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책을 한 권 읽었더니 또 고민이 많아졌다. 올해 들어 독서량이 현저히 줄었는데, 학교에 잘 가질 않아서 도서관에 들리질 않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냥, 멍청하게 살고 싶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현실에 답답해하고, 실천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 느끼고, 그래서 마냥 울고만 싶어지는, 그 심정들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반 년 내내 열심히 도망다니다, 지난달부터 슬슬 현실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멀쩡한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보다도, 스스로가 지루하고 잉여로워서 견디질 못하겠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고민. 애초에 블로그를 팔 때 뭔가 대단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게 아니다. 내 감정을 '쉽게' 뱉어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고, 직접 찍은 사진 혹은 유투브 등에서 링크를 끌어와 동영상을 첨부할 수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뚝딱 뭔가를 적어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블로그가 익숙해졌다. '정기적으로' 포스팅들을 작성하게 된 시발점은 여행기라고 봐야겠다. 일본이든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유럽이든, 잔뜩 사진을 찍어온 터라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대충이라도 적어두어야겠다는 의무감반 그리움반의 감정으로 포스팅을 완성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수박겉핥기 식의 여행이었기에 부끄러워서 잘 안 읽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이자 자료이기에 카테고리명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내 취미이자 관심사 중 가장 큰 것이 여행인데 아무래도 재정적 한계가 있기에 근래에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 그래서 여행기가 올라오질 않고 있고. 다음 취미는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안방수니인데, 과연 블로그가 점령당하고 있는 상황이 생생히 느껴져서 당혹스럽다. 아무리 목적의식 없이 만든 블로그라지만 이러려고 만든 건 확실히 아닌데, 하면서. 주제를 여러가지로 나눠서 여러개의 블로그를 파볼까도 했었는데, 그건 시행착오 끝에 운영이 매우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접었다.
글쓰기는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데, 이곳의 블로그 포스팅은 글쓰기라기보다는 공개적인 일기장 수준이라 창피하기만 하다. 글쓰기의 "연습과정"으로서 블로그를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그 기저에는 댓글 등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의견을 공유해야 더욱 유의미해진다는 말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나는 블로그를 겨우 '일시적인 감정과 생각을 혼자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배설 용도의 수준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거다. 어쨌든 용도가 있긴 하니까 아예 쓸모없다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회의감이 잔뜩 든다. 근래에 쓰고 있는 '글' 이라는 건, 다이어리에 적는 아주 짧은 이야기와 블로그 포스팅밖에 없는데.
애초에 이 블로그에 진지한 글을 잘 안 쓰는 이유는, 완결성에 대한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뭔가 주절댈 것은 많은데, 그게 하나의 독립적인 글로써 완성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자신이 없다. 억지로 적어내던 레포트처럼 주제를 잡고 기승전결 확실히 한 다음에 가독성 있는 문체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적어야 하는데, 포스팅은 아무래도 의무감이 없으니까 그런 본격적인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게 된다. 칼럼처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슈가 되는 사회주제들을 가지고 짧게 적어보는 연습을 해볼까.
예전에 지역신문에 인문학강좌 리뷰를 기사로 만들어 낸 적이 있다. '대학생 시민기자'로서 강의의 요지와 함께 느낀 바를 간략하게나마 적었는데, 그래도 하단광고를 제외한 한페이지의 전면에 실렸으니 적은 양은 아니었다. 8주 동안 레포트나 줄글, 포스팅 등과는 전혀 다른 '기사'만의 특징을 털끝만큼 경험해볼 수 있었다. 너무 휘리릭 적어낸 감이 있어서 아쉽기도 하고. 일단 글을 쓰면 오타나 동어반복 등의 교정만 하고, 내용의 퇴고는 정성들여 하지 않는 이상한 성격이 있다. 그래서 학창시절 문제풀이할 때 검토도 '헷갈렸던' 문제만 다루곤 했었고.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고질병이라 잘 고쳐지질 않는다. 하필 이 성격이 절정이었을 때 이런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교환학생 준비에 학기 마무리에 바쁜 시기긴 했지만.
1일 1포스팅을 하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게을러지지 않기 위함과 동시에 스스로 글을 적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나는 음악을 창작하는 능력도, 그림을 그려서 상황을 표현할 능력도, 아예 몸을 사용해서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도, 전혀 없다. 아주 조금이라도 가진 능력이라고는 그저 사진을 찍는 것과 글을 쓰는 것뿐. 다른 모든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글쓰는 능력은 자꾸 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지금까지 블로그는 능력의 퇴보를 막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이제는 약간이나마 향상시키려는 도구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