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Ryu Jung Han

프랑켄슈타인 (2018.08.01 8시)

누비` 2018. 8. 2. 23:11

프랑켄슈타인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18.08.01 8시 공연

 


 



류정한 빅터/쟈크, 카이 앙리/괴물, 서지영 엘렌/에바, 안시하 줄리아/까뜨린느, 이정수 룽게/이고르, 김지호 어린 빅터, 신서린 어린 줄리아. 이성준 음감. 류빅터 14차 관극, 류카 페어 자셋. 현업 때문에 못 볼 각오를 하고 있었던 회차라서, 놓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성악페어를 이제 한 번 밖에 못 본다니ㅠㅠ 나도 류카 페어막 보고 싶어ㅠㅠ

 

 

※스포주의※

 

 

류빅터와 카괴물은 '혼자가 된다는 것' 에 대한 트라우마와 절망이 짙고 깊다. 류빅터의 경우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상실하며 나락까지 떨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반면, 카괴물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들을 매번 기대했다 실망하며 지독한 슬픔을 느낀다. 류빅터는 상실을 이겨내기 위해 신과 맞서 싸우다가 저주와 운명의 굴레에 매번 굴복 당하고, 카괴물은 상실할 것조차 없는 지독한 고독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자신의 신인 창조주에게 쏟아낸다.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믿던 두 존재는, 신이 주는 고통과 슬픔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며 끝끝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모두가 유약하고 불완전했기에 극도로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류빅터 노선은 지난주 29일 류한 공연과 비슷했다. 거만하지만 특유의 위엄 있는 아우라로 상대를 압도하는 고고한 귀족의 이미지였다. 류카 페어의 단하미는 청각적 카타르시스가 몹시 강하여 정신차릴 틈도 없이 휘몰아친다. "과학은 생태계를 뛰어넘어!!!" 라고 뒤쪽에 강세를 넣었는데, 이날은 "과학은 생태계를!!!! 뛰어넘어!" 라고 부르던 류빅터는, 고지식한 카앙의 말에 답답함에 가슴이 턱 막힌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다가 이마를 짚으며 뒤돌아선다. 제네바에서 류빅터는 앙리의 목을 실험에 사용하겠다는 목적보다는, 목전에 닥친 죽음의 위협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에 상황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상을 추구할 때는 그토록 당당하더니, 막상 현실에 맞부딪혔을 때 책임을 지겠다 나서지 못하는 유약하고 위태로운 인간이었다. 엘렌의 질문에 허를 찔린 표정이었고, 엘렌이 나가고 난 뒤 줄리아의 "그대의 선택을 난 믿어" 라는 말에 입꼬리 한쪽만 올리며 조소를 짓는다. 이어지는 나는왜 넘버에서, 자신의 그 '추악한 모습' 을 거울을 통해 똑바로 마주하고 인정하여 결심까지 이르게 되는 서사가 완벽했다. "당신은 지금 프란츠 코폴라를 살해했다고 자백하는 겁니까?" 라는 재판장의 물음을 듣고 불안함에 미세하게 몸을 떨면서 잠시 텀을 준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네, 제가" 하며 말을 꺼낸다. 슈테판의 개입에도 바로 발끈하지 못하고, 감정이 점차적으로 차분해지다가 꾹 눈을 감으며 "숙부님 제발 그만하세요!" 라고 외친다. 너무나 두려워 비겁하게 도망친 자신과 다르게, 제가 건넸던 꿈을 굳건히 믿으며 그 대신 꼿꼿하게 서있는 앙리를 본 류빅터는, 무너져내린다.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앙리와 후회와 죄책감으로 휩싸인 빅터의 대조가 몹시 뚜렷했다. 그리하여 류빅터의 생창은 앙리와 함께 꾸었던 꿈을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실행된다. 지난주 류한 공연에서 코트 안주머니에 실험일지를 넣을 때 버벅거리다가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하고선 "빛이 있으리니" 하면서 왼팔을 옆으로 쭉 뻗는 디테일을 했었는데, 이날도 똑같은 포즈를 더 멋지게 해주셔서 새삼 반했다. "휘몰아쳐라" 부분에서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오른손을 옆으로 펼치듯 하는 모션과 천둥번개소리 타이밍 딱 들어맞는 것도 너무 좋고. "신이여 축복을 아니면 차라리" 하며 계단을 내려와 테이블 위에 휙 올라서고 "내게 저주를" 하면서 살짝 벌리고 있던 양손을 한 번씩 내려다보는 디테일 덕분에 이날 류빅터가 '저주' 라는 단어에 몹시 민감하게 반응함을 재차 인지할 수 있었다. "신과 맞서 싸워" 하면서 양손 주먹을 꽉 쥐고 하늘을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숨막히는 세상을 벗어나아아아악" 하고 "붉.은.피.솟.구쳐 온~!!!몸을! 불태워라" 하는 변주는 들을 때마다 전율이 인다. 약간의 멜로디 위에 대사처럼 "너의 창조주가!!! 명하노니 눈을 떠라!! 일어나라!!" 외치고선, "깨어나~" 하고 "와아아아악" 마지막 스퍼트까지. 류빅터의 생창은 정말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탄생한 괴물에게 코트를 입히고선, 앙리에게 했던 것과 동일하게 왼손으로 괴물의 왼쪽 턱 부근을 만지는 류빅터. 또다시 넘버는 괴물에 대한 적대감과 스스로에 대한 자조가 좀 더 깊어졌다.

