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Ryu Jung Han

지킬앤하이드 (2021.12.26 7시)

누비` 2021. 12. 27. 15:24

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2.26 7시

 

 

 

 

류정한 지킬/하이드, 윤공주 루시, 조정은 엠마. 류지킬/류하이드 자열다섯. 류공조 페어 네 번째 공연이자 자넷! 제 최애페어가 설마 이날이 페어막인 건 아니겠죠. 마지막 티켓팅에서는 부디 제발 이 페어 좀 붙여주세요.

 

 

전날 공연이 아쉬웠다고 이렇게 이를 갈고 나와 레전공을 선사해주시다니! 단순히 넘버를 깔끔하게 부른다거나 목소리가 짱짱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유려한 감정과 섬세한 디테일이 정석적으로 완벽했다. 이전에는 강렬하고 위압적인 연기와 노래에 완전히 압도당하여 숨조차 쉴 수 없는 기분이 들었던 컨프롱에서, 이날은 배수진을 치고 맹렬하게 대립하는 지킬과 하이드의 처절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눈물을 주륵주륵 쏟았다. 자열다섯 관극을 통틀어 단연 최고였노라 손꼽을 수 있는 그런 컨프롱이었다.

 

 

아닛투.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류지킬이 등 돌리며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선일 때 처음으로 눈을 감고 소리만 음미했다. 25일 후기에 남겼던 넘버 가사에 맞춰 가슴에 손 올리는 디텔은 싹 빼버리셔서 조금 웃었고. 파사드. 25일에는 앙상블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이날은 행동하려는 듯 앙상블 쪽으로 나서려다가 멈칫하기도 하고 귀족들에게서는 고개를 돌리며 살짝 떨구는 등 제 위선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느낌이 강했다. 레드랫에서 나온 직후 "난 그 병원의 위선자들과 다를 바가 없어요" 라는 대사도 짓씹듯 훨씬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사회. "예의를 차린 게 무례가 됐다면," 까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살짝 들어 오만하게 스트라이더를 잠시 응시하는데, 25일에는 "사과하겠습니다" 였고 26일에는 "사과드리겠습니다" 였다. 26일의 류지킬이 더 많이 사회화가 되어 있었는데, 넘버 중반 즈음에 이미 답답하고 고지식한 위인들이 설득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으면서도 끝까지 포기를 못하고 처절하게 매달려보는 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 내면 속의 사악함!" 부분에 날카롭게 강세 넣는 건 그대로였지만, 이어지는 대사톤이 평소보다 절박했다. "이렇게 될까 봐 경고했던 걸세" 라는 댄버스의 위로 아닌 위로에 그러시겠죠, 하듯 눈물 고인 형형한 눈빛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류지킬.

 

 

 

 

"그럼 날더러 뭘 어쩌란 거죠, 존. 존."

 

 

어터슨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이 말을 하던 류지킬 얼굴에서 이전에는 막막한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괴로움만 넘실댔다. 하지만 이날은 존 당신마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라는 느낌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생경한 이를 보듯 어터슨을 응시하면서 살짝 뒷걸음을 치며 고개를 미세하게 내저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철저히 외로운 지킬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섬세한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선녀엠마의 따뜻하고 다정한 지지에 위안은 얻지만 온전한 평안을 구하지는 못하는 약혼식까지 이어지며 류지킬의 본질적인 고독이 선명히 드러났다.

 

 

"내 말은 그냥, 친구로."

 

 

22일, 25일, 26일 공연 모두 루시에게 명함을 줄 때 "친구'로'" 라는 조사를 붙였다. 공주루시 회차에서도 명함을 세우지 않고 반대쪽을 잡고 있게 둔 다음, 대사가 끝난 뒤 손가락을 튕기면서 명함을 놓더라. 얼굴이 남아있냐고 물을 때 25일 공연에서만 오랜만에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루시 얼굴을 바라보았다. 브링힘 "난 안 그래 난 결백해" 부분에서 미소조차 걸지 않는 건 계속 유지되고 있고, 넘버가 끝난 다음에야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박수만 친다. 이날 브링힘 시작할 때 테이블 앞에 앉은 류지킬 조끼 중간 단추가 뜯어져서 본인이 직접 버클 잠그는 모습을 보고 표정 관리 힘들었다ㅋㅋ

 

 

사골. 26일 사골 깔끔하고 완벽했다. No Choice 시작하는 부분에서 벅찬 설렘과 떨림으로 일렁이는 류지킬 표정을 사랑하는데, 이날은 알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명확하게 묻어나서 한층 다채롭게 반짝였다. "나만이 꿈이 나만의 소원" 하면서 눈을 꼭 감은 채 양손을 아래로 모아내는 간절함도 유난히 벅차올랐고. 정성껏 꾹꾹 눌러 불러주는 사골 덕에 행복했다. 주사를 놓기 위해 팔을 묶고 솜에 알코올을 묻힐 때, 평소에도 알콜 병 주둥이에만 대충 대고 말긴 했지만 이날은 아예 알콜을 묻히지도 않아서 조금 웃었다. 다 끝났다고 일지를 쓰다가 팔에 끼운 솜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야무지게 주워 실험대 위에 던지는 것도 귀여웠다. 25일 공연은 객석의 웃음이 너무 박해서 객석의 내가 다 식은땀이 나더라.

