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Ryu Jung Han

지킬앤하이드 (2021.11.17 7시반)

누비` 2021. 11. 18. 13:32

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1.17 7시반

 

 

 

 

류정한 지킬/하이드, 아이비 루시, 조정은 엠마. 류과자선녀 페어 둘공/자둘. 류지킬/류하이드 자일곱.

 

 

꼭 가고 싶은 날이었는데 자리가 안 나와서 초조해하다가 거의 포기할 즈음, 가까스로 꿀자리를 구했다. 지난 시즌 동지킬 첫공 때 딱 한 번 앉아본, 샤롯데씨어터 최고 상석. 중블 1열 정가운데에 음감석이 있는 이 공연장만의 특이함 때문에 생긴, 음감 뒷자리의 중블 2열. 무대의 정중앙일 뿐만 아니라 시야에 걸리는 다른 관객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자리. 지앤하 회전을 돌면서 한 번쯤은 꼭 앉아보고 싶었던 자리였기에 이 눈부신 행운에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객석에 앉았다.

 

 

오직 나 하나를 위해 펼쳐내는 공연인 양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세상을 짜릿하게 만끽했다. 동시에 지나치게 좋은 자리에서 극을 온전히 마주하는 바람에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요소들을 다시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소재를 다루는 편협한 관점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역겨운 위선과 납작하게만 다루는 소수자에 대한 배타적인 사상이 적나라하게 눈에 밟혔다. 원톱극에서 원톱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배우를 사랑하기에 느끼는 희열감은 잠시 눈을 흐리게 만들 수는 있으나 완전히 멀게 하진 못한다. 극강의 쾌락을 차마 거부할 수 없다는 이 배덕감을 마음 한 켠 잘 보이는 자리에 놓아두고, 나 자신의 위선 또한 잊지 말고 직시해야지. 이중성을 지닌 인간들 모두, 중심을 잡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전체적인 디테일은 지난주와 유사했으니 생략한다. 머더머더에서 테디를 죽일 때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그대의 노력을' 인정 못하시겠답니다!" 라고 하는 건 1113 공연부터 시작됐다고 들었다. 늘 좋았던 웨이백 넘버가 살짝 아쉬웠는데, 그래서인지 컨프롱이 어마어마했다. 로인닼맆에서 "승리하겠어" 하며 주먹을 불끈 쥔 채 마지막으로 힘을 끌어모으는 류지킬과 그 손을 팍 쳐내며 흉흉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컨프롱 시작부터 난폭하게 날뛰는 류하이드의 대립이 말 그대로 엄청났다. 견제하고 비난하면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격렬하고 처절하게 온 힘을 다해 싸우는 두 존재의 전투가 어찌나 압도적이던지. 말 그대로 영혼을 불사르는 컨프롱 하나만으로 온전히 만족스러웠다.

 

 

트랜스 직후 일지를 쓰러 가는 류하이드가 또 휘파람을 불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얼랍1의 그 기세와 위압감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고, 얼랍2의 날카롭고 압도적인 존재감이 온 몸을 전율케 했다. 얼랍2 마지막 장면에서 지팡이 끝에서 탁 튀어 오른 불꽃으로 피어난 화염 너머 류하이드의 광기 어린 표정과 망토를 휘날리는 피날레의 실루엣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정중앙에서 본 무대는 장면 장면이 스냅샷처럼 휘황하게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