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Frankenstein

프랑켄슈타인 (2015.12.03 8시)

누비` 2015. 12. 5. 00:48


프랑켄슈타인

in 충무아트홀 대극장, 2015.12.03 8시 공연





일단 이건 인정하고 시작해야겠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초연과 재연은, 완전히 다른 극이다. 초연에서 빅터와 괴물 사이의 관계성이 강조됐다면, 재연은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방점을 두고 있다. 초연을 무척 사랑했던, 혹은 나처럼 초연 이야기를 듣고 재연을 열렬히 고대해왔던 사람이라면, 그 기대를 버리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다고 재연이 엉망이 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저 창작극 초연 특유의 조금은 투박하지만 매력적인 개성으로 가득했던 작품이, 라이센스 작품의 느낌을 물씬 풍기며 조금은 진부하지만 보다 매끄러운 작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극의 판권을 수출할 예정이라는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수정이다. 초연의 스토리는 배우의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말그대로 배우가 하드캐리 해야만 극이 살아나는, 한국 뮤지컬이라서 가능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해외에 팔려가 무대 위에 올라간다면 분명 다를 것이다. 게다가 '좋은 극' 은 배우의 역량에만 의존해서는 안되는 종합예술이기에, 조금 더 무난하고 조금 더 직관적인 방향으로의 수정이 필요했다. 비록 그 수정이 완벽하지 않아서 유난히 연출 쪽으로 이런저런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덕들이 아쉬워하고 더 나아가 분노하는 이유 또한 아주 잘 이해한다. 초연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이다. 애초에 덕후가 생겨나고 회전문을 돌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는 개성있는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들 사이의 뚜렷한 관계성이라고 본다. 덕후몰이를 하는 몇몇 2인극의 사례만 봐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리는 배우의 역량이 상당히 다양한 '해석의 여지' 를 남기고, 덕들은 '전관' 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회전문을 돌며 극을 사랑하고 아끼게 된다. 프랑켄 초연 역시 빅터와 괴물 간의 관계성과 그 선명한 캐릭터들을 통해 상당한 덕후몰이를 했고, 덕분에 재연 역시 높은 기대감으로 표를 잘 팔고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극이 되어있었고, 이것에 대해 크게 실망한 사람이 꽤나 많아 보인다.


그래서 어차피 재연 회전문을 도는 건 명백하게 정해진 일이니, 그냥 초연과 다른 극이라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쯤되니, 류빅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 그리 고통스럽지는 않아졌다. 초연을 못본 건 한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동빅/동쟠, 한앙(지앙)/지괴, 혜경엘렌/에바, 지수줄리아/까트린, 이윤우, 김주디. 동한 페어 첫공연.



※그냥 다 스포※



00. Overture


오버츄어 도입부는 '나는 왜' 넘버다. 오버츄어 치고 웅장한 편은 아닌 듯하다. 생창 기계 상반부가 조명을 받아 무척 예뻤다. 1막 처음과 1막 끝의 수미쌍관. 끄어어억, 끄으으... 괴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01. 워터루


전쟁통에서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부상자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앙리 뒤프레 소위. 명령불복종 죄로 체포당하는 순간 등장한 빅터 프랑켄슈타인 대위. 무슨 대학을 수석졸업한, 접합술의 귀재인 앙리를 반협박(...)으로 섭외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첫인상은, 대단히 오만하다. 근데 효과음 좀 작게 넣어주면 안 되나. 귀청 떨어지겠다.



