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프랑켄슈타인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18.07.14 7시 공연
류정한 빅터/쟈크, 박은태 앙리/괴물, 서지영 엘렌/에바, 안시하 줄리아/까뜨린느, 이정수 룽게/이고르, 이윤우 어린 빅터, 안현화 어린 줄리아. 류은서안. 류은 페어 자넷, 류빅터 자여덟.
류배우님을 덕질하게 된 이래로 생각치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는데, 이렇게 멘탈이 실시간으로 아작나는 경험까지 하게 해주시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여 힘들다. 3년 동안 직접 보고 들은 경험치도 있고, 입덕 이전의 이야기도 소소하게 들어왔었기 때문에, 류배우님의 이날 모습이 더욱 생경하고 놀라웠던 점도 있다. 게다가 목요일 공연에서 실시간으로 목이 나가서 결국 금욜 일정과 토욜 공연 캐슷 변경을 하게 된 카이 배우에 대한 걱정을 이미 잔뜩 안고 있었기에, 더 염려되고 걱정되고 마음이 아파서 종국에는 류배우님이 이 극을 다시 해주시길 바랐던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머리로는 류배우님이 잘 생각하셔서 선택하신 일이란 걸 알아도, 가슴으로는 류빅터를 유난히 열망했던 팬이기에 느끼는 자연스런 죄책감과 속상함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와중에도 특기인 음역대는 흠없이 불러주시고, 연기 또한 안정적으로 더욱 깊이 있게 이어나가는 모습에서 22년차 배우의 연륜과 고집과 단단함을 목격했다. 그래서 이날 2막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 같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절망이 넘실거리는 이 극에서,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외로운 싸움을 하는 배우와 처절하게 무너져내리는 캐릭터들을, 지독히도 생생하게 마주하면서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넘쳐흘렀다. 이 극을 준비하고 공연하던 배우들이 툭 치면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감정의 바닥을 느꼈다던 말들을, 재삼연 통틀어 스무 번을 관극한 지금에서야 정확하게 절감했다. 이렇게까지 배우가 고통스러운 극을 그저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관객이 즐겁게 소비해도 되는걸까,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로 멘탈과 감정이 함께 갈리는 경험이었다.
일단 이날 극장이 확실히 건조했다. 2열에 앉았는데 1막 내내 렌즈도 안 낀 맨눈이 너무 뻑뻑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무난하지만 류빅터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구나 싶던 단하미나 나는왜까지만 해도 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생창도 초중반까지는 평소처럼 멋지게 불러주셔서 낮공에 있었다던 소품사고가 없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일어나리라" 에서 음이 흔들리고 "난 정복하리라" 의 음정을 확 낮춰 부르셨다. 원음이 힘들 것 같으니 바로 음정을 바꿔 부르신 것이 관객으로서도 팬으로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음정을 높이면 높였지 낮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배우님이기에 몹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또다시 장면에서 비명을 확 줄이는 등 목을 아끼시면서도 마지막 하이노트는 꿋꿋이 찍어주시는 류빅터 모습에 인터미션이 완전히 휘발됐다. 2막 초반 그대없이는 넘버나 넌괴물 넘버에서도 조심하시는 게 느껴지는데, 그 와중에도 평소와 다르다는 게 들리니까 팬으로서 미치겠더라. 너무 속상하고 걱정되고 아파서, 넌괴물의 류쟠을 보면서 줄줄줄 울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은괴가 또 얼마나 엄청난 노선으로 연기하고 노래하는지 더 펑펑 울게 됐고. 이미 멘탈이 나가 있는데 은괴든 류빅이든 뒤쪽 감정선들이 아주 극적이고 고통스러워서 커튼콜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눈물을 계속 쏟았다. 하아. 극악한 넘버를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온전히 소화하려 애쓰다가 실시간으로 배우 생명을 깎느니, 차라리 변주하는 게 훨씬 낫다. 아니, 나은 게 아니라 꼭 필요하다 본다. 오래오래 무대에서 뵙고 싶으니까. 당장 오늘 공연도 어떻게든 잘 해내주실 배우님이기에 오히려 걱정이 된다. 속상하고 마음 아프고 염려되고 죄스럽고ㅠㅠ