 



 

카앙리는 단정하고 정적인 외모에 강한 고집이 배어있다. 전쟁이라는 극악한 환경 속에서 제 소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며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마침내 빅터와 손을 잡기까지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명확한 꿈을 꾸는 것에 대한 동경이 더해져 유야무야 그를 따라 제네바까지 따라온 카앙. 빅터와 무슨 사이냐는 엘렌의 물음에 지난번처럼 고민하듯 머뭇거리는 대신, "치..친굽니다" 하고 살짝 더듬거렸다.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반사적으로 빅터가 명명한 관계의 명칭를 내뱉은 카앙은,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빅터를 향한 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한다. 생각만으로는 정리되지 않던 것들이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말' 로 내뱉는 순간 명확하게 딱딱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 카앙이 바로 그러했다. 빅터를 잘 부탁한다는 엘렌의 말에 "빅터는 제게 친구 그 이상입니다." 라며 스스로 정의를 내린 그 순간이야말로,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마음을 굳히자마자 술주정을 부리며 진상을 떠는 빅터를 마주했으니, 카앙이 먹금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더라ㅋㅋ 한잔술 장면이 끝나고 내려앉은 암전 속에서 종이 뎅,뎅,뎅 세 번 울리고 살인자 반주가 시작된다. 저 세 번의 종소리가 마치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의 재판봉 소리를 연상시켜서 매번 마음이 차분히 내려앉는다. 간수들에게 밀쳐질 때 유난히 휘청대는 카앙. 두려움에 질린 채 서있던 카앙은 "앙리 뒤프레, 면회." 라는 말에 몸을 돌려 빅터가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앙리," 라는 부름에 "왔어?" 하고 입을 뗀다. 카앙은 여기서도 빅터와 말을 주고받으며 점차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와 당위성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너꿈 도입부터 얼굴에 건 미소에 공포보다 선명한 의지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가사 한소절 한소절을 꾹꾹 힘주어 부르면서 점점 더 눈부시게 빛나더니 종국엔 밝게 웃는다. "날 위해 울지마 이것만 약속해" 하며 빅터의 왼쪽 얼굴을 어루만지는 카앙. 질질 끌려나가는 빅터를 보며 철창 근처로 뛰어가 안녕, 이라고 하듯 묶인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왼손을 가볍게 흔들며 인사하는 카앙이 너무나 환하게 웃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끌려가다가 처형대 계단 아래에서 팔을 붙들고 있는 두 사람을 뿌리치더니 단호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오른다. 지나칠 정도로 눈부신, 완전한 신뢰와 믿음과 기대를 건 그 얼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찬란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기도 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그 이후의 비극이 저절로 떠오르며 마음이 몹시 아프기도 했다. 카앙의 너꿈속은 신선한 충격으로 매번 눈물을 쏟아내게 된다.

 



 

