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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말을 아끼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아홉시도 되기 전, 트위터 알람이 울리기에 별 생각 없이 알림창을 가볍게 내렸다. 순간 눈에 들어오는 첫 문장. "안녕하세요, 에릭입니다." 곧장 이어지는 페북링크. 심장 깊은 곳에서 뭔가 직감한듯 잔잔하지만 격렬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고, 태연하고 가벼운 동작으로 클릭한 링크 속 글은 2012년 이래로 줄곧 각오해왔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결혼. 오빠의, 결혼.
충격이나 배신감 혹은 허탈함보다는, 그저 멍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이 글로 접한 소식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왜 그러냐는 주변의 물음에 입 밖으로 '에릭의 결혼' 이라는 단어를 한 음절 씩 끊어 내뱉는 소리를 제 귀로 들으며,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각오했던 것보다는 무덤덤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하게, 무거웠다.
신화 덕질 역사를 빤히 알고 있는 중학교 동창들이 카톡을 날렸다. 괜찮냐는 질문들을 향해 그저 담담하게, 이제 그럴 나이 됐지, 그냥 예전에 얘기한대로 나랑 술이나 마셔 주라, 하고 답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그러더라. 아니라고. 그럴 때가 됐다 하더라도, 내 오빠는 아니라고. 가면 안된다고. 그 위로 아닌 위로를 읽자마자, 재차 현실이 보였다. 그래, 내 오빠가, 가는구나. 다들 때 되면 한다는 그 결혼, 한 가정을 꾸리고 책임지며 헌신하겠다는 그 묵중한 약속을, 오롯이 한 사람만을 향해, 이제 하겠다는 거구나.
슬프다거나 고통스럽게 아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유일한 원망이 있다면 지옥 같은 월요일, 그것도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직전에 이런 거대한 뉴스를 핵폭탄처럼 떨어뜨렸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대선후보들 공식 선거유세 시작일이었는데, 퇴근시간까지 실검에서 내려오질 않더라. 멍한 표정으로 그저 아득한 기분으로, 내내 구름 위에 둥실거리며 밀려 다니는 듯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류배우님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르구나. 오롯이 축하와 축복만을 보내드릴 수 있었던 그 소식과 같은 감정일 수가 없겠구나. 십수년을 아끼고 사랑해온 사람의 결혼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구나.
하지만, 안다. 이해한다. 매일 차근차근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내 아이돌이자 만인의 오빠라는 정체성 뿐만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이 응당 누려야 할 인생 또한 존중하겠노라 다짐을 거듭해왔다. 그랬기에 그날 퇴근 후 집에서 홀로 마시던 위로주의 마지막 잔을 따르고 나서, 가만히 건배사를 읊조릴 수 있었다. 인간 에릭, 인간 문정혁 개인의 행복을, 온 마음을 다해 바란다고. 그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부디 찬란하게 행복하시라고. 당신의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수없이 상상해온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마주한 현실을 나름대로 잘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자꾸 눈물이 떨어진다. 쉽지만은 않다. 릭옵 결혼 관련해서 글을 언제 써야할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오늘 뎅옵 페북글을 읽고 주저 없이 포스팅 창을 열었다. 뮤덕을 자칭하고 난 뒤로, 신화 팬덤에는 아예 관심을 끊었다. 너무 피곤했다. 이번 공식 신화창조에 가입하지 않았다. 신화에 대한 애정이 줄었다기보다는, 그 마음을 공유하며 겪어낼 감정소모가 야기할 필연적인 무력감과 허탈감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월요일 결혼 발표 이후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소요와 소동과 문제제기가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 그닥 알고 싶지도 않다. 그 상처를 직접적으로 위로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방식으로, 내 언어로, 이 마음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 눈물은, 오빠를 보내는 팬의 섭섭함이 아니라, 그 길에 축하와 축복만을 한가득 뿌려주지 못해서 속상한 팬의 미안함이다.
뭐, 어찌됐든, 본인이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해서 선택한 결정이다. 애초에 타인이 왈가왈부하며 평가해댈 만한 일도 아니다. 이 모든 억측과 추측과 날선 감정들이 그저 흐르는 대로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릴 뿐, 먼발치의 팬으로서는 크게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래서 그저 온 힘을 다해 단 하나의 바람을 빌어본다. 그대의 행복을. 밝고 찬란함이 가득할 미래를. 아픔을 견뎌내게 만들 기쁨이,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따뜻함이 존재하는 일상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애정과 사랑을 보냅니다. 행복하세요. 에릭 오빠,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