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앤하이드 (2021.12.22 7시)
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2.22 7시
류정한 지킬/하이드, 윤공주 루시, 민경아 엠마. 류지킬/류하이드 자열셋. 류공굥 페어자둘.
원래 가지 않으려던 회차였는데 말도 안 되는 꿀자리들을 잡아버려서 운명이겠거니 객석에 앉았고, 덕분에 이 경이로운 레어공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전 공연들과는 사뭇 다른 표정과 몸짓과 대사톤과 박자의 변주를 통해 신선한 지킬과 하이드를 선사하시는 류배우님께 어찌 다시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무지 난 모르겠어, 배우님 덜 사랑하는 법. 나중에 후회는 소용없으니 지금 이 순간 온 마음으로 애정을 쏟아부을 수밖에.
워낙 바뀐 게 많은데다가, 커튼콜에서 왼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해주셔서 상당한 기억이 휘발되어버렸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주말 연공 관극과 뒤섞이지 않기 위해 생각나는 것 위주로 기록을 남겨본다. 연구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탓에 위선과 불평등에 대해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순진함이 이날의 류지킬에게서 엿보였다. 여러 장면에서 다양한 맥락의 미소를 자주 걸어내는 그는 이전보다 더 어리고 인간적인 인상을 풍겼다. 이러한 지킬로부터 탄생한 하이드 역시, 여전히 포악했으나 평소의 류하이드와 묘하게 달라서 컨프롱과 피날레까지 완연하게 차이를 보였다.
"약을 거의 다 만들었어요, 존" 이란 대사를 이렇게 담백하게 단언한 건 처음 봤다. 단단한 아닛투가 너무 좋아서 박수를 치고 싶었으나 파사드가 곧장 시작된다. 비틀대는 여인에게 별 관심이 없던 류지킬은, 다른 귀족이 그를 밀쳐버리자 그제야 자신은 저들과는 다르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다가가 머뭇대며 손을 내밀었다. "인간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이라는 어터슨의 가사에 고개를 많이 내저었고, 마지막은 망설임 없이 왼손을 객석을 향해 뻗어내며 단호하게 "바로 너" 라고 선언했다. 파사드 노래 합도 딱딱 맞고 류지킬 얼굴 보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서 체감이 1분이었다.
이사회. 예의를 차리며 미소를 걸어내고 있던 류지킬은 스트라이더를 호명한 뒤 그를 향해 고개를 들며 "사과드리겠습니다" 라고 존대를 했다. 이사회의 불만에 황급히 서류를 넘겨볼 때 보통 종이 서너 장을 차례로 넘기곤 했는데, 이날은 딱 한 번만 들더니 바로 원하는 부분을 찾아 읽더라. "완벽히, 완벽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라고 강조했고, 재가를 요청한 다음 문득 생각난 걸 덧붙이듯 "아, 지원자가 있다면 더 좋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그 누가 신의 권리를" 하며 비난하는 주교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등을 진 자세 그대로 서서 어이없는 헛웃음을 입가에 걸어내는 것도 이날 처음 봤다.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이사회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지만, "위험한 발상은 절대로 불가" 하며 확 밀고 나오는 그들의 태도에 뒷걸음질 치며 "아니라구요! 위험한 게" 하며 답답해한다.
"보세요 지금 여러분 그 내면 속의 사악함!"
목소리를 확 긁으며 집중을 모으고 "따로, 분리, 해낸다면!" 하며 끊어서 강조한 뒤, "간청컨대 단 한 번만, 제게 기횔" 이라 절절하게 요청한다. "절대 반대는 네이" 라는 말까지 듣고선 "제발," 이라 작게 입모양으로 중얼거리는 류지킬. 기권이란 말에 댄버스를 쳐다보고 글로솝의 비아냥에 파들대며 돌아본다. 댄버스가 퇴장하자 크게 휘청이며 가까스로 단상 끝부분을 잡으며 추스른다. 어터슨과의 듀엣에서 울먹임은 섞였지만 더 날카롭게 목소리를 긁으며 화를 내고 절망했다.
