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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18.08.07 8시 공연



류정한 빅터/쟈크, 한지상 앙리/괴물, 박혜나 엘렌/에바, 안시하 줄리아/까뜨린느, 이정수 룽게/이고르, 김지호 어린 빅터, 이유주 어린 줄리아. 류빅터 17차 관극. 류한페어 다섯번째 공연이자 자다섯. 배우들의 감정선과 이야기의 개연성이 몹시 훌륭하여 삼연 들어 가장 많은 눈물을 쏟은 관극이었다. 


※스포주의※


류빅터와 핝앙리는 완전히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으며 함께 꿈과 이상을 좇는 친구 사이였다. 이 관계에도 불구하고 류빅터가 선뜻 진실을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는, "위대한 이상" 을 달성하지 못한 자신이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야망 때문이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처하게 된 위기 속에서 자신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는 듯 "침묵하는 이 순간 웃음" 을 짓던 류빅터는, 스스로의 "추악한 모습" 을 인지하고 "역겨워 참을 수 없" 다며 번뇌한다. "위대한 이상에 저당잡힌 영혼일 뿐" 인 "패배자" 의 면모를, 거울을 깨는 행위를 통해 "벗어나겠" 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을 거치고 나서야 찾아간 한앙의 입에서 "네가 살아야 우리 연구를 계속할 수 있으니까" 라는 말을 들은 류빅터는, 무너진다. 자신만의 꿈이 아니라 앙리와 함께 꾸는 꿈이었음을, 그 꿈을 위해 "나 대신 살아," 라며 그 행동을 "운명이라" "선택" 한 친구의 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순간. 이날 류빅터의 생창은, '친구 앙리를 살려낸다' 보다는, '친구 앙리와 함께 꾼 꿈이기에 그의 머리를 마지막 재료로 그와 함께 생명창조를 완성시켜야 한다' 에 방점을 강하게 찍었다. "생명은 어차피 우연의 소산물" 이라는 생창 가사가 새삼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동일한 머리를 가졌음에도 창조된 '생명' 은 기존의 앙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점이 빅터가 예측하지 못한 '우연의 소산물' 이었기 때문이다. 류빅터는 룽게를 문 지괴가 지앙이 아님을 깨닫고 절망과 울음에 휩싸여 망설임 없이 목을 조른다. 제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앙의 얼굴을 한 지괴와 눈을 마주친 류빅터는 방금 전까지 그 목을 졸랐던 제 손을 경악에 휩싸인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걱정과 공포에 휩싸인 채 3년을 뒤쫓으며 앙리가 아닌 존재를 앙리와 분리시켰던 류빅터는, 돌아온 지괴가 내뿜는 원망과 비난과 분노를 마주하며 죄책감과 절망적인 고통에 사로잡힌다. 류빅터는 자신의 "피조물이 겪어야 했던 이야기" 를 통해 그의 불행을, 그의 악함을, 그의 복수를 납득하지만, 복수의 방법만큼은 예측조차 할 수 없었기에 천천히 그의 계획대로 끝없는 절망을 향해 추락한다. 기차역에서 류빅터는 양손으로 제 오른손을 꼭 붙든 엘렌의 손 위에 나머지 왼손을 올리며 엉엉 운다. 가야한다며 룽게가 잡아 끄는 제 왼손을 내려다보고선, 점차 떨어지는 엘렌을 붙든 제 오른손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아낸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생명창조에 도전하던 어린 날처럼, 누나를 살리기 위해 다시 생명창조를 갈망하며 성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눈앞엔 오직 끝없는 절망 뿐이다. 유일하게 남은 "날 위해 울어줄 사람" 인 줄리아와 했던 "절대로 널 두고 죽지 않아 나를 믿어줘" 라는 약속을 지킨 류빅터는, 정작 줄리아는 지키지 못한다. 모두를 잃고 난 류빅터에게 지난 세월들이 지독한 후회로 돌아온다. "추악한 분노와 처절한 복수" 만 남아 "발버둥치려 했던 내 운명" 을 종결짓기 위해 기어코 찾아온 북극. 지괴가 건넨 총을 반사적으로 탕, 쏘고 떨어뜨린 류빅은 멍한 눈으로 총을 쏜 제 오른손을 내려다본다. 마지막 순간 앙리의 눈빛으로 앙리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 지괴를 끌어안은 류빅터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절규를 토해낸다. "신이 되고 싶었는데 악마가 되어버렸" 던, 지독히도 "나약했던 한 인간" 의 최후. 


