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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여러 긴 휴일 찬스들 중 단 하나의 휴가계획도 세우지 못해서 초조해있던 찰나, 그냥 질러버릴까, 하는 충동이 생겼다. 교환학생 시절이라면 그게 일상이었겠지만, 지금은 직장인인 터. 슬슬 운을 띄워보고 하루쯤 연차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패키지와 자유여행 사이에서 온종일 고민하다가 결국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가보지 못했던 곳, 그래도 익숙한 곳. 일본. 그것도 간사이. 3년반 전 교토만 가보았으니 그 이외의 도시들을 가보기로 했다. 특가는 아니지만 잔여석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제주항공을 찾아내어 나고야 in 간사이 out 으로 항공권을 질러버리고, 아고다에서 휘리릭 호스텔까지 싸게 예약했다. 이제 일정이 문제였는데, 계획 세우기 너무 귀찮아서 하루를 통으로 보낼 수 있는 유니버셜을 갈까 한참 고민했지만, 자본주의의 성지에 간다면 정말 눈이 돌아갈 것 같아서 다음 기회로 연기했다. 중요한 노선의 교통을 확인하고 간사이쓰루패스 2일권에 나고야 주부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기차표, 하루카스 입장권, 유심만 출국 전날 주문해서 공항에서 수령하도록 해뒀다. 작은 캐리어에 옷만 대충 넣어 새벽 같이 일어나 공항버스 첫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돈 많이 벌어서 1터미널에서 항공기 타고 싶다^_ㅠ... 심지어 제주항공은 2터미널 중에서도 왼쪽 맨 끝에 위치한 게이트였다. 정신 없이 인터넷면세점 구매한 것들 수령하고 2터미널로 넘어가니까 할 게 없어서 와이파이 맘껏 쓰며 한참 앉아 있다가 탑승했다. 나고야 주부공항에서도 끝에서 내려서 한참 걸었다. 메이테쓰 선 급행 타고 40분 만에 시내로 이동. 지하철 역이 크고 노선이 많아서 좀 헤맸지만, 무사히 코인락커에 캐리어 넣고 메구리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이런 정류소가 다른 버스 정류장들 사이에 숨어 있다. 8번정류소였나, 그 쯤에 있었던 것 같다. 처음 탈 때 1일권을 500엔에 사서 버스 탈 때 기사에게 뒷면 날짜를 보여주면 된다. 이거 있으면 나고야성 입장권 할인 되던데 몰라서 할인 못받았다. 차내에 팜플렛 있으니 가지고 다니면서 정류장 별로 도착시간을 확인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류소에도 시간표 있으니 사진 찍어도 되고. 느긋하게 다니려고 나고야성이랑 텔레비젼타워만 갔다. 차내에서 다음 정류소에 대한 소개가 방송으로 나오는데 대강 들으면서 이동했다. 문 닫힐 때마다 "요이~ 이키먀쇼!" 하며 두 목소리가 만담하듯 웅장한 척 하는 말투로 설명을 하는 게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첫 번째 기사님이 그 방송 사이사이에 본인이 마이크 잡고 이런저런 설명을 했는데, 보통은 안 그런다더니 다음 두 버스 기사들은 확실히 아무 말도 안하더라. 나고야성 지붕 위 양 옆에 달린 새 두 마리가 암수라는 거랑 화재 예방의 의미라는 등등의 뭐 여러 설명을 해서 재미있게 들었다. 







평일이라서 한산한 편이었다. 여행 내내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게 쾌청해서 행복했다. 성 내부로 들어가면 층마다 박물관처럼 전시가 되어 있고, 맨 위층에서는 전망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일본 성들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더라. 설명은 죄다 일본어라서 이해가 안됨.... 내가 일본어 문맹이라서ㅠㅠ...ㅋㅋ






구조물인데 대들보가 특이해서 찍어봤다. 이런 미니어쳐 사서 만들어보면 건축에 대한 이해도가 좀 생기려나. 이래 봬도 중학교 때 꿈이 건축디자이너였는데.... 문과를 택해서 포기하게 된 꿈이지만. 






