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간사이 첫 번째 여행기 읽다가 갑자기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져서 시작하는 두 번째 여행기. 내 글은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지만, 그 글을 내가 직접 쓰고 나서야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함정이자 난관이다ㅎㅎ 다른 글은 그냥 마음이 동할 때 확 시작하면 되는데, 여행기는 사진을 정리 및 편집하는 과정이 필요하여 시간과 정성을 조금 더 요한다. 


기차 시간을 미리 확인해두었기에, 시간에 맞춰 역사에 도착했다. 네1동 까페에서 킨켄샵에 대한 글을 읽긴 했는데 못 찾아서 그냥 특급권(4,260엔)을 구매했다. 나고야 킨테츠 역에서 오사카 남바 역까지 2시간 11분 소요. 기차에서 먹을 벤또도 하나 샀는데, 전반적으로 일본 벤또가 크게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매번 묘하게 불만족스러워.  



전반적으로 옅게 깔린 구름 너머 파란 하늘과, 너무나도 일본스러운 가정집들을 스치듯 지나치는 기차의 창가에서 멍한 상념에 잠겼다. 한국의 지하철처럼,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인 기차라는 문화가 매번 신기하다. 좁은 골목들, 늘어서있는 자전거,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찰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마주했던 풍경에 들끓던 내면의 스트레스가 잠잠해짐을 느꼈다. 기차 내 칸을 지나다니는 역무원이 칸에 들어서고 나서 한 번, 나가기 전에 한 번, 바르게 서서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모습은 무척 단정하고 각잡힌 친절이어서 익숙한데도 줄곧 신기했다. 


남바 역 코인락커에 짐을 맡기고 간사이 패스 개시했다. 목적지는 나라. 사슴의 도시라고 해서 전혀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여행 아니면 또 언제 가볼까 하는 생각에 반쯤 충동적으로 결정하게 됐다. 급행으로 20분 소요. 이른 아침이라 가게는 거의 안 열어서 산책하듯 걷다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간고지 절을 발견했다. 입장료 500엔.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에 고민 없이 입장했다. 



본당에서는 행사 중이었고, 왼쪽에 박물관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볼만했다. 건물 미니어쳐도 있었고, 이런 저런 전시물을 구경하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 작은 불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내부 촬영이 금지라서 사진은 남기지 못했는데, 눈코입이 없는 나무 불상의 얼굴에 음영이 져서, 마치 지옥불 속에서 비명지르고 있는 듯한 고통스러움이 확 느껴졌다. 조금 더 큰 불상들은 하단이 분류를 위한 번호표가 달린 밧줄 같은 끈으로 묶여 있어서 족쇄 같았고. '불행해 보이는' 불상들과의 만남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한 가운데 짧게 걸어볼만한 정원이었다. 간고지 절 자체가 일반 주택가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어서 무척 고요하고 침착한 분위기였다. 비석 같은 돌들 사이를 걷다 보니 마음도 차분해졌다. 



그 외에도, 있을 건 다 있는 정원이다. 



백제에서 파견된 기와박사가 만든 기와가 여전히 저 극락당 위에 얹어져 있다. 백제의 수도, 부여의 기와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확실히 여타 일본 기와와 다르게 무척 친숙했다.      



이제 도다이지로 향하는 발걸음. 



슬슬 사슴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원을 엄청 넓게 해둬서 사슴들이 걱정 없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생각보다 냄새가 심하진 않았다. 



거의 다 뿔이 잘렸던데, 거기가 가려운지 아니면 나무 뿌리 안을 먹기 위해서인지 자꾸 뭉뚝한 머리 위의 뿔로 나무를 짓이기더라. 얘들은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더라. 그리고, 떨어져 있는 건 다 주워 먹으려 드는데, 비닐도 씹는 걸 목격하고 기함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내내 바닥 쓰레기를 주우며 다녔다. 씹다가 결국 못 삼키고 뱉은 패트병 뚜껑부터 시작해서 담배 꽁초에 비닐 찌꺼기까지. 깨끗한 편인 거리임에도 쓰레기가 많아서 걱정이 되더라. 



물론 사람 손에 든 것도 일단 다 뺏으려 든다^^ 이거 사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축축한 뭔가 들이대서 떨어뜨릴 뻔하니까 주변에서 어어~하면서 조심하라고 해줬다. 도다이지 보고 나오면서 사슴 간식용 센베 하나 샀는데 진짜 엄청나게 들이대서 도망다녔다ㅋㅋ 이왕이면 여러 놈들에게 주고 싶어서 한 마리에게 많이 주지 않으려 피해다녔다. 중간에 눈이 마주친 애기들이 센베를 빤히 보길래 하나씩 쥐어주기도 했다. 아, 식사인지 사료 쭉 뿌린 것 중에 사슴들의 입이 안 닿는 자리에 있는 거 주워서 건네주기도 했고.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인데ㅋㅋ   



따끈한 햇살 아래에서 졸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라니. 부러운 인생이구만.



