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 (2024.08.23 8시)
홍련
in 대학로 자유극장, 2024.08.23 8시
김이후 홍련, 이아름솔 바리, 임태현 월직차사, 신창주 강림, 정백선 일직차사.
개막하자마자 제대로 입소문을 타는 바람에, 객석에 앉기까지 꽤나 고단했다. 매진 행렬의 이유는 극이 시작되자마자 이해됐다. 이 극의 유일한 단점은 극장이다. 자유극장 리모델링 대체 뭘 한 거냐고요. 무대 위의 배우가 앞사람에게 완전히 가려지는 경우가 반복되면, 관객은 정말로 극을 온전하게 마주했다고 할 수 있나? 단차로 관극이 망쳐지는 경험을 할 때마다 빡치고 참담하다. 좋은 작품들이 매번 이 극장에 올라와서 서글프고.
극은 정말 괜찮게 뽑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배제당하고 심지어 죽임 당하기까지 하는 이 시대의 모든 우리들이 꼭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첫 넘버를 듣는 순간부터 했다. 지속적인 핍박과 억압으로 침묵하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미친년이 되기로 선택한 홍련의 후련한 얼굴이, 그 너머의 본질을 일깨우고자 하는 절실한 바리의 눈빛이, 진하게 영혼에 와닿는다. 알고 있던 이야기와 다른 진술과 그 이면을 캐내려는 심문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 위에서 줄을 탄다. 팽팽한 긴장과 느슨한 유머가 적절한 호흡으로 이어지며 쫀쫀한 매듭을 완성시켜 나간다. 그리하여 도달하고 만 절정과 당도하게 된 맺음에서 수많은 마음들이 씻긴다. 묵직하고 아득하게, 애절하고 애틋하게, 처절하고 찬란하게.
13만 9천9백9십8번의 재판. 이 숫자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다 보니 문득, 차사 강림의 수하가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직차사와 월직차사라는 점이 떠올랐다. 장화홍련의 기반이 된 실화가 1656년이라 하니 대락 37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이를 일수로 치면 13만5천일 정도 되더라. 홍련이라는 단 하나의 영혼을 위한, 하지만 결국 수많은 홍련들을 향한 바리의 씻김굿이 이토록 기나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며 찬란한 위로를 건넨다.
아비의 목을 자르고 남동생의 사지를 찢었다는 홍련의 도구가 '긴 칼'인 이유도 궁금하다. 여성의 정절을 요구하는 짧은 은장도의 반대 급부로 설정한 걸까. 새빨간 피를 튀겼을 그 장면을 상상하니, 옆동네의 리지가 떠올랐다. 그저 비명만 질러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끝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2024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절망적이다. 담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처절한 외침을 들어줄 수만 있다면. 방관자의 위치가 아니라,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주고 등을 쓰다듬어줄 수만 있다면. 사무치게 외롭고 한스럽게 서럽기만 했던 장화와 홍련에게 양껏 사랑을 건넬 수 있다면.
부디 이 극이 재연으로 돌아올 땐 극장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널찍한 연강홀을 추천 드립니다.. 바닥 조명 연출도 더 기깔나게 표현될 것 같고, 무대 전체의 분위기도 더 스산하고 우아하게 확장할 수 있으리라. 요새 초연 후 재연이 돌아오는 텀이 짧은 것이 유행이라 불만이지만, 홍련만큼은 양팔 가득 벌려 대환영이다. 이후홍련과 아름솔바리가 너어어무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배우들의 홍련과 바리도 궁금하다. 꼭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