02. 단 하나의 미래


시체들을 보여주며 신나서 떠들어대는 빅터. 그의 말을 끊으며 반박하는 앙리. 그 어떤 명분이라도 신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기억 정확하지 않음)고 말하는 지앙을 향해 "자네, 고루하군." 이라고 얼굴 가득 비웃음을 담아 말하는 동빅. 그래서 전쟁터의 네가 뭘 할 수 있었느냐, 고압적으로 찍어 누른다. 아주 좋아하는 넘버. 도입부분의 오케가 조금만 더 강하게 치고 들어와주면 훨씬 임팩트 있을텐데. 자네는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나? 자신감으로 가득찬 빅터의 말을 강하게 반박하는 앙리. "당신의 신념도" 하고 "야망일뿐" 의 음정을 높게 치며 격분한 말투로 "대위님은 무신론잡니까?!?!" 라고 말하던 지앙 때문에 좋아 죽을 뻔했다ㅠㅠ 말도 안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가, 점차 빅터의 말에 설득당하며 표정이 변하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는 모습이 아주 설득력 있었다. 듀엣할 때 동빅이 지앙 목소리를 다 잡아먹은 건 아쉬웠다. 지앙 마이크 볼륨을 조금만 더 높여줬음 좋겠다. 다리 위에서 둘 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며 서로의 의견에 강하게 동조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러나 벼락 같은 선고. 종전. 여기 대사가 두 번이나 봤는데도 잘 안 와닿는다. 오른팔 얘기 자꾸 하는데, 이 부분이 그렇게 강조할 이야기인가...? 아무튼 빅터를 따라하며 "질문입니까 명령입니까?" 라고 하는 지앙의 말에 호탕하게 웃던 동빅이 무려 이마를 맞대며!!! "부탁이야, 친구" 하는데, 정말 룽게처럼 언제 봤다고 친구 삼냐 이놈아!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ㅋㅋㅋ 룽게와 함께 퇴장하는 빅터를 보며 지앙이 살짝 현웃이 터진 것도 같았다. 



03. 하지만 넌


빅터를 향해 너무나도 눈부신 빛을 보았다 말하는 앙리.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빅터에 대한 동경.



04. 평화의 시대 


이 넘버에서는 앙상블이 괜찮길래 기대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무너지는 것이 보여서 안타까웠다. 충무 2층은 음향이 깔끔하게 들리기는 한다. 덕분에 자첫 때 잘 안들렸던 앙상블 가사를 정확하게 듣고 왔다. 훈장까지 받고 귀환한 빅터. 하지만 여전히 거만하고 예의 없다. 이희정 슈테판 대사칠 때 조금만 힘빼줬음 좋겠다. 허스키한데 너무 강하게 치니까 귀 아파..ㅠㅠ 대단히 죄송합니다, 라고 얼떨결에 사과하려던 지앙이 끌려나간다.   



05. 평화의 시대 Rep.


자신에게 시선 한 번 두지 않았다며 속상해하는 줄리아. 빅터와 이야기 해보겠다며 퇴장하는 엘렌. 



06.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


자첫 때 룽게의 대사실수 때문에 조금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름은 빼고 그냥 '아가씨'라고 하더라ㅋㅋ 조금 황급히 등장한 지앙. 앙리라고 부르세요, 하는데 순간 위화감이 들었다. 지앙은 평민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분명했다. 상류층 말투가 아니라 딱 스스럼없이 조금은 우아하지 못하게 던지는 말투. 배우 특유의 말투이기도 하겠지만, 앙리의 배경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투라서 나쁘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딱딱하고 고루한 이미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은앙, 혹은 뉴앙이 더 취향이긴 하다. 


쉬쉬하는 과거, 빅터의 '유령'에 대해 말해주는 엘렌. 이번 재연에서 가장 목소리를 혹사시키는 배역은 엘렌/에바 역이다. 솔로넘버들이 자비가 없어도 너무 없다. 사랑하던 어머니는 병에 걸려 생사를 헤매고 아버지는 누가봐도 이해하기 힘든 괴팍한 행동을 한다. 어린 빅터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상황 속,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 빅터는 자신이 그를 살려낼 수 있다며 그리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 이상하다거나 잘못됐다는 가치판단은 없다. 오로지 어머니를 살려내는 것, 다시 생명을 끌어내는 것, 그것만이 빅터의 유일한 정의이자 선이다. 그러나 19세기의 군중은 두려워하고 분노한다. 마녀사냥이다. 불이 세차게 타오른다. 자신을 구한 아버지가 죽게된다. 이제 빅터에게는 누나만이 남는다. 하지만 엘렌은, 그를 사랑하지만 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착하지, 그건 안돼, 네가 잘못한 거야. 역시 어렸던 엘렌은 차가운 세상의 시선 속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아이를 달래고 규제하고 보호하기에도 벅찼으리라.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고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어긋난다. 빅터는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 없이 '생명의 본질' 같은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간다. 심지어 실제로 개를 살려내기까지 한다. 집요함, 집착. 그 이상의 간절함. 결국 쫓겨나다시피 유학을 떠나는 빅터. 그에게 해주는 엘렌의 말은 그저 충고랍시고 하는 말. 기억하렴, 너는 이제 혼자란다. 빅터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라 외친다. 자신을 비난하고 비웃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자기가 옳았음을 증명하리라 다짐한다. 빅터의 과거. 빅터의 유령. 



