 사진촬영금지 라는 말이 없어서 후딱 찍어본 그림. 한국의 그림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다.





료안지는 정원도 정말 잘 되어 있었다. 알기로는 료안지 돌 정원만 유료이고, 다른 정원은 무료로 산책할 수 있을 거다. 한 바퀴를 쭉 산책하는데 공기도 좋고 사람도 적어서 기분 전환에 매우 좋았다.






정말 크고 넓은, 호수 수준의 연못이 있었는데, 나무가 우거져서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았다. 그저 눈에만 잔뜩 담았다. 아래 사진은 모형인줄 알았는데 미세하게 움직여서 깜짝 놀래킨 자라.



비를 맞으며 료안지를 산책한 뒤, 카미가와 진자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많이 들리는 신사 같았는데, 유난히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대충 쓱 둘러보기만 했다. 바로 그 날 여기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장이 열려서 그거 구경하는 재미가 더 있었다.






'매월 제 4 일요일'에 열린다는 내용으로 추정되는 붉은 깃발이 잔뜩이었다. 비도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시간도 오후 네시 쯤이어서 다들 슬슬 가판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목걸이 하나 득템! 






은각사 고유의 것으로 생각했던 모래 더미가 여기에도 있었다. 사이즈는 작았지만.





이건 칠월 칠석을 대비하는 소원을 비는 나무인가? 역시 만화책에서 많이 본 비쥬얼이다..ㅋㅋ





여기에도 도오리와 산책로가 있었지만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제로.



이렇게 카미가와 진자를 구경하고 버스를 이용해서 키타야마로 향했다. 가이드북에 예쁜 물품을 파는 가게가 많다고 적혀 있어서 기념품도 살 겸, 겸사겸사 넣은 일정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려보니 수목원이 있는 등, 의외로 일상적인 거리였다. 도쿄로 비교하자면 오모테산도 정도의 느낌? 엄청난 부촌의 분위기까지는 아니었지만, 뭔가 잘 정돈 되어 있는 한적한 동네였다. 개인 취향으로는 이런 곳이 아주 좋다. 관광지가 아닌, 그 곳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뚝뚝 묻어나는 곳에 가면, 나 역시 관광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잠시나마 경험해 보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동생도 이 거리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물론, 가이드북에 있던 모밀소바 집에서 배를 채운 이후의 이야기이다. 빨빨거리느라 제대로 먹은 음식이 없었기에ㅠ





재즈가 흘러나오는 메밀소바 집이라. 들어가보니 bar도 있고, 정말 세련된 분위기였다.





영어 메뉴판. 나는 맨 위의 890엔 짜리를 시켰고, 동생은 맨 아래의 890엔 짜리를 시켰다.






내 것은 정말 무난한 메밀 소바였다. 문제는 동생이 시킨 토로로모리? 소바였는데....... 사진에서 가운데에 계란 노른자가 있고 오른쪽 위에 죽 같이 보이는 것이 담겨 있는 그릇이 있다. 대체 어떻게 먹으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종업원에게 물어보니까, 노른자를 저 '풀'에 풀어서 파란색 사기 병에 담긴 육수를 부은 뒤 메밀면을 담가 먹는 것이라고. 죽이 아니라 풀이었다! 동생은 패기 있게 알려준 방법을 따라하고 시식했지만, 느끼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먹어보니 확실히 느끼하긴 했지만, 독특한 맛이 의외로 입에 잘 맞았다. 역시 여행을 가면 뭐든 안 가리고 잘 먹는 나란 여자ㅋ 결국 동생과 메뉴를 바꿨고, 맛나게 잘 먹었다. 가격 대비 적은 양이긴 했지만, 직접 가게에서 만든다는 수제 면이 정말 맛있었기에 훌륭한 식사였다.





먹다 찍은 거라 좀 지저분하지만, 이렇게 먹는 것. 계란 노른자와 풀이 섞여 끈적한 국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메밀소바 집을 찾아가던 중 카페와 빵집, 레스토랑을 여럿 지나쳤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는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다음 날 청수사에서 이 가게의 분점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다. 꽤 유명한 디저트 가게였는지,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후식으로 케이크를 먹기로 하고 먼저 디스플레이 된 메뉴에서 주문을 한 뒤 자리로 안내받았다. 친절한 종업원의 일본어가 이해하기 힘들어서 난관을 겪었지만 무사히 자리에 안착!! 음료는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동생이 먹은 딸기 쇼트케이크와 내가 먹은 오렌지푸딩. 둘 다 너무 맛있었다. 층층이 예쁘게 만들어진 저 푸딩의 이름이 굉장히 밝고 희망찬 뉘앙스의 영어였는데 전혀 기억이 안난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푸딩이 일상적인 디저트다. 한국은 아무래도 푸딩보다는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이 디저트의 주류지. 카페는 내부 인테리어가 공주풍으로 예쁘게 되어 있었고, 선물용의 과자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나뭇잎 모양 과자를 샀다. 





서점에서 만화책을 구경하다가, 사거리의 INOBUN이라는 가게를 발견하고 아이쇼핑이나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지상 3층부터 지하 1층까지 아주 빈틈없이 훑어보고 나왔다. 정말 사고 싶은 것 투성이었다ㅠ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은 물론, 노트나 파우치 등의 필기류도 많았고, 화장품이나 일상용품 그리고 옷과 가방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가득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구경하다가 결국 마지막 1층에서 손목시계를 질렀다. New Arrival 코너의 귀여운 고양이를 지나칠 수 없었다ㅠㅠㅠ





오른쪽 시계가 바로 그 시계! 지금도 잘 차고 다닌다. 왼쪽 하늘색 목걸이가 카미가와 진자 앞 장터에서 산 거고. 이렇게 마지막 날은 아이쇼핑으로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관광객으로 가득했던 후시미이나리와 금각사, 료안지에서 시작해서 일상적인 일요일 분위기로 가득했던 키타야마까지 둘러보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다양한 교토의 모습을 구경해 볼 수 있어서 기억에 강하게 남은, 교토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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