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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in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 2018.11.29 7시반


류정한 빅터/자크, 카이 앙리/괴물, 박혜나 엘렌/에바, 안시하 줄리아/까뜨린느, 이정수 룽게/이고르, 김지호 어린 빅터, 이유주 어린 줄리아. 류빅터 29차, 류카페어 5차 관극. 부랑켄 자첫. 류빅터도 정말 오랜만이었고, 0811 이후 세달반 만에 만난 성악페어가 새로운 노선을 선보인 덕에 관극이 몹시 흥미로웠다. 평일 지방공이어서 다소의 관크는 있었지만, 남자의 세계 넘버에서 중간박수가 나오는 등 객석 분위기 자체는 좋아서 몰입이 깨질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음향이었다. 초반부터 크게 만족스럽지 않다가, 1막 혼잣말 넘버에서 먹먹한 소리가 났고 나는왜 넘버 인트로 및 초반부분에서 반주 음량이 훅 줄면서 웅, 하는 잡음이 섞였다. 게다가 2막 그대 없이는 넘버 끝난 직후의 천둥 효과음이 나오지 않는 대형참사가 났다. 그로 인해 평소보다 길게 키스한 두 사람이 얼굴을 떼고 다정함과 의아함을 섞어 서로를 바라보는 짧은 정적이 흘렀다. 시하줄리아가 임기응변으로 "천둥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괜찮아?" 라는 대사를 하자, 류빅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안쪽으로 뛰어가면서 평소와 같은 전개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필 다음 장면까지도 반주가 하나도 없어서 잔뜩 긴장했다가, "주인님이 행방불명 됐어요!" 하는 하녀의 대사 끝에 정상적으로 오케가 나온 뒤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넌괴물 시작 전 괴물을 때리는 장면에서도 배우 마이크가 꺼져서 육성 수준의 음량으로 대사를 이어갔고, 류쟠이 실험일지를 읽어주려 첫 운을 떼는 순간 제대로 볼륨이 돌아왔다. 그래서 "사랑하는 친구 앙리" 라는 부랑켄 류배우님 디테일을 온전히 감상하지 못해 속상했다. 공연 무대의 기본인 음향이 이토록 엉망이어서 자꾸 극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게 만든다는 짜증스럽다. 말 나온 김에, 생창기계 앞 철침대도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위쪽 철판이 고정이 덜 됐는지 생창 중간에 훌쩍 뛰어오른 류빅터가 살짝 휘청하셔서 깜짝 놀랐고, 넘버 끝나고 그 위에 카괴를 눕힐 때도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서 불안했다.


※스포있음※


관극했던 삼연 공연들 중에서 가장 냉정하고 날카로우며 귀족적이고 오만했던 류빅터는, 생명창조라는 이상 하나만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단하미에서 손짓으로 카앙의 말을 막던 류빅터는, 그가 설득에 넘어오지 않자 넓게 벌렸던 양팔을 차분히 내리고선 "과학은 생태계를 뛰어넘어!!" 라고 강하게 말한다. "아뇨!" 하며 카앙이 재차 반박하자 류빅터는 어이없다는 듯 크게 비웃는 모션을 취하고선 오른쪽으로 돌며 살짝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당장을!!" 하고 잠시 텀을 주고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바꾸자는 거지" 하고 손을 살짝 내밀며 카앙을 설득한다. "죽음, 지옥, 운명, 저주" 를 하나씩 짚을 때마다 왼쪽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는 류빅터 표정에 흘러넘치는 자신감과 확고함이, 전쟁 속 무력감에 번뇌하던 카앙이 그의 설득에 넘어가는 개연성을 높였다. 한잔술 들어가기 전에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며 자조적인 말들을 내뱉을 때도, 앙리에게 속상함을 토로한다기 보다는 자학의 느낌이 강했다. 카앙이 술잔에 따라준 근심을 빤히 내려다볼 때까지도 표정을 풀지 않다가, 술을 훅 털어넘기고 푸우우, 하며 알콜이 돌고나서야 마음의 벽을 허문다. 카앙이 죄를 자발적으로 뒤집어쓴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류빅터는, "그래야, 우리 연구를 계속할 수 있잖아" 라는 말에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뭐?" 하는 되물음을 반사적으로 토해낸다. "나 대신 살아 친구야!" 하는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넋나간 표정으로 "말도 안돼 이건 아니야" 라고 중얼댄다. 사형선고에 그림처럼 가만히 서있다가 고개를 살짝 떨구며 미소를 짓는 그 순간 카앙은 반드시 연구를 완성해야 한다고 결심했기에, 류빅의 부정과 절망의 목소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너꿈속을 부른다.