지앙은 "태양처럼 다가온" 류빅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두렵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애써 웃으며 기꺼이 마주한다. 그렇게 빅터를 위해 "헌신했던 친구" 인 지앙과 빅터에 의해 "만들어" 진 지괴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지괴라는 새로이 형성된 정체성에, 지앙이라는 기존 정체성이 지녔던 기억과 행동과 성향과 감정의 잔상들이 잔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괴는 '이름조차 없는' 제 처지에 더욱 분노하고 절망한다. 탄생하자마자 룽게를 문 지괴는, 독한 피냄새와 끈적이는 피의 감촉을 느끼며 오른손으로 제 얼굴, 특히 입주변의 핏자국을 문댄다. 그리고 격투장에서 공포에 질린 상대의 얼굴을 본 지괴는, 오른손을 세로로 두며 그의 코와 입 부근을 만져본 뒤 그대로 허리를 편 채 걸어나오면서 똑같은 손동작으로 제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마치 제 얼굴도 인간인 그와 같다는 듯. 이전 공연에서는 이고르의 마무리를 무심한 눈으로 보고 나가던 지괴였지만, 이날은 푹 찌르는 모습을 보며 흠칫한다.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똑같이 가슴에 심장이 뛰고 있음에도, "피는 누군가의 피 / 살은 누군가의 살 / 나는 누군가의 피와 살로 태어났" 음을 증명하는 목과 손목의 상처 때문에 지괴는 "모두에게 괴.물.이라 불" 리며 배척당한다. 끔찍하고 증오스럽지만 이 이외에는 다른 호칭을 부여받은 적이 없는 지괴는, 결국 울먹이면서 "한... 괴물이," 라고 자칭하고 까마득한 절망으로 굴러떨어진다. 울음과 허망함이 짙게 배인 허밍 끝, 지괴는 마치 절대자처럼 창조주를 향해 "내가 당한 고통만큼 돌려주리라" 라고 심판을 예고하고, 행한다. 북극에서 빅터를 겨누고 있는 총을 쥔 오른손을 덜덜 떨며 이대로 그를 죽이고 싶어하는 지괴의 뜨거운 감정과, 힘겹게 머뭇대며 들어올린 왼손으로 총신을 붙잡는 지앙의 차가운 이성이, 하나의 존재 안에 공존한다. 비틀대며 쓰러져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내던 지괴는, 고개를 살짝 비튼 채 빅터의 이마에 제 이마를 붙이고선 울먹이듯 앙리의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오른손을 들어 빅터의 왼뺨을 만지면서, "이게, 나의, 복수야." 라고 불어넣듯 선고를 내리는 지앙의 목소리에 후련함이 담긴 웃음기가 서린다. 삼연 초반의 지괴 노선은 '앙리를 이용한 괴물의 복수' 였는데, 갈수록 앙리와 괴물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더니, 이날은 완벽하게 '앙리와 괴물이 합작한 복수' 였다. 

 

 

오로지 빅터만 바라고 그리워하며 살던 시하줄리아는, 그가 돌아왔다는 룽게의 말에 한껏 차오르는 기쁨을 진정시키며 머리를 정리하고 드레스 위쪽을 만진 뒤 빅터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인다. 그러나 자신을 본 척도 하지 않는 빅터의 모습에 혼란과 당황에 휩싸인다. 용기를 내어 그가 다시 지나갈 때 "빅터," 하고 불러보지만 그는 마찬가지로 무시한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위로하려 하는 엘렌의 말에도 슬픔과 황망함을 감출 수 없는 얼굴이다. 나는왜 직전, "그건 단지 과거에 휩싸인 죄책감일 뿐" 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꽉 껴안는 빅터의 행동에 순간 놀라지만, 바로 그를 마주 껴안으며 기뻐하고 안도한다. 제네바로 돌아온 빅터가 처음으로 줄리아를 제대로 마주해준 것이 이 장면임을 새삼 깨달았다.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손을 놓고 등을 돌리는 류빅터의 모습에 치밀어오르는 울음을 삼키며 나간다. 재판정에서 빅터의 자백이 기각되도록 시장이라는 아버지의 지위를 이용한 시하줄리아는, 엘렌이나 룽게와는 다르게 앙리의 처형장에 가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그대 없이 사느니 "차라리 그대와 함께 죽겠어" 라는 무서운 말을 하는 시하줄리아의 얼굴에 행복함과 절실함이 뒤섞여 있다. "저주를 받아도 나에게서 도망치지 않겠어" 라는 류빅터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한평생 바라던 소망을 이룬다. 천둥 소리에 흠칫 하는 빅터의 모습에 그 후 이어질 일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부케를 소파 구석에 밀어 넣고 그를 붙들려 하지만 실패한다. 아버지가 죽고, 그 살인자로 지목된 엘렌이 목매달린 후에도, 빅터에게 "두려워 그대 잃을까" 라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빅터를 사랑한 시하줄리아.

