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Musical

섬 : 1933~2019 (2024.06.05 3시)

누비` 2024. 6. 5. 23:22

음악극 섬:1933~2019
in 정동극장, 2024.06.05 3시

 

 

백은혜 마리안느&고지선, 정인지 마가렛&백수선, 박슬기, 안창용, 김지혜, 이시안, 김리현, 신진경, 박세훈, 이민규, 정소리, 김승용 목소리들.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고 밀려난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있다. 강제로 침묵해야 했던 이들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못했다. 나도 여기 있다는 절규 어린 외침은 여전히 다수의 외면과 권력의 억압으로 짓눌리고 있다. 소위 말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뿐인데도, 특권이니 시혜니 하며 온갖 멸시와 혐오가 쏟아진다. 극 후반부의 토론회 장면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한 톨의 과장도 없는 위선 가득한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들이 작금의 뉴스들과 겹쳐지며 아득한 절망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니까. 가장 어두운 밤에도 밝은 미래를 꿈꾸며 끝끝내 스스로를 불사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존재니까. 어제를 삼키고 오늘을 견뎌내어 기어코 내일을 맞이하고야 말리라 굳게 믿고 있으니까. 잘 할 수 있다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해보면 된다고, 그래도 안되면 또 하면 된다고, 또 또 해보면 된다고. 될 때까지 하면 된다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배우들이 참 좋았다. 음악도 적절한 순간에 울림 있게 사용되어서 극에 몰입이 잘 됐다. 구성과 전개가 친절하지 않은 극인데다가 대사가 먹먹하게 들리는 음향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목소리들이 서술자가 되어 구체적으로 배경을 설명해 주는 전반부 연출도 개인적으로 불호였다. 다만 후반부에서 아예 당사자인 고영자와 고지선이 화자의 역할을 하는 건 괜찮았다. 멀티 역할을 하는 배우들을 너무 직관적으로 활용하는 연출이 근래의 여러 작품들에 자주 활용되는 바람에 거부감이 든다. 가장 효과적이지만 가장 단순한 이 기법을 마주할 때면, 극으로부터 분리당하는 기분이 든다.
 

 
한센병을 앓는 이들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킨 '소록도'가 물리적인 의미의 '섬'이라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분리당하는 '장애섬'은 관념적인 의미의 '섬'이다. 배제되어 고립되었고, 고립되었기에 더 지워지는 이들의 섬은 갈수록 좁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사람들은 "익숙해지면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에는 생경함에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릴지 몰라도, 이내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다름을 온전히 마주할 기회만 있다면, 차이에 적응하고 일상에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을. 단 5분만이라도 내어준다면. 

 

우리는 외따로 떨어진 섬에 각기 갇힌 채 스스로를 갉아먹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섬으로 건너가 대화하고 납득하고 포용해야 한다. 누구든 비자발적으로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자기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계속, 또 계속해서 노력해야겠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덧. 한국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가정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다음 웹툰 <열무와 알타리>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나 저출생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웹툰 <열무와 알타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