07. 한잔의 술에 인생을 담아


술집에서 맞고 있는 빅터를 구하는 앙리. 오늘 여기 술 내가 다 사리라! 라고 패기 넘치게 말한 앙리에게 다가온 건장한 남자. 그가 박수를 치는 순간 '어멋' 하는 탄성을 내는 지앙 때문에 빵 터졌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빅터. 나약한 그의 말에 "이렇게 포기가 빨랐었나?" 라고 말하며 곁에 앉는 앙리. 이게 다 통찰력이라며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는 동빅의 디테일이 좋다. 평생의 숙원으로 삼고 간절히 바라던 성공을 코앞에 두고 절망하는 그 심정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모습. 지앙이 따르는 술잔에 근심과 걱정을 머릿속에서 떼어내 넣는 듯한 동빅의 제스쳐도 좋다. "잘생긴 제 친구, 빅터 프랑켄슈타인입니다!!" 라던 지앙의 애드립도 좋았다. 초연에서 류빅이 "나 부모도 형제도 없지만~" 하는 앙리를 보며 순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재연에서는 그 부분이 아예 없고 무엇보다 있어서도 안될 것 같다. 비록 빅터가 앙리를 '친구'라 명명하긴 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우정을 알았을 리 없다. 게다가 재연의 빅터는 앙리를 그저 똑똑하고 자신과 뜻이 맞는 파트너이자 괜찮은 녀석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치만 앙리가 이끌지도 않았는데 신나서 테이블에 먼저 올라오는 건 대체....ㅋㅋㅋ 아 진짜 동빅 흥이 넘친다, 넘쳐. 평화의 시대에서 독일여자 벗겨놓고~ 이 드립 칠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어디서 많이 놓아본 빅터다ㅋㅋㅋㅋㅋㅋ 근데 춤은 진짴ㅋㅋㅋㅋㅋㅋ 하아. 동한 페어를 보러가며 가장 기대했던, 혹은 가장 걱정했던 넘버가 바로 이 한잔술이었다. 그나마 지앙이 힘빼고 춤춰서 다행이었지. 도저히 못보겠어서 눈을 지앙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는데도, 동빅의 그 몸짓에 가까운 동작들이 눈에 밟혀서 웃음 참느라 혼났다ㅋㅋㅋ


룽게가 뇌를 구했다는 소식을 들고 온다. 쓸모가 있었어!! 외치며 술값까지 떠넘기고 사라지는 두 악동들. 이부분 과장스러운 맆은 확실히 별로지만, 깨알 개그 요소로 먹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08. 살인자


분위기의 급작스러운 반전. 끌려온 앙리. 정황을 묻는 엘렌과 줄리아. '진실'을 말하는 룽게. 이 넘버 되게 좋은데 앙들 힘을 내서 좀 잘 살려줘요.... 좋은 넘버 죽이지 마...ㅠㅠㅠ 



09. 나는 왜


이 넘버도 좋다. 자신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희생한 앙리 때문에 빅터는 매우 혼란스럽다. 그런데 갑자기 엘렌이 묻는다. 설마 앙리의 목을 원하는 거냐고, 정말 나는 너를 모르겠다고. 실험의 성공을 위한 신선한 뇌를 강렬히 원하던 빅터에게 그 욕망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혼란스러운 감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결코 아니었다고 본다. 살아오는 동안 모두에게 배척받고 스스로 모든 걸 해냈어야 하는 자신에게 행해진 호의는, 이성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저 어리둥절하고 당황했던 것이다. 하지만 엘렌의 말, 더불어 설마 그 이유는 아니길 바란다는 룽게의 마지막 쐐기에, 빅터의 컨프롱이 시작됐다. 내면의 야망이 자백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인가, 이토록 내가 비양심적이었던가,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도 필요하지 않은가. 순간 지앤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캐릭터 내면의 고뇌, 충돌. 그래, 대극장 뮤지컬에서 필수적이긴 하지. 



09-1. 살인자 Rep.