날 좋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차를 엄청 많이 타고 다녔는데, 지나치는 장면장면이 어찌나 '일본스럽'던지, 익숙함을 넘어 경탄이 나오더라. 낮은 층수의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건물들이 다 조금씩은 다르다. 빛바랜 듯한 고즈넉함 속에서도 편안한 일상의 색감이 뚝뚝 묻어나는 실제의 풍경들에 자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속 가상의 인물들이 겹쳐 지나갔다. 참 많은 집들이 있고, 그 안의 인생들 또한 다양할 것 같아 궁금증이 더해진다. 






기와를 올린 것보다 일본에서 만났던 저 독특한 지붕이 훨씬 눈길을 끈다. 내부는 신발을 벗고 관람할 수 있는데, 다다미 바닥과 벽의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다른 방에는 학이나 호랑이 같은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사적인 만남을 갖는 장소였다는 방에는 사건 위주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 게 흥미로웠다. 사진처럼 윗사람이 앉는 낮은 의자? 같은 게 올려져 있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방 두 개가 붙어 있고 그 사이의 칸막이 문이 열리는 구조인데, 두 방의 단차가 다른 걸 발견해서 재미있었다. 





햇빛이 따뜻해서 버스에서 막 졸았다. 오아시스21은 이렇게 생겼다. 건물 뚜껑 위로 물이 흐른다.





이런 곳에 빠지지 않고 있는 스케이트장. 오래된 일본가요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빅뱅 노래가 나와서 마시던 커피 뿜을 뻔했다. 투애니원 노래도 나오고. 당황.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이런 느낌. 잔잔하게 흔들리는 수면 위로 쏟아지는 햇빛. 가볍게 산책하며 둘러봤다. 






여러 장 찍다 보니 도쿄타워가 그리워졌다. 새카만 밤 붉게 빛나는 야경 속 도쿄타워. 





나고야 역으로 돌아가서 킨테츠 매표소에서 '나바나노사토 킷푸' 라는 걸 샀다. 겨울에 야경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택한 일정인데, 3,170엔에 왕복 기차 및 버스권과 입장권, 500엔 짜리 쿠폰 두 장이 들어있다. 500엔 두 장은 내부에서 사용했는데, 베고니아 정원 입장료로 사용했다. 기차 타고 나가시마역이라는 작은 역사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가면 바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나고야에서 거기까지 한 시간 조금 안 걸렸다. 오사카에서도 여기 광고를 몇 번 봤는데, 음, 한 번쯤 가볼만 하긴 했다. 





가기 전에 득템한 호로요이. 복숭아 맛은 안 밍밍한 이프로 맛이었다. 걍 달달하니 음료수 같았다.





5시 조금 넘어서 도착하니 슬슬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장 전부터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주변을 둘러보며 기대감을 높여보았다.  





야경 보기 전 족욕부터. 따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자니 긴 하루의 긴장이 노곤하게 풀렸다.






양말 신고 올라와보니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실물이 훨씬 예쁘긴 하다. 유럽 느낌 물씬. 





저 유에프오 같은 게 대체 뭘까 했는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였다. 입장료 1000엔이었던 듯. 이건 위에 쿠폰 못 쓴다.





내려오는 장면은 더 유에프오 같음ㅋㅋㅋㅋ 되게 드라마틱한 느낌이어서 한참 아래에서 서성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베고니아 공원이 있어서 매표소에서 쿠폰 내밀고 입장권 받아서 들어갔는데, 나무로 된 자동문이 확 열리는 순간, 발걸음을 완전히 멈춰버렸다. 