레드랫. 루시의 가사에 피식 웃는 건 이날도 없었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공주루시의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지만 이내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려 올곧게 응시한다. "여자 남자 다 똑같아," 하는 말을 두 번 중얼거린 때를 제외하고는 루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거의 자리에서 일어날 기세로 등을 떼고 몸을 앞으로 숙인다. 브라보, 역시 없었다. 기회를 잡으라며 제 손 위로 겹쳐오는 루시의 손을 놀란 듯 응시하다가 "오늘에 만족하오" 하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빼냈다. 짜릿한 전기라도 느낀 듯 왼손을 생경하게 바라보던 류지킬은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돌려 루시의 키스를 피한다. 이날은 명함을 건넬 때 왼손을 등 뒤 허리에 두지 않았다. "내 말은 그냥, 친구로." 라고 조사를 붙인 것도 처음 들었다.
"여기 바로, 오.늘."
편지함 열지 않고 아버지 초상화의 액자 틀을 오른손으로 가만히 만진다. 풀에게 아버지의 한창때를 기억하느냐 물으며 "기억하지?" 라고 말하는 류지킬 표정이 너무 다정하고 따뜻했다. 두려운 듯 벅찬 듯 일렁이는 얼굴로 눈을 꾹 감고 있던 류지킬이 "선택은 없어" 라고 사골을 시작한다. "던지리라" 하며 한 손을 객석 쪽으로 팍 펼치며 돌아서는 동작은 볼 때마다 왜 이토록 희열이 느껴지는지. 마지막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 는 양손을 앞쪽으로 모아 동시에 들어 올렸다. 주사기를 바라보며 "아름답구나," 하는 류지킬의 얼굴과 목소리가 유난히도 예뻤다.
트랜스폼. 처음으로 하이드가 튀어나오는 찰나의 왼손이 말 그대로 대중없이 날뛰었다. 왼쪽 팔꿈치를 몸통에 고정한 채, 왼쪽 위쪽 중앙 그리고 오른쪽 순서로 돌리는 동작은 처음 봤다. "파고든 너" 하면서 정확히 얼굴을 겨냥하고 덤벼드는 왼손을 피하려 크게 휘청인다. 무릎 꿇은 채 "제기랄" 이라 외친 류하이드는 오른쪽 무릎을 세우며 "염병할" 이라고 욕을 내뱉고선 마저 일어나 두 다리를 딛고 서서 "뭐야 넌!!!!" 하고 부르짖는다. "존, 재, 는?" 하며 얼굴을 확 들어 올린 뒤 왼손에 이어 오른쪽 손가락을 꾸물댄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에 오른편 어깨가 반사적으로 오그라들었다가 팔 전체를 크게 움직인다. 12/19 공연보다 더 크게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든다. 객석을 등지며 뒤로 돌았다가 거울을 발견한다. 오른쪽 손목을 턱, 하고 힘줘서 붙잡은 왼손이 의외로 가볍게 그 손을 허벅지로 옮기고 세 번 토닥인다.
"기대 이상의 발전"
이 대사도 강하게 외치던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기대 이상의" 부분은 마치 비밀을 속삭이는 톤으로 시작했다가, 뭔가 속에서 끓어올라 비틀린 고통에 신음하는 듯한 소리로 "발전-" 하고 길게 어미를 늘였다. 머리 위에 느낌표를 잔뜩 띄운 채 휘몰아치는 류하이드의 얼랍1에 압도당했다. 곧게 편 상체를 비스듬히 살짝 뒤로 젖혀 무게중심을 뒤로 한 채,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다" 하면서 양손으로 몸통을 쓸고 웨이브를 넣다가 그대로 조끼를 뜯는다. 중블 오른쪽 앞에 서서 눈을 희번뜩거리는 동선을 사랑하는데, "무엇을 보게 될까" 부분에서 객석 앞쪽을 응시하며 양팔을 앞으로 뻗어 주먹을 꾹꾹 쥐는 동작은 이날 처음 봐서 내적 비명을 질러댔다. 디테일 장인을 사랑한 덕에 이런 희열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해요.
