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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2.25 2시
류정한 지킬/하이드, 아이비 루시, 최수진 엠마. 류지킬/류하이드 자열넷. 류과자숮 페어 자둘.
디테일은 26일 후기에 남기고 오늘은 전체적인 노선만 간단하게. 예상했던 대로 22일이 레어공이어서, 노선도 다르고 이전과 다르게 넣었던 미소 디테일이 싹 없어졌더라. 전체적으로 지난주와 유사한 공연이었는데, 1막에서 목이 유난히 안 좋으셔서 조금 아쉬웠다. 크리스마스라고 커튼콜 인사가 끝난 뒤 산타 모자를 쓴 음감의 지휘와 함께 신나는 캐롤이 연주됐는데, 머더머더의 눈이 예쁘게 떨어지는 푸른 조명 가득한 무대 위에 배우들이 다시 등장하지 않은 것도 섭섭했다. 류배우님은 뒤돌아서 머리를 푸른 다음 손키스를 날린 오른손을 평소처럼 머리 위에서 휘리릭 흔들고 멋지게 인사하기만 했다.
이날 류지킬은 파사드에서 지나가는 행인들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며 인간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했다. 레드랫 테이블 앞에 앉으면서도 이 상황과 사람들을 한심해하다가, 자신을 정확히 응시하는 루시에게서 시선을 피하거나 떼지 못하고 저도 모르는 새 동요되어 휩쓸리고 만다. 이성만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그가 루시를 통해 제 내면의 감정을 마주하며 비로소 자신 또한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그 이름하여" 에드워드 하이드가 탄생하고 만다.
"미워하긴 힘들죠, 나니까"
"내가 그토록 없애고 싶어했던," 하며 거울 아래쪽 테이블을 손으로 탁 내리친 이날의 류지킬은, 하이드의 행동이 제 내면 깊이 꽁꽁 숨겨두었던 욕망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비웃고 무시하던 성 주드 병원 이사회 위선자들의 부고를 신문으로 읽으며 죄책감과 동시에 후련함을 느끼고 괴로워했을 것 같은 지킬이었달까. 꽁꽁 숨길 수밖에 없는 죄악감을 "슬픈 비밀" 이라 명명하며 하이드를 거부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전부가 되기에 이르른 그를 통제해야만 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불사르며 웨이백을 부른다.
지난주부터 가슴에 손을 올리는 동작이 잦아져서 이날은 아예 그 디테일에 집중해봤다. 아닛투 후반부 "오직 나만이 가야 할 험난한 길" 하며 오른손을 가슴에 올렸고, 이사회가 끝난 뒤 어터슨에게 미래를 보았다고 말할 때 "난 답답한 것을" 하며 왼손을 가슴에 얹었다. 약혼식에선 오른손을 가슴에 올린 채 "가야 할 길 내가 걸어갈" 부분을 불렀고, 실험 직전 "내 심장처럼 붉기도 하지" 하며 왼손을 심장께에 올렸다. 썸원 직전 숙녀분이 찾아왔다는 풀의 말에 "내 명함을?" 하며 왼손을 가슴 부근으로 들어올려 가리키는 손동작도 있었다. 단단한 의지를 표명할 때는 오른손을, 감정적인 동요가 있을 때는 왼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한 해석일까. 2막에서는 웨이백 "내가 선택한 이 길을", 로인닼맆 "날 막을 수 없어" 하고 지킬이 의지를 불사르는 부분에서만 가슴 위에 오른손을 올렸기에 생각이 확고해졌다.
의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류지킬과 그런 그에게서 비롯된 류하이드의 컨프롱이 이토록 팽팽하게 대립한 건 필연적이었다. "개소리마라" 하고 양손을 들어올린 하이드가 "니가 죽어도" 하며 왼손 검지를 들어 다시 한 번 삿대질한 다음 "나는 살아" 하면서 왼손만 쓰는지 양손을 다 쓰는지로 힘의 크기를 가늠하곤 하는데, 이날은 양손을 다 사용해서 제 가슴팍을 세게 내리쳤다. 하지만 지킬도 만만치 않았는데, "난 널 죽이고 웃음질테다" 부분에서 오른손과 함께 왼손까지 들어 양손을 앞쪽으로 뻗어냈다. 류지킬의 이 디테일은 1219 공연에서만 본 것 같은데, 그 이전 공연들에서 했었는지 아니면 내가 놓친 건지 잘 모르겠다. 강력한 하이드와 그에 지지 않는 지킬의 날선 대립이 컨프롱 후반부를 압도했고, 마지막 순간 꽉 쥔 오른손을 위로 치켜든 류지킬은 본인의 승리를 확신했음이 분명했다.
결혼식 서약의 순간 휘청이다 눈을 까뒤집은 류지킬은 하이드의 존재를 느끼고 "오 제발," 하고 중얼대며 엠마를 제게서 떨어뜨린다. 하필 지금 이 순간 돌아온 하이드를 원망하듯 저주하듯 고통스럽게 장갑을 벗어던진다. 엠마 덕분에 다시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더 이상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왼손을 붙든 채 무대 앞쪽으로 달려 나오며 다시 한번 "오 제발" 하고 읊조린 뒤 "하느님 제발!!!" 이라 절규한다. 이제 편히 쉬라는 엠마의 말에 비로소 깊이 숨겨두었던 비밀을 내려놓고 가벼운 얼굴로 미소를 짓는 류지킬.
댄져 직후 루시가 제 손길을 홱 피하며 가버리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객석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오른편으로 세게 "퉤!!" 하고 침을 뱉는 류하이드 디테일은 이날이 처음이어서 몹시 짜릿했다. 내일 공연은 또 어떤 노선과 디테일이 가득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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