※스포주의※
여러 감정에 휩싸여 기억이 많이 휘발되었으나, 오늘도 류은이니 기록을 남기고 재회해야 할 것 같아서 간략하게 노선을 남긴다. 은앙 손 디테일이 더 섬세해져서 좋다. 단하미에서 류빅과 악수한 손을 내려다보고, 너꿈에서 류빅의 생각과 신념과 의지를 얘기할 때 꿈을 쫓듯 눈을 반짝이며 허공에 손을 뻗어 뭔가를 쥐어내고자 하는 동작을 취한다. 처형대 위에서 양 손바닥을 마주하며 눈을 감고 기도하듯 간절히 노래하며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순간 분명한 미소를 짓는다. 결심과 믿음으로 일견 행복해보이기까지 하던 눈빛이, 죽여! 라는 소리에 까마득한 현실 속 공포로 빠져드는 찰나까지 완벽했다. 도망자에서 은괴는 빅터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그래도 일말의 실날같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빅터의 첫 문장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어이 없다는 듯, 그 말을 따라하고선 점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못한다. 격투장에 처음 끌려간 은괴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생경한 무지 속에서 떠밀리듯 이리저리 휘둘린다. 잡혀갈 때부터 넌괴물 초반까지 초점 없이 먼 곳을 헤매듯 정처없는 눈빛을 띄우고 있던 은괴의 눈이, "이게 바로 너의 정체" 라며 자신을 적대하고 짐승 취급 하는 류빅의 눈과 마주치면서 고단하고 잔인한 현실에 잠겨 새카맣게 물들어버린다. 난괴물. 도입 반주가 흐르는데 "안..., 녕..," 이라 뱉어내며 손을 내젓는 은괴. 텀을 길게 두며 토해내듯 노래를 이어간다. 일어나보려 두어번 힘을 주다가 그대로 누워 노래를 계속하는데, 갑자기 오른팔 전체로 바닥을 쾅, 내리치며 "나의 신이여!" 하고 몸을 일으킨다. 어긋난 뼈를 맞출 때 고통스러워하며 소리를 지르고 몸을 뒤트는 디테일은 볼 때마다 힘겹다. "살은 누군가의 살!!" 하면서 사람들을 쫓아내고 불을 지른 은괴는 그대로 몸을 돌려 무대 뒤쪽의 불이난 격투장을 목격하며 노래하다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자 "절망 속에 빠뜨리리라" 하며 객석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온다. 분노와 고통으로 한참 숨을 내뱉던 은괴는 다시 뒤돌아 경사가 올라온 무대 안쪽 끝으로 걸어가, 마치 북극에서 빅터가 메아리를 확인하는 것처럼, 똑같이 두 번 허공을 향해 소리를 뱉어내고 비명 같은 고함을 토해낸다. 줄줄 흐른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의 슬픔과,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덜덜 떠는 몸의 노여움이 뒤섞인다. "날 안아!!!! 주는..." 까지 강한 분노에 휩싸여 온몸으로 증오를 내뿜던 은괴는, "꿈." 이라고 말하는 순간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며 울먹이기 시작한다.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드" 는 꿈을,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갈망할 수밖에 없는 고통에 파묻힌 마지막 절규. 상처. 인간이 만든 생명이냐는 아이의 물음에 진심으로 놀라 이유를 묻고는, 제 상처를 잠시 만진 은괴는 선명한 미움이 담긴 손동작으로 강하게 아이의 등을 밀어버린다. "한.... 괴물이," 하면서 스스로를 괴물이라 자칭한 그는 "세상 끝 그곳에" 조차 자신의 "행복" 이 없으리란 것을 알기에 아이처럼 엉엉 운다. 허밍도 없이. 북극 마지막. "혼자가 되는거야" 하고 비웃음과 후련함이 뒤섞인 나지막한 조소를 뱉어내는 은괴. "혼자가 된다는 슬픔." 하고 이어나가는 목소리엔 그가 당한 고통이 뒤엉킨 울음이 섞여나온다. "빅터, 빅터" 하고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며 빅터의 뺨을 향해 손을 천천히 힘겹게 들어 뻗지만, "복수야" 하는 선고와 함께 툭 떨어지는 은괴의 오른팔.