 

 

시하까뜨는 괴물에게 "왜 지난 번에," 하고 설명하려다가 그가 말을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곰," "고오오옴," 하면서 커다란 덩치를 표현하기 위해 벌린 양팔을 위아래로 꿇은 무릎을 양 옆으로 크게 휘적댄다. 괴물의 상처를 보고 마치 제가 다 아프다는 듯 한숨과 안타까움을 토해내며 그의 몸을 닦아낸다. 괴물이 몸을 움츠리거나 피하려 들면, 머리 부근을 끌어안듯이 품에 안고 "괜찮아요," 하고 진정시킨다. 지괴가 "누구도 상처주지 않아" 하며 제 가슴에 자신의 왼손을 가져다대자, 거기서부터 그대로 오로라를 만들어내며 하늘 높이 훨훨 날아가는 나비처럼 손가락을 나풀거린다. 괴물을 향해 잘 보라는 듯 동작을 크게 하며 노래하는 시하까뜨는, 인간이 없는, 자유가 있는 세상을 꿈꾼다. 괴물과 함께 있었음을 들키자 반사적으로 살려달라 빌기부터 한다. 산다는 건 넘버 시작 전 병을 향해 손을 뻗었던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절망한다. "하!" 하는 비웃음을 넘버 중에 두 번 넣는 디테일이 지난주부터 생겼다. 우물에서 퍼올린 물을 담은 바가지를 왼손에 약병을 오른손에 든 시하까뜨는, "산다는 거 거참 우습네 / 산다는 거" 하고 이를 악문 채 "하!" 하고 자조가 담긴 비웃음을 크게 내고 "구역질이 나" 하고 이어간다. 약을 타고 병을 우물에 던지면서 괴물이 갇힌 독방을 향해 갈 때, 좁은 보폭으로 발을 끌듯이 미끄러지며 잰 걸음으로 걷는다. 긴박함과 초조함, 긴장감을 모두 놓치지 않는 디테일인데, 괴물의 손길을 뿌리친 뒤 다시 우물가로 걸어가는 걸음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걷기 때문에 극적 대비가 더욱 뚜렷하다. 걸음걸이로 급변하는 감정을 표현해내는 시하까뜨 몹시 사랑합니다. 창문 너머로 제 손을 붙드는 괴물의 손에 화들짝 놀라며 "하지마," 하고 말하며 "아아아아," 하고 절규하고선 돌변한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며 "짐승이 양심이 어디있어!" 하며 "하!" 하는 자조의 탄성을 또다시 내뱉는다. "산다는 것이 고.맙.게.느.껴.질.지," 하며 들어올린 양팔을 확 내리고, "이런 날 누가" 하고선 "침, 뱉나" 하고 팔을 내리며 침을 뱉는 모션을 취하는 고정 디테일도 좋아한다. 무대 안쪽에 서서 까마득한 바닥을 발견하고 힉, 소리를 내며 놀라는 장면에서, 지난주 공연 중 한 번 "살려주세요," 라고 애드립 넣은 적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괴물과 시선이 맞자 눈을 돌려 피하던 시하까뜨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절박하게 주변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굴린다. 괴물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넌 어떤 미친 사람이 만든, 괴물이야" 하고 가장 잔인한 말을 쏟아내고선, "짐승만도 못하다구!!" 하며 달려들듯 발을 구른다. "주인님 제발" 하며 양손바닥을 맞댄 채 허리를 꾸벅 숙이다가 앞으로 달려와 무릎 꿇고 "제발 자비를," 하고 비는 시하까뜨.