히즈웍. "다시 되돌릴 수" 하면서 왼손을 앞으로 뻗으며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리듯 불안한 눈빛으로 입가에 위태로운 미소를 걸어내는 것도 처음 봤다! 이내 "없는 길" 하며 단숨에 낯빛이 어두워지며 괴로워한다. "내 이성과" 하며 오른손을 "내 의지는" 하며 왼손을 주먹 쥔 다음, 두 주먹을 가슴께로 모아내는 모습에 얼랍1의 류하이드가 떠올랐다. 의지를 말하며 가슴에 한 손을 얹는 류지킬 디테일도 여러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좋았다.
왜 나를 찾아왔느냐 루시에게 물을 때, 예의를 차리기 위해 애써 걸어내던 미소가 이날은 아예 없었다. 상처가 덧날 일은 없을 거라며 멋쩍게 웃던 류지킬은, 제 손등에 닿는 루시의 입술에 당황하며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키스하면서 자세를 낮춘 채 뒤로 몸을 빼는 부분은 계속 유지되어 매번 즐겁다. 트롤리 고정을 한 번에 하지 못하며 오히려 긴장과 당혹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루시," 하고 높은 톤으로 호명하고선 완전히 잠긴 목소리로 "잘가요" 라고 속삭였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어둡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만지작댔으나, 무대 오른편까지 걸어와서 다시 입술을 만질 때는 입가에 막을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도 신선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황급히 떨쳐내듯 고개를 세게 저으며 퇴장했다.
"그 이름하여 에드워드 하이드"
얼랍2.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야옹만 해서 살짝 아쉬웠으나, 넘버는 늘 그랬듯 완벽 그 자체였다. "저 사탄 편에" 하고 살짝 박자 밀면서 "설 테다" 하고 이어가는 박자 변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 바로" 대신 OST처럼 "그 이름하여" 라고 가사를 바꿔 불렀다! 이거 처음 들어서 너어무 짜릿했다! 머더머더. 글로솝 장군 시체를 지팡이로 가리키며 테디를 크게 비웃는 디테일을 12/4 공연에서만 봐서 안타까웠는데 이날 이 디테일도 해주셨다!!! 정말이지 류배우님 너무 사랑해요!!! 비셋의 걱정에 "어디 쓰건 말건 참견할 시간에" 하고 성질내다가 그의 멱살을 잡으며 "약이나 구하란 말이야, 비셋!" 하는 협박은 완전한 하이드의 목소리였다. 머리끈을 확 푸르곤 그의 면전까지 지팡이를 들이대는 류하이드. "선량함 상냥함" 하는 휘파람을 최고로 잘 불었고, "그대의 노력을" 인정 못하겠다며 테디까지 살해.
"내가 늘 그토록 없애고 싶어 했던 또 다른 나의 내면이죠"
가슴을 쥐어짜는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류지킬. 거울 속의 김처럼 사라진다며 거울을 응시하던 류지킬은 "또 다른 나의 내면이죠" 하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토록 없애고 싶어 했던 제 내면의 일부를 부정하듯, 혹은 두려워하듯이. 그렇게 평소보다 물러나 있었기에 거울을 만진다거나 거울 틀을 내리치는 동작은 없었다. 원래의 자신이 떠밀리는 것을 여실히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는 류지킬. "즐겁던 한 때 그 시간" 이라는 인히쟈 가사에 우는 얼굴로 웃다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이전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들어 올린 왼손의 손가락이 꾸물대는 것을 관찰하다가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오른손으로 왼손을 제지하듯 내렸다. 하지만 이날은 들어올린 왼손에 대한 통제력을 지킬인 자신이 아직 가지고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듯 천천히 주먹을 쥐어보더라!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다가 조명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직전 코트 앞섬을 여미는 실루엣을 항상 좋아한다.