절 문간에도 태연작약하게 서 있는 모습. 



도다이지. 동대사. 입장. 딱 보기에도 규모가 거대한데, 대불전 안에 들어가보면 정말 어마어마하다. 유럽의 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위압적인 '종교의 위엄'을 여기서 동일하게 경험했다. 절 답지 않게 높은 천장과 공기 중에 짙게 깔린 묵직한 위엄이 개개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종교를 절감하게 했다. 절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풍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목조건물 다운 고풍스러운 빛바랜 외관도 인상적이었다. 



출구 쪽으로 걸어나오는 길에 찍은 옆모습. 역광이긴 한데 꽃 피는 계절에 정말 예쁠 것 같더라. 한 번 쯤 방문해볼 가치가 있는 도시, 나라였다. 박물관도 있었는데, 다리가 아파서 패스했다. 다시 난바역으로 돌아와서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고베에 가기로 했다. 여러 도시를 들리는 만큼 종일 기차만 타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40분 쯤 걸림. 역에서 내려서 조금 헤매다가 인포센터를 발견해서 지도를 득템했다. 백화점 쪽 육교 건너서 길 따라 쭉 가면 플라자고베가 나온다.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니 사진 찍을 틈도 없이 휙휙 지나다녔다. 가다가 우동집 들어가서 우동 한 그릇 먹고, 젤리도 잔뜩 사고, 호로요이도 샀다. 캐리어도 싸게 팔아서 하나 사볼까 했는데 끌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아쉽지만 포기했다.  



부엉이카페! 들어가 볼까 했지만, 포유류는 좋아해도 조류는 아직까지 거부감이 들어서 포기했다.



모자이크 도착. 마치 10년도에 갔던 도쿄 오다이바의 비너스포트 같은 곳이다. 토토로를 비롯하여 다양한 캐릭터의 가게들이 가득해서 정신 없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애기를 데려간다면 발걸음 떼게 만들기 힘들 것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적당히 지르고 나서야 숨을 좀 돌릴 수 있었다.



호빵맨 박물관도 있다! 둘러보는 것 자체는 무료인 것 같아서 들어가보니 앙증맞은 공간이 펼쳐졌다.



미용실 보고 깜짝 놀라서 한 장 찍어봤다. 슈돌 보면 애기들은 미용실을 조금 무서워하기도 하던데 이런 공간이라면 환상적인 동화 속에 들어간 듯 혼을 쏙 빼놓을 수 있을 것 같더라. 작은 무대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 공연도 있는 것 같았지만 보진 않고 나왔다. 



이랬던 고베타워가, 해가 떨어지니 슬금슬금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다이바 만큼 크진 않지만 빨간색이 인상적인 관람차에도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가 오다말다 해서 좀 쌀쌀했다. 겨울인데도 해가 빨리 떨어지지 않아서 상념에 잠겼다. 애초에 이 여행을 지른 이유가 답답하고 허무하고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였음을 새삼 떠올렸다. 떠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압박감에 홀린 듯 떠나온 서울에서 이제 좀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의 일상을 한 걸음 떨어져 구경하고 있노라면 뒤에 남겨두고 온 내 일상이 조금은 미화되는 법.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호로요이 한 캔을 홀짝홀짝 마셨다. 대충 편의점에서 파는 호로요이 맛은 전부 먹어보고 온 것 같다. 어마어마하게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크게 그립지는 않지만, 왜 인기가 많은 지는 잘 알겠더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야경을 마지막으로 눈과 가슴에 가득 담고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대충 안내판 보면서 걷다보니 큰 어려움 없이 고베의 지하철 역에 도착하여 간사이 패스로 탑승하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싣고 오사카로 되돌아갔다. 싼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생긴 지 얼마 안되어서 깔끔했지만 역에서 꽤나 멀었다. 번화한 오사카 도톤보리를 한참 걸어 벗어나고서도 더 걸어들어간 주택가 사이에 있었다. 도톤보리는 명동 느낌이더라. 번잡하고 호객도 많고 호빠(...)도 있고, 완벽한 유흥가랄까. 가는 길에 세븐일레븐에서 오뎅 사들고 가서 에비스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동거리는 길었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게 즐거웠던 둘째 날이었다.  


공지사항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