하지만 빅터는 끝내 진실을 고한다. 내가 죽였노라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10. 너의 꿈 속에서


와줬구나. 고통스럽게 이제라도 진실을 말하라는 빅터에게 앙리가 담담하게 답한다. 웃으면 안 될까? 우리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자. 넘버에서도 "우리 처음 만난 그 순간 / 그 날에 정해졌던 운명" 부분에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강조하는 지앙의 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똑똑한 배우다. 대사와 연출들이 공백으로 남긴 부분을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강약조절을 해서 설득력을 높인다. 다만 대사를 살짝 날리는 버릇은 여전하심ㅠ 그래도 감정선은 아주 좋다. 단두대 앞에 선 지앙. 그 모습에 왜 보지도 못한 두도시 지뢰를 밟는 것인가. 이번에는 조명 빨리 꺼졌다. 캄캄해진 무대.    



11. 위대한 생명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 넘버를 듣기 위해 이 날 관극을 했나보다. 최고였다. 정말 박제를 하지 못한다는 게 뼈아플 뿐이다.


앙리의 머리를 든 채, 낮은 음정으로 시작되는 넘버. 동빅 저음은 살짝 느끼한 감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순간부터 날 창조주라 부를 지어다" 부분을 높은 음의 목소리로 부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문이 닫힌다. 벽이 올라가고 생창 기계가 나타난다. 멀리서 전체샷으로 보니까 확실히 예쁘더라. 그렇지만 작동하면서 나오는 소음은 여전히 거슬린다. 아, 정말 동빅 노래가 너무나도 좋았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서 속상해 죽겠다ㅠㅠ 계단 중간 바퀴 돌리면서 하이노트 찍으며 가성 내뱉는 부분도 심장 떨렸고, 그냥 넘버 자체를 아주 매력적으로 소화했다. 자첫 때만 해도 아쉬움이 남았는데, 일주일도 안 되어서 이렇게 넘버 레전을 찍어주다니ㅠㅠㅠ 노래 때문이라도 동빅을 포기할 수가 없게 됐다. 생생하게 기억이 안난다는 게 너무 속상해 으어어엉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진짜 무지 엄청 좋았다...... 


1막 첫 장면의 반복. 괴물의 탄생. 속에서 끓어오르는 소리. 기괴한 몸짓들. 그러나 그 모습을 발견한 빅터에게는 환희가 가득하다. 성공에 대한 환희, 역시 난 옳았다는 기쁨, 동시에 앙리의 얼굴을 한 저 생명체가 바로 앙리의 현신이라는 작은 착각. 아직 배우들 간 합이 잘 안 맞긴 하는데, 지괴가 어떤 느낌으로 동빅의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을 내려는지는 알 것 같다. 순식간에 벌어진 룽게의 죽음. 빅터는 깨닫는다. 저건 앙리가 아니야. 나는 그저 생명을 창조하고 내가 옳았음을 증명하려고 했을 뿐인데. 나로 인해 내 주변의 사람들이 죽었어. 나는 역시 저주 받았어. 내 주변에 있으면 저주받고 말아. 그토록 신에게 도전하고 그를 넘어보려 발악했는데, 결국 실패하고야 말았어. 패배감, 그리고 자괴감. 몰아치는 분노와 복수심. 



12. 또 다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온 인생을 바친 결과물이자 자신이 창조해낸 생명체의 목을 조르는 빅터. 그건 앙리도, 실험의 성공작도 아니다. 그저 증오스러운 자신의 운명 그 자체일 뿐이다. 내 운명- 아아악- 놓쳐버린다. 룽게의 총을 들어 발포한다. 난간에 부딪혀 생겨난 불꽃에도 괴물은 놀라기보다는 그저 이해하지 못한다. 끄워어어어억. 깨친 창문 사이로 몸을 던진다. 남겨진 빅터는 절규한다. 여전히 암전 후 퇴장하는 빅터가 보여 찝찝하다.





12-1. Entr'acte


3년이 흘렀다. 괴물의 실루엣.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공포가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지르는 빅터. 줄리아의 위로. 괴물이 입고 달아난 코트 안의 실험일지를 언급하며 지난 지옥같은 시간을 말하는 빅터. 가까스로 평온을 찾은 그들에게 달려오는 사람들. 



13. 행방불명


여기서 슈테판의 개가 잔인한 시체로 발견됐다는 가사를 넣을 거면, 앞에서 앙들 대사 좀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불필요한 중복은 옳지 않습니다. 상황에 대한 적절한 생략과 여백의 미를 통해 상상력의 기회를 제공해주세요.