 

 

"도무지 답답해 숨이 막혀

내 몸에서 나를 윽박질러

사납게 삼킬 듯이 파고든 너"

 

 

트랜스폼. 22일처럼 왼팔을 시계방향으로 휙 돌리는 동작이나 왼손이 정확히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디테일이 25일, 26일 모두 유지되었다. 25일 공연에서만 "도대체 답답해 숨이 막혀" 라고 바꿔 불렀고, 26일 공연에서는 다시 "도무지 답답해 숨이 막혀" 라는 가사로 돌아왔다. "제기랄 염병할" 부분은 무릎 꿇은 채로 부르고, 오른쪽 왼쪽 다리를 세워 일어난 다음 "뭐야 넌!!!" 하고 부르짖는 류하이드. 얼랍1. 조끼 윗 단추들은 다 뜯어져 있고 맨 아래 단추만 간신히 붙어있었다. "기대 이상의 발전" 대사는 22일 25일만 얇지만 날카로운 속삭이는 톤이었고, 26일은 이전처럼 강한 톤으로 돌아왔다. 본인의 가슴에 손을 얹고선 그대로 양손을 중심부까지 내렸다가 다시 위로 쓸어 올리며 생동하는 생명력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류하이드의 광기가 짜릿했다. 25일 공연에서는 류하이드가 객석을 아예 쳐다보지 않아서 좀 아쉬웠는데, 26일 공연에서는 예전처럼 1열 오른편 객석을 번뜩이는 눈으로 응시했다.

 

 

뭐가 더 중요한지 잘 생각해보라는 어터슨의 말에 황급히 자리를 뜨던 류지킬이 평소에는 바로 무대 왼편으로 걸어 나갔는데, 이날은 트롤리 앞에서 잠시 멈칫하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이성과" 하며 왼손 주먹을 꾹 쥐고 "내 의지는" 하며 오른손 주먹을 꼭 쥐는데, 25일에는 양 주먹을 가슴께로 가져다 대며 괴로워했지만 이날은 주먹 쥔 손을 그대로 앞에 둔 채 노래하다가 "냉정하게!" 소절에 강세를 주며 대사처럼 불렀다. 썸원. "레드랫~~" 하며 치마를 흔드는 공주루시와 어색함을 누르며 가까스로 자리를 권하는 류지킬. 루시와 키스할 때 그의 팔을 잡은 류지킬의 오른팔은 힘을 주며 밀어내려 하지만 몸과 입술은 그 힘에도 떨어지지 않는 점이 이날 눈에 밟혔다. 트롤리 고정시킬 때 계속 버벅이는 류지킬.

 

 

 

 

"그 이름 바로 에드워드 하이드"

 

 

얼랍2. "야옹"은 한 번으로 고정된 것 같다. 25일은 "그 이름하여" 라고 했지만 26일은 "그 이름 바로" 라는 가사로 돌아왔다. 마지막 "에드워드 하이드" 소절 끝에 객석을 향한 채 손을 들어 올리며 광소 같은 탄성을 뱉는 건 26일 공연에서 처음 봐서 짜릿했다. 불이 꺼지기 직전에 휙 망토를 휘두르며 돌아선 뒤 퇴장하는 류하이드. 머더머더 디테일도 전부 유지됐다. 글로솝을 죽인 뒤 지팡이로 그 시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양팔을 가득 벌린 채 크게 웃으며 테디를 비웃는다.

 

 

"어디 쓰건 말건 참견할 시간에 약이나 구하란 말이야 비셋!"

 

 

22일, 25일 공연에서 류지킬의 모습으로 "약이나 구하란 말이야 비셋!" 부분을 완연한 하이드의 목소리로 말했었다. 그리고 26일에는 "시간에" 라는 단어부터 그라데이션으로 지킬의 목소리에서 하이드의 목소리로 변하는 디테일을 추가해서 내적 환호를 질렀다. 루시데쓰 휘파람도 유지되어 행복했고, 25일과 26일 모두 "자비로운 하느님께서 자네의 노력을 인정 못하시겠답니다!" 라고 했다. 나니까. "또 다른 나의 내면이죠" 하며 뒷걸음질 치는 것도 양일 동일했다. 하이드 역시 제 일부임을 알고 있기에 뿌리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고 비밀을 끌어안은 채 끝내 스스로를 태우며 괴로워하는 류지킬.