류지킬의 괴로움에 동요된 마음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공주루시의 인히쟈를 듣다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어지는 댄져에서 온 몸을 내던지는 처절한 공주루시를 보는 것이 어찌나 참담하던지 숨이 턱턱 막혀왔다. 강압적인 하이드에게 손이 붙들린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느낌이 들어서 더더욱 힘들었다. 처절함이 한층 더해진 웨이백. "세상이 내게 던진 숙제를" 하는 소절을 울먹이면서 부르는 것도 처음 들었다. 통제되지 않는 하이드라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 지독히 괴로워하던 류지킬은 강하게 노트를 찢어내고 세게 뭉친 종이를 던져버린다.
루시데쓰. "작별인사도 없이 여길 떠나려고" 라는 대사 유지. 루시를 찌른 뒤 일어서서 그의 목을 긋기 전에 칼을 힐끔 보더니 칼날의 방향을 확인한 것은 잔인한 하이드였을까 아니면 디테일을 챙기는 류배우님 본인이었을까. 칼을 들어 객석을 가리킨 뒤 그대로 오른쪽 위로 휙 휘두르는 동작은 계속 있었는데, 이날 그 부분에서 칼에 묻은 루시의 붉은 핏방울이 루시의 시체 위로 흩뿌려지는 환각이 보였다. 류하이드가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것 같이 보였다구요!
"오, 루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썸원의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라는 류지킬의 대사와 이어지는 루시데쓰의 이 추가된 디테일 정말 좋다. "아니야, 아니야!" 하며 뛰쳐나간 류지킬은 "아버지!!" 라고 외치며 다시 무대 중앙으로 뛰어들어온다. 컨프롱. 오른손을 퍽 쳐내며 그르렁 거리는 숨소리를 길게 뱉어내는 류하이드. "개소리 마라" 하며 양손을 들어 올렸지만 "니가 죽어도" 하며 앞을 가리킨 왼손만으로 가슴을 퍽 치며 "나는 살아" 라고 말한다. 지킬이 왼손을 사용하는 걸 12/19 공연에서만 본 것 같았지만 확신이 없었는데, 이날은 확실히 왼손을 사용하지 않았다. "공존은 불가능해" 하고선 살짝 헉헉댔지만, "이제 가자!" 하면서 지킬이 완전히 단단해졌다. 끝까지 발악하는 하이드를 압도하며 눌러버린 지킬은 분명 확신했을 것이다. 자신이 하이드를 통제하여 지옥으로 보내버렸노라고. 그래서 "하필 지금 하필 이때" 하이드가 다시 튀어나오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한 듯했다. 어터슨의 뺨을 만지며 "고마워요, 존" 이라 속삭이는 류지킬.
웨딩에서 오른손으로 엠마의 목을 턱 붙잡았을 때 자세가 불안정했던 그가 휘청이니까, 왼손으로 엠마의 등을 단단히 받쳐주며 제대로 위치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류배우님 본체가 참 다정하고 스윗하더라. 시작부터 끝까지 몹시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관극 했고 후기도 남겼으니 기록용으로 사설을 남겨본다. 사골 초중반부터 류배우님 컨디션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무대 분장 감안해도 안색이 확실히 창백해지셔서 내심 걱정을 했다. 왠지 감기 같은데 그렇다기엔 목소리가 지나치게 짱짱하셨고.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컨디션을 전혀 티 내지 않고 새로운 노선과 연기를 보여주신 류배우님께 재차 반해버렸다면 지나친 애정일까.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변방의 블로그에 많이 읽히지 않는 후기를 쓰는데 이 정도의 사견 정도는 남겨도 되겠지. 절대 아프시면 안 됩니다, 배우님. 부디 푹 쉬시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드세요. 뭐라도 챙겨드리고 싶은데 시국 때문에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어 그저 먼 객석에서 걱정과 응원만 보내고 있자니 속상하다구요. 이토록 큰 전율을 선사해주시는 배우님의 행복과 기쁨과 건강과 평안을 언제나 바라고 있어요. 따뜻하고 든든하게 휴일 보내시고, 주말에 뵐게요! 정말이지 지나칠 정도로 배우님을 사랑하고 있고, 이젠 뿌리칠 수도 돌이킬 수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