드디어 나타난 괴물.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 그딴 말 대신 이런 걸 궁금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악에 받힌 톤을 꾹꾹 눌러담으며 내뱉는 말이 깊고 어둡다. 마주한 얼굴에 무심코 앙리, 라 말하는 빅터에게 괴물은 그 이름으로 부르지말라고 소리지른다. 그가 내던진 실험일지를 양손에 꼭 붙든 빅터가 광기 가득한 웃음을 쏟아낸다. 애초에 프랑켄슈타인 정도의 천재가 겨우 노트 하나 없다고 실험 자체를 못한다는 설정이 말도 안 되긴 하지만, 어쨌든 실험일지는 그의 삶 자체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싸이코패스 같은 모습도 이해는 간다. 이기적인 인간. 괴물은 경멸어린 눈으로 빅터를 바라본다. 들어라, 나의 창조주여. 지난 나의 3년을.     



14. 도망자


자신에게 적대적인 인간들. 이 넘버 지괴 감정선이 너무 좋았다. 목소리 만으로 눈물이 주륵 떨어질 정도였으니. 어쩌다  에바의 개를 잡아먹고 쫓기던 괴물은 곰에게서 까뜨린느를 구한다. 돈이야! 라고 외치는 에바의 말투가 조금 더 분명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들에게 잡혀 끌려가는 괴물의 모습이 영 개연성이 없다. 다 떨쳐내고 도망갈 수 있는 괴물이 왜 그렇게 맥없이 끌려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까뜨린느를 안고 있어서라는 이유라면 그 부분 연출이나 해석을 조금 더 강조해줬음 좋겠다.  



15. 남자의 세계


넘버가 좀 길다. 화려하고 시선을 끄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화려한 대극장의 장점을 한껏 살리지만, 조금 쳐내는 것이 배우를 위해서도 극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넘버 진짜 자비리스야. 앙들 간의 시합을 그렇게 길게 보여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인간의 표정을 본 괴물이 살인하는 것을 포기하는 그 감정선에 더 집중해 줘.



16. 넌 괴물이야 


충격적이었던 자첫 동쟠. 그러나 역시 이토록 과장스럽고 그로테스크하며 자극적인 캐릭터는 내 취향이 아니다. 애드립은 비슷하다. 남자구실 운운하며 바지를 끌어올리는 에바 때문에 꼬리뼈 쪽을 톡톡 치는 거나 알러뷰 하는 것들. 이 넘버 시작하기 직전 실험일지 읽으며 목소리 내려까는 디테일도 동일. 아, 류잨 궁금하다. 동빅 목소리는 분명 좋은데 저음이 묘하게 니글니글하고 고음은 살짝 쨍한 느낌이 때문에 안 맞는다. 동쟠은 이 노래 음역대가 완전 안 어울려서 딕션도 잘 안들린다. 짘슈의 헤롯송을 안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이 넘버 역시 좋아할 리가 없긴 하지만, 노래 자체가 불만족스러운 건 조금 안타깝다. 영리하게 수정해나갔으면 좋겠다. 지괴 표정이 이부분에서 굉장히 좋을 것 같은데, 2층이라 잘 안보여서 아쉽다. 열흘 후에 봅시다....ㅎ.... 



17. 그곳에는


겨드랑이를 닦아주는 까뜨린느의 행동에 정말 누가 들어도 똥강아지 낑낑대는 소리를 내는 지괴. 와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지?? 동작도 양 손을 앞으로 짚고 몸을 웅크린 모습이고ㅋ 짜증내면서 양손 양발 네 개로 다다닥 까뜨린느에게 위협을 가하지만 그가 수건으로 후려치니까 끼이잉 하고 움츠리는 것도 완전 멍뭉이였고. 안, 녕. 손을 흔드는 인사. 머릿속에서 언어가 튀어나온다는 괴물. 앙리의 뇌가, 보유하고 있던 지식을 조금씩 괴물에게 전달한다. 이것만 봐도, 앙리와 괴물은 별개의 존재임을 알 수 있다. 