카괴는, 카앙의 기억을 가지고는 있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다. 말이나 동작, 행동 등에서 카앙의 흔적이 미세하게 묻어나는 부분이 없진 않으나, 타고난 성정 자체가 전혀 다르다. 카괴를 연기할 때 배우가 '소리'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난 류카 자둘 관극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카괴는 탄생 직후 처음 숨을 내뱉고선 폐가 천천히 움직임을 시작하듯 거칠게 토해내는 숨소리를 낸다. 난괴물 도입에서도 목이 꺾여 부러진 채 부르고 있음을 주지시켜 주듯 아주 미묘한 수준에서 어긋나고 막힌 소리를 내고, 목뼈를 강제로 맞춘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직선적인 소리를 냈다. 카괴 자첫 리뷰에서 약간 아쉬운 소리를 했던 그곳에는 넘버에서도, "그곳에는 인간이 없어? 그곳에는 싸움도 없어?" 라고 어린아이처럼 둔탁한 목소리로 묻고선, "누구도... 상처주지 않아" 부분에서 어눌한 발음을 자연스럽게 지워나가며 과하지 않은 목소리로 아름다운 듀엣을 만들어냈다. 난괴물 넘버의 "나의 창조주시여 / 뭐라 말 좀 해봐요 / 왜 난 모두에게 괴물이라 불려야 하나" 부근의 마디 도입을 반박자 정도 늦게 들어갔다. 꾹꾹 눌러담은 분노를 절제하여 터뜨린다는 느낌이라 인상적이었다. 절망에서도 두어소절을 늦게 들어가는 부분이 있던데, 그 텀이 일정해서 오케 실수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의 창조주시여!!" 하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카괴의 온몸에서 맹렬한 노여움이 터져나왔지만, 목소리에는 울음과 슬픔이 짙게 배어나왔다. 사방의 불바다 속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가 가득함에도, 지독히 외롭고 고독한 카괴가 순간 몹시 추워보여서 심장이 내려앉았다. 상처 넘버에서도 카괴는 어린 아이에 대한 가치판단이 전혀 없었으나, 자신의 목에 있는 상처를 정확히 짚어내는 순간 이 아이 역시 인간임을 깨닫는다. 이 세상에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지독한 외로움에 잠겨, 카괴는 비틀대며 슬픔을 토해낸다.



류빅터의 울음은 갈수록 망연하고 아득하며 절망적이다. 그 날에 내가 넘버에서 지난주 류한 때부터 어린 줄리아가 내민 새끼손가락을 향해 제 손을 들어보다가 툭 아래로 떨구는 디테일이 생겼다. 덜덜 떠는 류빅터의 손을 보며, 서엘렌이 외소이 넘버에서 사람들의 비난에 어린 빅터를 꼭 껴안은 채 손을 덜덜 떠는 모습이 겹쳐보였다. 자신이 '창조하는' 생명이 예전의 그 사람과 동일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슬픔에 잠겨 비논리적인 판단에 파묻힌 채 누나를 살려야 한다 중얼대며 성으로 돌아오는 류빅터. "나 이곳에서 꿈을 꿨지 너와 함께" 하며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던 류빅터는 "이젠" 하며 바닥을 오른손으로 퍽 내리치고선 "절망을 만들어냈네" 하며 좌절한다. 북극에서 빅터의 이름을 두 번 부르고, 너꿈속 장면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카괴의 행동에도 얼어붙은 듯 미동도 없는 류빅터. 툭 미는 제 손길에 괴물이 뒤로 넘어가니 헛웃음을 토해내던 빅터는 "아...앙리, 앙리" 라고 부르고선 그를 툭툭 친다. 무대 안쪽 경사면으로 올라가 "와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뱉어내고선, 객석을 향해 뒤돌며 "으어어어" 신음을 토해낸 류빅터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비로소 이 드넓은 공간이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공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휘휘 주변을 돌아보다 유일한 희망과도 같은 괴물을 향해 미끄러지며 일어나라고 절규하지만, 카괴는 이미 미동도 없다. 눈물을 닦아주는 건지는 정확하게 보지 못했지만, 이번 삼연 들어 처음으로 류빅터가 괴물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을 제대로 목격했다. 온전히 홀로 내팽개쳐진 스스로를 발견한 류빅터의 마지막 절규. 



이날 평시 끝나고 월터에게 "재밌니?" 라고 물었던 1막의 류빅터와, 넌괴물 넘버에서 카괴를 향해 똑같이 "재밌니?" 라고 묻는 류쟈크. 디테일 연속성 가져가시는 류배우님 몹시 사랑합니다. 오케는 대체 언제쯤 불안하지 않은 음정을 찍어줄지 의문이 든다. 오버츄어부터 미묘하게 어색한 음정을 찍어서 화가 났는데 막공 즈음에는 실수 없이 정확히 반주를 넣어줄지 걱정이 된다. 전반적으로 삼연 기간 초반에 비해 음향 자체가 많이 아쉬워지기도 했다. 마이크 뻑도 두어번 있어서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생창 직전에 스탭 움직임이 보이는 것도 그렇고, 집중력 떨어지지 말고 서울 공연 마지막까지 전 분야 스태프 분들이 최선을 다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관객 역시 큰 돈과 소중한 시간과 귀중한 체력을 바쳐 관극을 하고 있음을, 부디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매번 감사함을 마음에 새긴 채 블퀘 공연장을 나설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