 

 

혜나에바는 마침 잘 말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다가가 치마를 홱 걷고선 허벅지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단도를 꺼낸다. 공연 초반에는 서에바가 "자.비." 라고 끊어 말하고 혜나에바가 "자비~" 하며 놀리듯 비아냥거렸는데, 요새는 디테일이 서로 바뀌었다. 혜나에바 애교가 갈수록 증폭되어 함께하는 류쟈크 애교도 증가하고 있다. "갈기갈기 찢어줄꼬야" 하면서 류쟠의 지팡이를 같이 맞잡고 마주보며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고, 괴물과 추바야 결투 장면에서 서로 마주보고 꿀렁거리며 춤추고 애교 떠느라 정신이 없으며, 까뜨린느의 발악을 비웃으며 시시덕거리기 바쁘다. 0725 류성 공연에서 페르난도를 발견한 혜나에바가 짜증을 내자 류쟈크가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결연히 "내가 처리할게" 하고 나서자, 혜나에바는 일말의 기대를 담은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역시나 하찮아지는 류쟈크를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 치며 짜증스럽게 앞으로 나서던 혜나에바. 반면 이날은 혜나에바가 진심으로 류쟈크를 예뻐하며 뭘 해도 응응, 하는 눈빛을 보냈고, 류쟈크 역시 잔인한 본성을 굳이 헤픈 웃음으로 숨기며 혜나에바를 부둥부둥 챙겨주는 찰떡궁합 커플이었다. "나 품절됐쟈나" 하는 제 말에 "지랄, 나도!" 하는 혜나에바의 얼굴을 붙들고 키스를 한 류쟈크는, "오늘밤 기대해." 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혜나에바는 또 신나게 채찍을 휘두르며 완전 좋아~ 하며 쫓아나갔다.

 

혜나엘렌도 디테일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전 공연들에서는 평화의 시대 파티장에서 사람들의 말에 발끈하고 매서운 노여움을 담아 노려봤다면, 이날은 자신을 배척하는 이들에게서 스스로 거리감을 유지하는 느낌이었다. 반면 외소이 넘버 직전 대화에서는 자신들에게 거리를 두지 않는 앙리에 대한 호의와 다정함이 실렸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하며 무력하고 광기에 찬 과거에 대한 자조와 허망함이 배어든 웃음기를 목소리에 섞는다. 불길에 휩싸인 성에 갇힌 동생을 구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비는 혜나엘렌. 슈테판이 쳐낸 빅터의 손을 대부분 붙들고는 양 팔을 쓰다듬으며 위로한다. 빅터가 넘어지자 놀라서 다가가려다가, 줄리아가 먼저 뛰어가자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울면 안 돼. 사람들이 얕봐." 하는 빅터의 말에 서엘렌은 옅은 한숨을, 혜나엘렌은 멈칫거린다. 줄리아의 강아지를 안고 나가는 빅터를 본 혜나엘렌은 양손을 꼭 모아쥐고 하늘을 향해 든 채 "제발," 하고 무탈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하다가, 소란스런 소리에 울면서 무대 오른쪽으로 뛰쳐나간다. 기차역에서의 이별을 보여줌에 있어, 외소이 넘버는 엘렌의 시점이고 그날에 내가 넘버는 빅터의 시점이다. 외소이 넘버에서 혜나엘렌은 가방을 룽게에게 건네고 "어서, 빅터." 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이별을 고하다가, 빅터가 절절하게 자신을 끌어안자 힘겹게 울음을 토해내고선 그를 떼어낸다. 하지만 그날에 내가 넘버에서는, 처음부터 애틋함과 미안함을 듬뿍 담은 눈으로 애써 웃으며 다정하고 절절하게 동생을 위로한다. "하지만 기억해 / 넌, 특별해" 하며 그의 눈을 들여다보는 혜나엘렌과, 그 뒤에서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수룽게가 얼마나 빅터를 위하고 사랑했는지 명확히 드러났기에, 빅터가 느끼는 절망과 죄책감이 한껏 극대화된다. 이 넘버에서 처음으로 박수가 나왔을 만큼 배우들의 감정이 짙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군중의 광기에 이미 체념한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변론을 하지만, 그마저 허공으로 흩어져버릴 것임을 잘 알고 있는 혜나엘렌의 마지막 순간.

