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in 예스24아트원 2관, 2024.07.20 3시 최재웅 나레이터, 드럼 서수진 뮤즈. 전캐를 찍었던 극이 돌아왔으니 재연을 한 번은 봐야겠다 싶어서 객석에 앉았다. 초연에 비해 작아진 무대와 달라진 뮤즈가 조금 생경했지만, 여전히 능숙하게 관객과 이야기를 쥐락펴락하는 웅나레의 안내에 편안하게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웅나레가 내뱉는 첫 소절에 전율이 일었고, 트로이의 찰나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전쟁의 사례를 끌어오다가 끝내 인류사의 대형 전쟁들을 나열하고 마는 장면에서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초연보다 더 강하고 뜨겁게 내뱉는 이름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힌다. 3년 전보다 더 늘어난 대사에 아득한 절망이 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과거의 내가 초연 후기를 잘 써놨더라. 작..
일리아드 in 예스24스테이지, 2021.08.26 7시반 김종구 나레이터, 이기화 하프 뮤즈. 일리아드 자셋자막. 윱나레의 무대는 담백하고 정갈하다. 작은 책상 위에 술 두어 병과 라디오가 놓여있고, 그 라디오에서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무대 왼편 뮤즈의 하프 옆에 투구가 걸려있다. 무대를 서성이며 동전을 툭툭 바닥에 떨어뜨리던 윱나레는, 공연을 시작한다고 말하는 어셔를 잠시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흘러나오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을 입모양으로 망연히 따라부르던 그가 라디오를 끄고 일어선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겁디 무거운 발걸음과는 사뭇 다른, 과하게 밝은 얼굴로 지나치게 발랄한 목소리로. 얼굴의 온 근육을 사용해 아이처럼 웃는 그 역시, 전쟁을 온 몸으로 겪어낸 소년병이었다. ..
일리아드 in 예스24스테이지 2관, 2021.08.20 7시반 황석정 나레이터, 김마스터 기타 뮤즈. 일리아드 자둘. 동일한 텍스트가 연출과 배우 노선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침낭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다가 부스스 일어나 사과를 깎아 베어 무는 웅나레와 객석의 관객에게 타로카드를 하나 골라보라 권하고 의미를 풀어주는 석정나레는 시작부터 끝까지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헬라어로 서두를 시작한 석정나레는 대사에 고저를 넣어 리듬감 있게 흐름을 타고, 지친듯 무심한듯 입을 뗀 웅나레는 청자를 끌어들이고 설득하면서 점차 끓어오른다. 다채로운 색감을 덕지덕지 엮어내는 석정나레와 무채색과 핏빛만으로 채워내는 웅나레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본질을 노래한다. 석정나레는 예언자다. 마..
일리아드 in 예스24스테이지 2관, 2021.08.07 7시 최재웅 나레이터, 장재효 퍼커션 뮤즈. 일리아드 자첫. 개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무척 궁금했던 이 극을 드디어 만나고 왔다. 일리아드라니, 1인극이라니, 나레이터마다 뮤즈의 악기가 다르다니, 각각의 나레이터가 풀어내는 텍스트 일부와 런닝타임의 차이가 있다니! 고전을 다룬 작품은 수없이 많지만, 확고한 주제를 가지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각 배우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더해 목적적합하게 풀어내는 완성도 높은 작품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이야기를 모르는 청자에게는 친절하고 이야기를 아는 청자에게는 섬세하고 자세한 연출 덕분에 곱씹을수록 맛있다. 특별한 소품 없는 흙바닥 위를 뛰어다니며 객석과 눈을 맞추고 수없이 반복한 이야기를 또다시 노래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