극 초반부터 은앙에게 계속 친밀감을 표시하는 류빅. "이제야 자네답군" 하며 뺨을 만지거나, "부탁이야," 하고 잠시 눈을 마주치며 공백을 주고선 "친구." 하고 씩 웃어보이는 디테일 계속 해주셔서 좋다. 나는왜, 너꿈으로 이어지는 감정은 지난 번과 비슷한 노선이었다. 또다시 마지막에 두 번 다 보지 않고 총을 쐈는데, 두 번째 발사가 한참 안 터져서 긴장했다. 도망자 넘버에서, 도망치는 괴물을 보고 "아..앙리," 라고 입모양으로 이름을 부르던 류빅은 사람들의 총성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듯 후다닥 뛰어가서 제 손으로 그를 향해 총을 겨눠 발포한다. 상처 마지막에 엉엉 우는 은괴의 울음과, 조명이 켜지기도 전에 엉엉 울면서 엘렌의 시체를 끌어안고 비틀거리며 걸어나오는 류빅의 울음이 맞물린다. 망가진 생창 기계를 보고 절망하며 "이젠 누나를 살릴 수가 없어" 라 넋나간듯 중얼대며 엎어지듯 무너져 누나의 시체를 끌어안는 류빅. "나 이곳에서 꿈을 꿨지 / 너와 함께" 하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문득 치고 올라온 듯 허망한 웃음을 흘리고는 비틀대며 일어난다. 냉랭하게 침잠하여 꼿꼿이 선 채 공격을 가볍게 받아내는 은괴와 대비되는, 절망에 휩싸여 휘청이는 류빅. "예측할 수 없는 존재" 임을 증명하듯 허를 찌른 은괴와 줄리아의 시체를 보며 반쯤 미쳐 울음 같은 고통스런 웃음 소리를 토해낸다. 이날 은괴의 난괴물이 말도 안되게 어마어마했다면, 류빅의 후회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두 캐릭터 각각의 비극이 가장 극대화되는 넘버에서 뿜어져나오는 감정이 몹시 짙고 아득하여 북극에서 정점을 찍는다. 북극의 가장 높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은괴를 발견한 류빅은 실성한 것마냥 낄낄대듯 흐느끼는 웃음 소리를 토해낸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마지막 순간을 위해 은괴의 눈을 마주한다. 고개까지 끄덕이며 제 죽음을 갈망하던 류빅은 괴물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받은 진정한 복수를 깨닫는다. 앙리, 라는 부름이 하나도 없는, 그저 온전한 혼자임을 감당할 수 없기에 괴물의 옷깃을 붙들고 흐느끼듯 "일어나" 하며 비명 섞인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류빅.
빅터는 인생 내내 타인과의 관계에서 "왜" 라는 질문에 붙들려 살아간다. "왜" 엄마를 살리려 하는 게 손가락질 받을 일인지, "왜" 강제로 누나에게서 떨어져 유학을 가야 하는지, "왜"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 받으며 얻어 맞는지, 나는 "왜"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고 있는 건지, "왜" 앙리가 자기 대신 죽는 건지, "왜" 살아난 앙리는 앙리가 아닌 건지, "왜" 괴물이 다시 자신을 찾아온건지, "왜" 당장 자신을 죽이지 않는 건지, "왜" 자신이 아닌 줄리아를 죽인 건지, 빅터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 의문들이 누적되며 오해와 실망과 죽음들과 절망을 야기하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까뜨린느가 원하는 건 "자유" 지만, 괴물이 바라는 건 "평화" 라는 점도 눈여겨보고 있다. 각 인물들이 지닌 이야기와 감정이 깊고 분명하여 고민해볼 여지가 많다.
류은 페어가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에는 잘 어울리는 음색이나 안정감 있는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같은 점들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 사람의 행동과 동작들이 한 장면이든 여러 장면에 걸쳐서든, 서로 맞물리고 겹치고 이어지며 하나의 완성된 서사를 구축해내는 완결성이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싶다. 첫공 때부터 매번 해온 손목 쪽 손바닥 끝면으로 관자놀이를 짚는 제스쳐라던가, 단하미에서 양 팔을 벌리는 동작 같은 디테일도 있고, 이날 난괴물 장면처럼 다른 장면의 일부를 끌어와 상황과 감정을 극대화하는 애드립도 있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와 서사와 대사와 행동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디테일들의 삽입이, 마주할 때마다 신선하고 강렬하며 자극적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극임에도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전율하게 되는 지점을 여전히 선사받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다들 류은을 너무나 사랑하여 표가 없으니, 오늘 류은이 자칫하다간 자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힘들다. 페어 막공이 벌써부터 눈앞에 있다는 게 아쉽고, 류배우님 컨디션에 대한 걱정이 더해져 마음이 무겁다. 부디 오늘은 속상함에 엉엉 눈물 쏟으며 귀가하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배우님들 건강이 우선이에요. 우리는 원캐니까요ㅠㅠ 아프지 마시고, 지치지 않으시길, 온 마음을 다해 바랍니다.
'공연예술 > Ryu Jung H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켄슈타인 (2018.07.18 8시) (0) | 2018.07.19 |
---|---|
프랑켄슈타인 (2018.07.15 7시) (0) | 2018.07.16 |
프랑켄슈타인 (2018.07.11 3시) (0) | 2018.07.11 |
프랑켄슈타인 (2018.07.06 8시) (0) | 2018.07.07 |
프랑켄슈타인 (2018.07.04 8시) (0) | 2018.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