17-1. 인간행세


이것들이 정분이 났나!!! 아 진짜 여자한테 가장 절망을 주는 계기는 오로지 강간 뿐이냐고. 그렇게 앞섬 추스리는 디테일 존나 필요없다고 ㅅㅂ 차라리 그냥 폭력을 가해. 보는 사람 기분 더럽게 하지 말고. 



18. 산다는 거


이 넘버 멜로디는 참 좋은데, 가사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자꾸만 라만차가 연상된다. 심지어 "날 좀 봐!!!!!" 라던 가사도 있었고. 지앤하에 라만차까지. 아무리 세상에 새로운 건 없고 대극장 극은 자가복제가 심하다 해도, 이렇게까지 뚜렷한 공통점이 보이니 입이 쓴 건 어쩔 수가 없다. 지수 까뜨린느 감정선 좋다. 작은 문으로 손을 내밀고 안녕~ 흔드는 괴물의 손에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18-1. 남자의 세계 Rep.


약을 먹은 괴물의 패배. 까뜨린느가 발악하며 괴물을 발로 차며 넌 괴물이야, 넌 쓰레기야, 라며 괴물의 절망을 극대화시키는 건 좋은데, 이것도 좀 과하다. 그럴 바에는 괴물 표정을 더 자세히 보여달라니까? 상황을 자세하게 보여주면서 괴물의 감정선을 유추하게 만드는 것보다, 그냥 좋은 배우들이 강렬하게 표현해주는 날 것 그대로의 괴물을 보고싶다.



19. 난 괴물


정말, 너무 좋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서 울 뻔했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절박한 절규. 한지상 배우, 음 안날리고 저음으로 누르면서 묵직하게 음 뽑아낼 수 있잖아ㅠㅠ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풍부한 감정을 담아내는 지괴가 너무나도 취향이라서 괴롭다. 아 진짜 초연 프콜이나 뭐 기타 영상들이랑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중간정적을 잘 활용하는 감정선도 좋고. 지괴 진짜 내 기준 인생캐다...ㅠㅠ 



그래서 나에게 복수를 하러 온 것이냐!! 현실로 돌아온 빅터의 물음에 낮게 누르는 목소리로 괴물이 대답한다. 난 불행하기에 악하다. 악하기에 복수를 원하지. 탄생한 순간에도 약간 그런 느낌이긴 했는데, 지괴는 이미 인생을 다 살아버린 느낌이다. 하얗게 센 머리가 전달하는 이미지처럼, 짧은 기간에 강렬한 괴로움을 겪어내고 순식간에 늙어버려 회의감에 젖어버렸다. 분명 초연 때는 세 살짜리 애새끼(....)였다고 들었는데, 재연 때는 묵직한 이성이 가득한 성인이다. 원작소설의 캐릭터에 가까운 이미지다.



19-1. 살인자 Rep.


괴물의 함정에 빠져 결국 교수형에 처해지는 엘렌. 군중은 여전히 어리석고 여전히 불 같다. 



20. 그 날에 내가


빅터를 떠나보내는 엘렌. 다정하게, 단호하게, 애정을 담아 빅터를 위로하는 엘렌. 그 기억 속에서 아이처럼 엉엉 우는 빅터. 연출이 나쁘진 않지만 표정이 잘 안보이는 2층에서는 집중이 확 떨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21. 절망


엘렌의 시체를 안고 실험실로 달려온 빅터. 실험일지를 되찾았으니 엘렌을 살릴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괴물은 모든 기계를 박살낸 뒤다. 작은 희망 뒤 찾아온 절망. 내가 만든 건 죄악이라고, 역시 난 저주받았다 절규한다. 그 모습을 보며 괴물은 그렇게 잘 알면서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었느냐 비웃는다. 차라리 날 죽여!!!! 온 몸을 던져 바닥을 나뒹굴며 절규하는 빅터. 자신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줬던 엘렌의 죽음에 이미 분노의 임계치가 넘어버렸다. 하지만 괴물은 냉정하다. 아직은 아니야. 기다려. 저 달이 반으로 갈라졌을 때 (부정확함) 다시 돌아오리라. 여전히 깨진 채 그대로인 창문을 넘어 사라지는 괴물. 



22. 오늘 밤엔


무려 단하미 멜로디의 맆. 줄리아의 사회적 위치 때문이겠지만, 빅터의 말에 경비를 강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같잖더라. 마녀의 자식이고 살인자의 동생이라 침을 뱉을 때는 언제고, 그의 말에 복종하는 모습에서 상당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대중이 전반적으로 우둔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극 안의 군중들은 그 특성이 너무 심하다. 