 

 

전반적인 류빅터/류쟈크와 지앙리/지괴물 디테일은 지난 회차와 유사했다. 첫만남에서 룽게에게 끌려가며 류빅터를 계속 돌아보는 지앙리. 단하미에서 "과연 생명은 창조되어질 수 있는가" 를 다시 부드럽게 말하는 류빅터. 그에게 반박할 때는 객석 기준 오른쪽으로 90도 몸을 돌린 채 무대 상수를 향해 서있던 지앙리는, 그에게 설득당하고 난 "멸망을 향해 치닫는 무지한 인간" 부분에서는 반대로 무대 하수를 향해 서서 노래했다. "오른팔이 필요하시겠군요," 라는 류빅터의 말에 같은 생각을 했다는 듯 씨익 웃으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지앙리. 빅터가 싸하게 만든 분위기를 룽게가 대신 사과하는 모습에, 이제 내가 나설 때로군! 하듯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와 양 팔을 벌리며 "대단히!" 하고 강조하다 끌려나간다. "가만 보면 눈치가 좀 없는 거 같아" 하는 건 정수룽게 디테일이다. 끌려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는 지앙리 앞머리가 예쁘게 휘날렸다. 외소이가 끝나고 뛰쳐나가는 류빅터를 향해 큰 소리로 "빅터!" 하고 부르는 건 지앙리만 한다. 빅터를 잘 부탁한다는 엘렌의 말에 룽게가 왔는지 확인하려 오른쪽으로 돌아보는 것도 지앙리만 했던 것 같고. 여기서 룽게가 총 챙기러 갈 때, 정수룽게는 나와서 서있던 그 자리에서 바로 성큼성큼 문으로 돌아가며 뿌연 연기를 손으로 휘휘 내젓는다. 대종룽게는 "그래요 아가씨," 하면서 앙리와 엘렌 사이까지 걸어간 다음에, 어휴 하는 표정을 앙리에게만 내보이며 잰걸음으로 돌아간다. 이날 지앙리는 "빅터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 전쟁 중에!" 하고 대사를 강조했다. 격해진 제 감정에 약간은 부끄러워하며 눈가를 훔치고선 빅터를 따라나간다.

 

한잔술. 류빅터가 퍽퍽 내리치자 지앙리는 역시 엉덩방아를 찧는다. 양팔을 소심한 엑스자 모양으로 붙든채 지앙의 팔에 매달린 류빅터의 입모양이 정확히 'ㅅ' 모양이었다. 그런 그를 자리에 앉히며 지앙리는 "우리 빅터 많이 취했구나," 하고 타이르듯 말한다. 벌떡 일어난 류빅터에게 "빅터 앉으세요" 하는 말투도 다정하고 능숙했다. 모든 술을 다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줄 가장 좋은 방법이라 확신하는 지앙리. "아이구야," 하고 중얼거리지만,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서는 빅터를 보며 활짝 웃는다. 매달리듯 "앙리, 여기선 내 의지가 통하질 않아" 하고 울먹이는 류빅터와 그런 그를 위로하는 지앙리. 불신의 표정으로 제 잔에 술을 따르는 걸 지켜보다가 "근심을 담고" 라는 말에 맞아맞아, 하며 좋아하는 류빅터. "나~~~~~" 길게 뽑고 바닥에 떨어져 무릎 꿇은 자세로 류빅을 올려다보는 지앙ㅋㅋ "부모도 형제도 없지만" 하는 지앙리의 말을 들은 이날 류빅터의 표정은 근심보다는 오히려 속상함에 가까웠다. 테이블 위에서 몸을 풀고 안무하다가 중간에 서서 골반을 너무나 화려하게 돌리는 류빅터ㅋㅋㅋㅋ 무대 앞쪽에 이끌려온 류빅터는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린 채 지앙리가 춤 추는 것을 유심히 보다가 신나서 함께 춤을 췄다ㅋㅋㅋㅋㅋㅋ 아 진짜ㅋㅋㅋㅋㅋ 한잔술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ㅠㅠㅋㅋㅋㅋㅋ 정수룽게에게 코알라처럼 매달린 류빅터는 그의 뺨을 꼬집으며 "우리 룽게가 쓸모가 이써써요" 하고 신나게 뛰어나간다.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도 웃음기를 실어 최대한 담담하고 다정하게 말하는 지앙리. 철창을 사이에 두고 류빅터를 마주한 채 "그 속에 너," 까지 부른 지앙리가 무대 앞으로 뛰어나올 때, 평소에는 간절하고 다급했다면 이날은 후련한듯 가볍고 날랜 걸음이었다. "날 위해 울지마" 하며 류빅터의 손을 꼭 붙든 지앙리는, "함께 꿈꿀 수 있다면 / 죽는대도 괜찮아" 부분에서야 그 손을 뿌리치고 다시 무대 앞으로 나온다. 이외에 처형대에서의 디테일은 0803 공연과 유사했다. 류빅터의 생창도 지난주와 비슷하게 갔는데, "종교인의 위선" 말고 "출구없는 치정자의 억!압!" 을 강조했다. 도르레 끌어올리면서 "한줄기 빛 서서히 스며들어 숨을 쉰다" 라고 부르는 부분을 "눈을 뜬다" 로 개사한 류빅터. "이제 눈을 떠" 하고 이어지는 가사여서 "새로운 세상을 보아라" 라는 명령조가 새삼 강렬해졌다. 이날도 류빅터는 막 태어난 지괴와 동일한 포즈를 취한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다리는 뒤로 쭉 뻗은 자세의 지괴처럼, 오른쪽 무릎만 세워 왼쪽 다리보다 살짝 앞에 둔 채 자세를 낮춘 류빅터. 일어나서 걷기까지의 행동을 유도하면서도 날카롭게 지괴의 동작을 관찰한다. 첫 발을 지괴를 보며 조준하지만 쏘는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광소.

