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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in 엘지아트센터, 2017.08.12 7시 공연
류정한 시라노, 최현주 록산, 임병근 크리스티앙, 이창용 드기슈, 김대종 르브레. 류라노, 블리록산, 빙티앙, 용기슈, 대종르브레. 류블리빙 페어 자셋, 시라노 5차, 류라노 4차.
류라노는 직전 관극인 0810 만큼의 완벽한 성악톤은 아니었지만, 0812 이날 역시 목상태가 엄청 좋으신데다가 넘버 변주에 긴 호흡에 적절한 추임새에 애드립까지 유려했던 훌륭한 공연이었다. 연기 노선이 또 달라졌는데, 짙은 감성의 인간적인 시라노가 전달하는 메세지가 깊고 강렬했다. 10일이든 12일이든 너무 좋아서, 스케쥴이 허락하는 한 류라노 공연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님 마티네 회차가 너무 많아요ㅠㅠ 마지막 티켓오픈 떄 잡을 수 있는 회차가 너무 없었어요ㅠㅠ
※스포있음※
지난번에 류라노 찬양하느라 못했던 다른 배우들 얘기 좀 간략하게 남겨야겠다. 빙티앙은 프리뷰 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특히 이날 솔로곡도 정말 좋았고, 깨알 같은 디테일도 많아졌더라. 처음 공연을 시작해 넘버 중간에 무대 하수 쪽 구조물에서 등장해서 시계를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에, 눈이 마주치며 스쳐지나간 그 장면 이전부터 록산을 사랑하고 있었음이 확연히 보였다. 시라노의 고백을 듣고 마침내 사랑을 깨닫는 록산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하고 발코니 아래 기둥을 껴안는 디테일도 인상적이었다. 2막에서 시라노와 대립하는 '그녀는 당신을 사랑해' 넘버도 엄청 짱짱하게 류라노와 대립하며 귀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마지막 "사랑해" 부분 화음도 정말 좋았고. 블리록산은 요새 컨디션이 베스트는 아닌 것 같았으나, 감성이나 고음처리가 깔끔해져서 듣기에는 오히려 편했다. '최고의 남자' 는 여전히 연출이나 내용이 아쉽긴 하지만, 록산이 시라노를 어떻게 생각하고 아끼는지 절절히 마음을 담아 불러줘서 무척 사랑하게 된 넘버다. 용기슈는, 어쩌다보니 아직까지 원캐로 보고 있는데 정말 말이 필요없다. 솔로넘버 정말 시원시원하고,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넘친다. 이날 빵이 유난히 작아서 한 입에 다 먹어버린 것도 귀여웠고ㅋㅋ 류라노는 록산을 쳐다보고 감정에 깊게 빠지느라 술을 한 모금도 안 마셨기에, "자네는 누가 봐도 술에 취한 사람같군!" 하는 용기슈의 대사가 어색했다ㅋㅋ 이날 스윙 배우가 처음 올라오셨다는데 뭔가 생경한 느낌은 있었지만 보면서 정확하게 캐치는 못했다. 앙상블 노래 잘 하시는 건 확실히 인지했고. 가스콘 같은 남성 보컬 위주의 웅장한 떼창이 너무 좋다.
류배우님은 디테일도 많고 늘 그랬듯 좋아서 가능한 짧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일단 애드립ㅋㅋㅋㅋ 록산이 찾아온 라그노네 빵집에서 가정교사 내보내는데 살짝 발이 걸렸는지 뒤쪽 빵 선반이 대차게 흔들려서 배우들도 현실 놀람에 소품을 붙들었다. "어우, 큰일날 뻔 했네요" 라거나 "이거 비싼 가겐데" 하며 선반을 쓰다듬는 애드립을 보며 류로듀서의 면모를 발견하고 빵 터졌다ㅋㅋㅋㅋㅋ 극 초반 '나의 코'나 '터치', '거인을 데려와' 넘버들에서는 진중하고 진지했고, 록산과의 만남에서 크게 실망한 이후에는 입꼬리를 땅끝까지 끌어내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내보였다. 가스콘 넘버 끝나고 대종르브레 옆에 서서 제대로 안 묶인 오른손 붕대 끝을 입으로 물고 꽉 묶는 모습에 심쿵했다. 류배우님 요새 너무 잘생기셔서 엄청 행복하다ㅠㅠㅠㅠ 사랑해 마지 않는 손 디테일도 많아졌는데, 록산이 잡았던 제 손을 소중하게 끌어안는다거나, 발코니씬에서 록산을 향한 사랑을 노래하며 풍성하게 손짓을 사용한다. 지난 번에도 했던 디테일 중에, 록산 만나기 전 인사 연습 하는 거나, '달에서 떨어진 나' 시작하기 전에 가스콘 대원들과 논의하면서 양 손을 머리 위에 대고 토끼 귀 동작하는 거 귀엽다ㅋㅋ
발코니씬에서 록산이 사랑을 깨닫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발코니 아래에 숨은 빙티앙도 감격하고 있지만, 그 사랑의 말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오해에 빠져 감동하고 행복해하는 류라노의 얼굴이 기뻐보이는 만큼 더 아팠다. 그러다가 "왜 몰랐던 걸까 진실한 그대" 이라는 록산의 말에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현실로 돌아와버리는 류라노. 냉정하고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며 무겁디 무거운 걸음으로 다시 크리스티앙에게 돌아가 옷을 바꿔 입고 다시 발코니가 보이는 아래쪽으로 빠지며 위를 올려다본다. 조금 빨리 달빛 아래로 나갔고, 록산의 마지막 피치에 맞춰 뒤를 돌아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상처뿐인 승리". 전쟁 중에도 록산을 향한 마음은 더욱 깊고 짙어만 갔기에, 하루또하루 초반 감정이 애틋하고 아름다웠다. 매일매일 목숨을 걸고 보낸 편지는 오로지 "당신이 기다릴테니," 라는 이유라는 점에서 그 마음이 예쁘고 또 아팠다. 그리고 15년 후 마지막 장면. 인간, 다운 결말이었다. 두려움도 있고 고통도 있고 원망도 있는. 그러나 드디어, "내 입술로 맺어진 열매" 를 마지막에서야 "누리"며 제 입술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의 감격을 오롯이 드러내는 점도 좋았다. 얼론맆 시작 전, 입술과 입술이 소중하게 맞닿는, 이날 공연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록산의 키스를 받은 그의 속 깊은 곳에서부터 고통스럽고 애처로운 신음이 토해진다. "날 할퀴는 사랑도," 하며 록산의 얼굴을 감쌌고, "전쟁과 운명도," 하며 매서운 눈빛으로 하늘을 향해 삿대질 하는 류라노. 그 끝이 외롭지만 고독해보이지 않아서, 결국 마지막까지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다 간 시라노의 삶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서, 슬프고 안타깝고 애처로왔지만 아름다웠다.
"이 깜깜한 세상 속에 / 그 사람만 빛나는데 / 언젠가는 모두 사라져도 / 오직 그 사람만은 여전할 거야
/ 늘 그랬듯 진실하며 자유롭게 지금처럼 / 나의 곁에"
'최고의 남자'의 마지막 이 가사가, 류라노의 이날 노선이었다고 느꼈다. 진실하고 자유롭게, 본인이 원하는 삶을 끝까지 추구하면서, 두려워도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살아간 사람. 류배우님의 시라노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제 다음 관극은 며칠 후 뎅라노네. 같은 역할인데도 전혀 다른 느낌이기에 새로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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