온 시선을 사로잡는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색의 향연. 이렇게 꽃잎이 큰 꽃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데, 정말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몸 구석구석까지 행복이 퍼지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꽃'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 정말 이 충격적인 감정, 너무 좋았다. 이 정원은 실물이 훨씬 예쁘다. 정말. 네덜란드의 튤립 축제나 유명한 식물원 등 나름 꽤 많은 꽃들을 보아왔다 자부하는데, 이 정원은 다른 곳들과 차별화 되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한 눈에 다 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꽃들. 그저 이 아름다움에 가득 둘러싸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까지 기분이 녹아내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곳곳의 이런 소품들도 사랑스러웠다. 포토존도 이곳저곳에 있어서 인증샷 남기기 좋을 듯하다. 





인공 연못 가득 꽃송이가 둥둥 떠다니는 이 장면은, 결코 사진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다.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산책하듯 구경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조명을 받고 있던 아름다운 꽃나무가 보였다. 일본 감성이 물씬 묻어나오는, 하지만 묘하게 화투패가 생각나는 이미지였다ㅋㅋㅋ





그리고 시작된 빛의 향연. 돔으로 만든 구조묵 가득 형형색의 전구들이 반짝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세히 보면 이런 꽃모양, 별모양의 전구들이다. 빛이 시시각각 변하며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모두들 셔터를 눌러대며 저도 모르게 '예쁘다' 라는 감탄을 내뱉었다. 






나 역시 압도당하여 예쁘다는 감탄사부터 내뱉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어째 천국 가는 길 같다는 감상이 들었다. 너무 환하고 찬란한 빛이 온 시야를 다 채우고 있으니까 죽어서 승천하면 이런 기분일 것 같단 뻘한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로맨틱하다기 보다는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일루미네이션 영상이 탁 트인 공간에서 이뤄졌다. 싱가폴에서도 이렇게 빛을 활용한 엔터테인먼트를 봤는데, 생각보다 큰 감흥이 없어서 신기하다. 야경을 엄청 좋아해서 이런 류의 영상미에 눈이 홱홱 돌아갈 줄 알았는데,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현실적인 잡념들이 잔뜩 생각나더라. 전기세며, 인공적인 미가 지닌 한계며, 식물에 미치는 전자파며, 뭐 그런 사소한 것들 말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표현해내는 상상력에는 싱가폴의 가든스바이더베이에서도, 여기 나바나노사토에서도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직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예술들이 있음을 절감했고. 






내려가서 가까이 가보면 이런 느낌.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만나기 힘든 장관임엔 틀림 없다. 역시 실물이 훨씬 위압감 있고 화려하고 눈부시다.






출구로 향하는 마지막 돔 산책로. 빨강-노랑-녹색 이런 식으로 색이 변하며 계절감을 드러냈는데, 빨간 조명은 좀 무서웠다. 이번엔 지옥불 사이로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진은 주황색 느낌인데, 현장에서는 빨간색이었다. 






노랑-녹색의 색 배합이 생각보다 예쁘더라. 초록색 가득한 공간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본식 정원을 오른편에 끼고 출구로 향했다. 기념품샵에 이쁘고 귀여운 게 많아서 엄청 고민했는데 그냥 하나만 집어왔다. 생각보다 일본의 소소한 소품들은 가격대가 세지 않아서, 무턱대고 집어대다가는 지갑이 탈탈 털릴 것 같았다. 나고야로 돌아가서 캡슐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일반 호스텔과 크게 차이가 없는 숙소를 찾아가 짐 정리를 하고 남은 호로요이를 마시고 잠을 청했다. 



나고야라는 도시는, 생각보다 자본주의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방문한 곳들이 쇼핑센터 위주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도시 자체가 약간 어중간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사적인 공간들이 곳곳에 섞여 있지만 도회적인 도시의 분위기에 크게 어우러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고작 하루 밖에 머물지 못한 곳이라서 딱 이 정도 수준의 감상 밖에 남기지 못하겠다. 재방문할 가능성이 낮은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이 도시에 더 애정을 못 건넨 것 같기도 하다. 안녕,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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