그리하여 류빅터는 형형한 눈빛과 아우라를 뿜어내며 운명에 맞선다. 친구 앙리를 살려내겠다는 마음도 없진 않으나, 무엇보다 동료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공동의 목표였던 생명창조를 반드시 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어마어마한 광기를 쏟아낸다. 두 발로 선 괴물을 발견하고 침착하게 관찰하는 류빅터 눈에 흔들림이 없다. 고개를 떨군 채 혼란스러워 하는 카괴에게 가까이 다가간 류빅터는 몸을 낮춘 채 자신을 알아보겠냐고 묻다가, 일어서도록 그를 유도하면서 "내 말 잘들어" 라고 말했다. 처음 듣는 디테일이어서 확실치는 않은데, 저 문장이 넌괴물 넘버의 첫 가사여서 아마 맞지 않을까 싶다. 빅터와 자크의 대사 및 가사가 맞물리도록 하는 디테일을 자꾸 추가하시는 류배우님이 너무 멋지다. 제 손에서 비롯된 결과물이 초래한 비극을 눈앞에서 막지 못한 류빅터는, 생전 울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내지를 수 있는 최대한의 비명을 수차례 쏟아내며 룽게의 몸을 끌어안는다. 무력감과 절망에 잔뜩 젖은 채 고통스러워하던 류빅터는 단호하게 쇠사슬을 그러쥐고 온 힘을 다해 카괴의 목을 조른다. 쇠사슬을 놓친 양손을 내려다보는 류빅터는, 자신이 앙리의 목을 졸랐다는 놀람과 자괴가 아니라 기필코 저 존재를 처단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며 서둘러 총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차마 보고 쏠 수는 없었던지라, 첫발을 쏘기 전 방향 조준까지만 카괴를 쳐다보다가 방아쇠를 당길 때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린다. 깨진 창문 너머로 사라지는 카괴를 망연하게 바라보던 류빅터는 하이노트와 함께 광소를 쏟아낸다.



2막. 류빅터는 자신을 부르는 카괴의 목소리에 살짝 멈칫하고서는 바로 뒤를 돌아본다. 그런 류빅터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천천히 다리 위를 걸으며 문장을 뱉어내던 카괴는, 앙리라는 부름에 서슬퍼런 노여움을 내뿜으며 비로소 그와 눈을 마주친다. 카괴가 강하게 내팽개친 실험일지를 황급히 주워든 류빅터는 3년 만에 제 연구를 마주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낸다. 앙리에 대한 죄책감과 피조물에 대한 무책임함을 매섭게 후벼파는 카괴의 목소리에 류빅터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고통스러워하지만, 도망가는 카괴의 과거 잔상을 마주하는 순간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1막의 노선을 유지한다.


