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2020.06.12 8시)
오페라의 유령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20.06.12 8시
조나단 록스머스 팬텀, 클레어 라이언 크리스틴, 맷 레이시 라울. 오유 자둘.
자첫 관극의 희열이 워낙 어마어마했던지라, 생각보다 덤덤하게 1막을 마주하며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2막에서 인터미션의 그 오만한 마음가짐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오유는, 팬텀은, 오페라극장 지하의 하얀 가면은, 내 심장을 울리고 영혼을 자극한다. 피날레 장면에서는 잇새로 흘러나오는 오열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첫 때처럼 아웃트로 내내 눈물을 쏟고도 모자라 객석 정리 멘트에 내쫒기듯 공연장을 나서며 계속 눈물을 훔쳤다. 이토록 애틋하고 절절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울 일인가 싶지만, 괴롭고 고독한 삶을 감내하고 견뎌내다 못해 비틀어지고 잔혹해졌으면서도 결국 여리고 순수한 본연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 어리고 서글픈 영혼을 어찌 공감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포있음
피날레. 자신은 크리스틴을 사랑한다며 동정을 보이라고 외치는 라울에게, 팬텀은 절규하듯 고함친다. 세상은 자신에게 그런 걸 준 적이 없노라고. 그대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형형한 노여움을 풍기는 얼굴 너머 지독한 고독이 비친다. 어머니에게마저 버려진 오유의 팬텀은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했기에 크리스틴을 지독히 갈망하고, 그래서 벼랑 끝의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포용한 순간 도리어 경악한다. 깊고 간절한 그 키스를 받아들이는 손끝이 믿기지 않는 현실과 걷잡을 수 없는 희열로 파들거린다. 그러므로 팬텀은 크리스틴을 놓아줄 수밖에 없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끌어안은 유일한 사람을 강제로 제 곁에 묶어둘 수 없다. 이미 과분한 사랑을 받았기에 외친다. 당장 떠나라고.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것을 잊으라고.
그들이 떠난 뒤 공허한 정적만 일렁이는 공간. 망연한 눈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던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원숭이 인형. 유일하고 소중한 친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그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걸린다. 마스커레이드 맆. 가만히 그 머리를 쓰다듬던 다정한 손길이 그대로 인형의 오른쪽 얼굴만 감춰낸다. "Hide your face so the world will never find you" 라고 나지막하게 노래하며 파스스 미소를 걸어낸다. 외롭고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가엾고 애틋하게. 돌아온 크리스틴을 보고 머리를 쓸어넘기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기대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만큼, 여지 하나 없이 꽉꽉 닫아버리는 단호한 맺음이 더욱 절망적이다.
너무 힘겨워서 자주 찾을 수 없지만,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아프고 아리다. 만나지 못한 류라울과 어서 빨리 만나고 싶은 류팬텀이 이 마음을 한층 절절하게 만든다. 조만간 또 만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