 

몹시 사랑하는 지괴의 도망자. 바뀐 동선을 유지한 류빅터는,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는 조명 변화에 맞춰 이날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확 돌리며 표정을 바꾼다. 이날 총이 두 번 먼저 발포됐고, 그 다음에 류빅터가 세 번째로 발포했다. 그러고보니 1막 중위앙 총이 발포가 안됐다. 근래 생창 넘버 시작할 때 기계 앞으로 밀어내는 스탭이 두어번 보이기도 했고, 여전히 액자틀 구조물 엄청나게 흔들리고 괴물들 올라가는 사다리도 위태로워 보여서 신경 쓰인다. 막공까지 신경 잘 써주면 좋겠다. 절망. 계단을 내려오면서 오른팔을 펴 엘렌의 시체를 가리킨 지괴는 "같은 일을 하려했나" 라고 물으며 비릿하게 웃는다. "복수는 이제부터" 라며 친절히 안내하듯 양 팔을 벌리는 지괴. 그런 그의 코트 앞섬을 붙들며 제 몸을 끌어올리는 류빅. "살아서 내가 아팠던 만큼 / 느껴라" 라고 위압적으로 말하는 지괴. 저기 달을 보라는 듯 몸을 난간 너머로 숙이며 하늘을 올려다본 지괴는, 머리를 짓누르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 류빅터를 재차 노려보고는 웃음소리를 남기며 뛰어 내린다. 줄리아의 죽음 이후, 지괴가 무대 오른쪽을 바라보며 선 채 모자를 벗는 위치와 방향과 자세가, 너꿈속에서 지앙이 "태양처럼" 이라 부르며 빅터를 향해 몸을 돌리던 것과 동일하여 극적 대비를 증폭시켰다. 후회 넘버에서 "내 심장이 뛰었는데" 하며 제 가슴을 오른손으로 퍽 치는 류빅터의 행동이, 난괴물 넘버에서 "내게도 심장 뛰는데" 하며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퍽퍽 내리치는 지괴의 행동과 맞물리듯 겹친다. 북극. 미소 띈 괴물의 얼굴을 끌어안은 류빅터의 마지막 절규, 생창맆.

 

류한페어 디테일을 최대한 생략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망했네. 찰나의 예술을 덕질하고 있기에,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이라는 행위를 3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그 시간, 그 공간, 그 감정을 유리병에 담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없기에, 편파적인 생각과 주관적인 판단을 가득 담아 한계와 제약이 존재하는 글이라는 수단을 사용 중이다. 오른쪽, 왼쪽, 위아래 등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디테일을 굳이 세세하게 기재하는 이유도, 훗날 가능한 생생하게 그 공연을 떠올리고 추억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모든 리뷰들은,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불친절한 글이기도 하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2018년 여름을 회상하기 위해 이 글을 읽고 있을 미래의 나를 위하여 오늘도 이렇게 자기만족용 후기를 남겨본다.  

 

덧. 이날 재판정에서 희정슈테판이 처음으로 "지금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발언은 신빙성이 없습니다!!" 라고 풀네임 제대로 불러주셨다ㅠㅠ 지난주부터 슈테판 대사들을 신경써서 눌러 발음하신다는 인상을 받긴 했는데, 정말로 빅터의 풀네임을 듣게 되어 새삼 감격적이었다. 부디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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