23. 줄리아의 죽음


새하얀 드레스의 새빨간 피. 무려 변장까지 하고 잠입해 줄리아까지 죽인 괴물. 왜 내가 아닌 줄리아를!! 절망으로 가득한 절규를 내뱉는 빅터를 향해, 괴물은 아무 감정도 담지 않고 말한다. 난 북극으로 간다. 북극의 가장 높은 곳에서 널 기다리겠다.  



24. 후회


줄리아를 끌어안고 부르는 빅터의 노래. 2막 내내 연출이나 스토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과부하가 되면서 이 부분에서 거의 넋을 놓을 뻔했다. 그리고 사실 가사도 잘 안들렸다. 이거 진짜 괜찮은 넘버 같은데 조금만 더 연출적으로 살려줬으면 좋겠다ㅠㅠㅠㅠ    



25. 상처


호숫가 장면. 아 진짜 지괴 너무 좋다. 지괴 넘버 중에 내 기준에서 거슬리는 게 단 하나도 없었어. 완벽 그 자체. 그런데 참 놀랍게도, 지괴를 보면서 자첫 때 만났던 뉴괴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누가 더 좋고 나쁘고 그런 비교의 차원이 아니라, 지괴는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뉴괴는 그런 표정을 보여줬는데 그것도 좋았었지, 라는 느낌으로 저절로 연상이 됐다. 최우혁 배우가 진짜 대단한 거다. 무려 지괴를 보고 있는데 기억 속의 그를 끄집어 떠올렸을 정도로 강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신인배우가 그렇게 연기가 좋으면 반칙 아닌가요..ㅠㅠ



26. 나는 프랑켄슈타인


여전히 객석에서 등장하는 빅터. 헉헉 거리며 무대 위로 오른다. 몸싸움. 천천히 칼날을 빅터의 다리에 꽂아넣는 지괴. 아픔에 절규하는 그의 손에 쥐어주는 권총. 탕. 탄생한 순간 내뱉었던 끓어오르는 신음소리. 줄곧 '창조주' 라 불러왔던 그에게 괴물이 말한다. '빅터' 라고. 짧은 텀. 이해하겠어? 이게 나의, 복수야. 바람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정적. 메아리. 정적. 생창 넘버의 맆. 나는,,,, 잇지 못하는 말. 나는 프랑켄슈타인----!!! 절규. 암전.  





커튼콜. 이리와서 안겨! 라는 제스쳐를 하는 동빅에서 싫어싫어 포즈를 시전하는 지괴 때문에 현실 으악 소리를 냈다. 어디서 앙탈이야ㅠㅠㅠㅠㅠ 그러다가 지괴가 동빅에게 어부바...... 아무래도 키차이도 있고 그래서 동빅이 자꾸 한앙을 안아들려고 하는 모습이 본극 도중에도 몇 번 보이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이걸 유지할 줄이야ㅋㅋㅋ 지괴가 동빅에게 업힌 채로 손을 막 흔드는 게 참 귀엽고 애틋하긴 하더라. 



후우. 2막만 조금 보완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회전문을 가열차게 돌지는 않으리라 말했던 자첫 리뷰를 적고 일주일도 안되어 자둘을 한 것은 지괴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은앙/은괴도 정말 너무 보고 싶다..ㅠㅠㅠ 안될거야 난. 흡. 이번 리뷰는 뭔가 그럴듯하게 작성해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글이 안나와서 그냥 플북 넘버를 참고해서 순서대로 풀어봤다. 리뷰 퀄리티가 갈수록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괴롭다..... 그래도 진심으로 극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극을 보고 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내 고민하고 스스로 설득하고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가며 콘텐츠를 열심히 소화하고 있다. 이게 내 본업도 아닌데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현타도 잠깐 오긴 했지만 말이다. 아아 좀 진정해야 하는데...... 요새 모든 게 지루하고 지겨워서 자꾸 일탈을 시도하는 것 같다. 이럴 때가 아닌 걸 아는데 이 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살겠냐는 생각으로 자체 컨프롱 중이다. 극 프랑켄슈타인, 여러모로 고민을 듬뿍 안겨주며 존재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자셋은 과연 언제이려나^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