카괴의 노선 자체는 서울공에서 본 것과 유사했지만, 다양한 시도와 디테일을 통해 캐릭터가 보다 풍성해졌다. 난괴물과 상처 넘버를 통해 풀어내는 카괴의 이야기가 훨씬 매끄럽게 정돈되어 감정을 따라가기 편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격투장 한가운데 내던져진 카괴는 상대의 공격으로 인한 아픔에 당황하고, 더욱 열광하는 사방의 광기에 기겁하며 떠밀리듯 폭력에 휩쓸린다. 카괴는 핏빛 광기가 자신을 공격이라도 하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고 분위기를 살피며 상대를 제압한다. 그러다 그 광기 가득한 사람들과 제 앞에서 덜덜 떨며 목숨을 구걸하는 자의 얼굴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 카괴는 휘청이며 걸어나온다. 에바의 행동에 몸을 움츠린 카괴는 뭔가 쏟아지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괴로워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다. 학대를 받은 카괴는 까뜨린느의 손길을 두려워하며 몸을 움츠린다. 자신의 손을 붙드는 까뜨의 손길에 깜짝 놀란 카괴가 손을 빼자, 살짝 놀란 시하까뜨가 이내 따뜻하게 웃으며 다정하게 다시 그 손을 꼭 부여잡았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까뜨린느를 신기함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카괴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리며 어깨를 웅크렸다. 사랑을 모르고 살아온 두 존재가 영혼으로 공명하는 이 장면들이 무척 애틋하여, 이어지는 그곳에는 넘버들까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따뜻함을 알려준 유일한 존재의 배신에도 카괴는 마지막까지 안녕, 하며 손을 흔든다. 철저하게 버려진 채 사무치는 고독에 괴로워하던 카괴는 이 모든 책임을 신이자 창조주에게 지운다. 기괴하게 비틀린 팔과 다리를 끌며 무대 안쪽 경사면을 올라가 위로 삿대질하고, 격투장을 불지른 뒤 무대 앞으로 나와 휘몰아치는 분노를 실어 수차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이 모든 고통은 자신을 창조해놓고 책임지지 않은 당신에게 있다는 원망과 질책. 배우본체의 뒤쪽 목 바로 아래 선명하게 새겨진 십자가 문신이 서울공과 다르게 잘 보여서, 신을 저주하고 책망하는 카괴의 분노와 아이러니하게 맞물리며 극적인 효과를 선사했다. 난괴물 넘버에서 감정을 쏟아낸 카괴는, 상처 넘버로 창조주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를 명확하게 풀어낸다. 이날 류빅터의 노선이 그 설명에 완벽하게 부합했기에, 산만하게 흩어진 이 극의 퍼즐들이 촘촘하게 맞춰졌다.


"스스로 신이 되려 했" 던 류빅터는 마침내 "자신을 닮은 생명을 만들었" 지만, 탄생한 존재가 온전하게 독립적인 개체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앙리의 머리로 앙리와 함께 한 연구를 완성시킨 류빅터는, 그는 창조물이라 먼저 인지했으면서도 성급하게 그를 앙리라 단정지었다. 기존의 생명체인 앙리를 되살리는 부활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생명창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앙리와 괴물의 정체성을 구분하지 못하고, "준비가 안된" 스스로를 간과한 류빅터를 향해, 카괴는 "무책임한 욕심" 에 대한 죄를 묻는다. 류빅터에게 상실의 아픔과 고독의 망연함을 차근차근 선사한 카괴는, 북극의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계획한 복수를 실행한다. 류빅터는 너꿈속에서 카앙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총을 돌려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카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리둥절하고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류빅터에게 카괴는 총을 살짝 까딱이는 동작으로 그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을 종용한다. 그리고 총성. 최종 선고를 내리면서 카괴는 손을 들어 류빅터의 가슴에 가져다댄다. 그곳에는 넘버에서 까뜨린느가 제 가슴에 손을 가져댔던 것처럼. 빅터와 앙리의 첫만남처럼 뺨을 턱 만지는 것이 아니라, 괴물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까뜨린느와의 교감처럼 가슴에 손을 얹는 카괴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앙리가 아닌 별개의 정체성으로 존재했던 괴물과, 그를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앙리를 찾으며 위선적이고 잔인했던 빅터.



카괴가 너무 좋아졌고 류빅터의 디테일과 잔망이 매우 많아져서 행복했다. 다음주 류카페어의 세미막과 페어막이 얼마나 훌륭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렇지만 모든 극을 통틀어 최애페어가 되어버린 류한페어 먼저 잘 보내야하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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