 

 

갈수록 사랑하게 되는 인히쟈, 더없이 괴로운 댄져. 이날 "나만이 아는 나의 숨은 비밀" 하는 루시의 뒤에서 눈을 감은 채 몸을 뒤로 젖히며 신음 소리를 내는 류하이드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과자루시는 온몸으로 전쟁을 치르며 분투하기에 처절하고, 공주루시는 온몸으로 아득하게 절망하기에 처참하다. "나도 몰랐던 나" 하며 서로 응시하다가 루시가 힘겨워하며 몸을 돌리면 "하하하," 하고 낮게 웃는 류하이드. 루시가 고개를 돌려 제 손길을 피하고 걸음을 떼자, 25일과 26일 공연 모두 퉤, 하고 세게 침을 뱉었다. 25일은 노여움이 강하게 묻어났다면, 26일은 빈정이 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하여도 가야만 해

나를 찾아야 해 나를 믿어야 해"

 

 

웨이백. 25일 공연에서는 "난 시간이 없어요", "그를 통제시켜야만 해요" 라고 말했는데, 26일은 다시 이전처럼 "시간이 없어요", "그를 통제해야만 해요" 라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킬로 돌아온 다음 머리를 휙 젖혀서 머리카락을 넘기는데, 이날 공연에서 마이크에 걸렸는지 살짝 지직거렸다. 머리 모아서 질끈 묶은 류지킬이 대사를 하면서 왼쪽 귀 뒤편 마이크를 두어 번 만지작거리다가 아예 얕은 기침을 두 번 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다행히 음향에는 지장이 없어서 더없이 처절하던 웨이백은 깔끔하게 들었다. "세상이 내게 던진 숙제를" 부분을 22일 25일 모두 울먹이면서 불렀는데, 이날은 평소처럼 단단하게 불렀다. 이제는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하이드를 통제하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류지킬.

 

 

루시데쓰. 류하이드가 지킬의 편지를 읽을 때 "속히 떠나시오-" 부분을 짓씹듯 묵직하게 말했었는데, 26일 공연에서는 "떠나시오?" 하고 어미를 물음문처럼 올려서 한층 긴장감이 더해졌다. 너무 가까워서 짜증이 날 정도로 전부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킬이 감히 자신 몰래 이딴 편지를 루시에게 썼다는 것에 분노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25일 공연에서는 "작별인사도 없이 여길 떠나려고?" 부분부터 다정한 척 부드럽게 꾸며내는 목소리가 소름 끼쳤다. "선량한 상냥함~" 하며 부드럽게 부르다가 루시를 찌른 다음 목소리가 급변하는 낙차가 25일 공연에서 유난히 심했다. 루시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조롱하듯 바라보던 와중에 억, 하며 지킬로 되돌아온다.

 

 

 

 

"밤 검은 어둠 길 잃은 영혼

새벽은 멀고 끝없는 밤"

 

 

아득한 어둠 속에 파묻힌 채 도무지 도래할 것 같지 않은 새벽을 기다리는 류지킬의 목소리에 울먹임이 뚝뚝 묻어난다. 세상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며 승리를 다짐하는 순간 왼쪽 손가락 끝에서부터 튀어나와 육체를 점령하는 류하이드. "나는 살아!" 부분에서도 양손으로 가슴을 퍽 치는 등 몹시 강한 류하이드에게 밀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몸과 마음을 다해 굳건히 저항하는 류지킬. 하이드가 튀어나오는 장면에서도 오른손을 파들대며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표정이 지독히 처절해서 숭고해 보일 지경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날만큼 지킬과 하이드 각각의 감정에 몰입해서 본 컨프롱은 없었다. 

 

 

웨딩. 25일과 마찬가지로 튀어나오려는 하이드를 느끼고 "제발," 하고 중얼거린 뒤 엠마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린 류지킬은 처참하게 "하필 지금! 하필 이때!" 냐며 부르짖는다. 당신은 날 해치지 않는다는 엠마의 목소리에 잠시 돌아온 지킬은 엠마를 풀어주고 뒷걸음질 치다가 계단을 뛰어내려오며 "제발!" 하고 부르짖는다. "어서요, 존" 부분도 하이드 목소리에 지킬의 말투였다. 힘겹게 왼손을 저지하던 류지킬은 어터슨의 칼에 스스로 뛰어든다. 지킬의 왼손을 끌어다가 그 손등에 키스하는 선녀엠마 디테일은 이날 처음 봐서 울컥했다. 지킬의 일부분인 하이드마저도 끌어안는 선녀엠마.

 

 

류지킬과 류하이드 덕분에 알차고 뜨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낼 수 있어 뿌듯하다. 믿고 보는 사랑하는 류공조 페어가 다음 티켓팅에는 꼭 있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며, 오늘의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