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2022.09.15 7시반)
서편제
in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22.09.15 7시반
이자람 송화, 김준수 동호, 김태한 유봉, 채태인 동호모, 최연우 어린송화, 차승수 어린동호, 이하 원캐. 자람준수 판소리 페어 자첫자막.
아는 이야기에 아는 넘버가 잔뜩인 극을 이제야 자첫했다. 문르콘에서 자첫했던 자람신의 송화를 놓칠 수가 없었고, 명성 자자한 김준수 배우도 궁금했다. 덕분에 서편제라는 작품이 추구하는 '소리'를 제대로 감상하고 왔다. 두 배우의 낭창하고 재기 발랄하며 묵직하고 풍성한 소리들이 선연하게 심장에 와닿았다. 온갖 풍파를 삭이고 녹여 제 소리를 찾아낸 자람송화의 두터운 삶과 그 소리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북을 치고 추임새를 넣는 준수동호의 뜨거운 마음이 오롯이 담긴 마지막 심청가는, 감히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리의 소리는 길이 갈리어
그 언젠가 만날까 기약 없네"
자신의 소리를 찾겠다는 동호를 차마 붙잡지 못하고 여기가 아프다며 명치를 꾸욱 누르는 표정, 홀로 남겨져 오도카니 서있다가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며 아이답게 엉엉 토내해는 울음, 결국 아버지를 쫓아 걸음을 옮기면서도 어색함과 허전함에 계속 뒤를 돌아보는 미련 가득한 얼굴. 자림송화의 그 모든 찰나가 아프고 애틋하여 눈물이 쏟아졌다. 재회의 기약도 없이 작별해야만 하는 갈라진 소리길을 맞닥뜨린 두 사람의 아픔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 이별이 있었기에, 끝내 다시 맞닿은 그들의 소리길이 한층 눈이 부시게 찬란했다.
아쉬운 건 역시 음향. 오로지 북소리와 고수의 추임새, 소리꾼의 음성만으로 풀어내는 판소리만이 편안하고 벅차게 아름다웠다. 극을 마무리하는 장면의 반주는 오히려 이야기의 여운을 방해할 정도였다. 판소리와 대치되는 미군부대의 음악 또한 괴리감이 너무 심해서 아쉬웠다. 특별한 구조물 없이 세로로 길게 덧대 붙인 한지가 펄럭이는 벽을 움직이고 바닥의 회전무대를 사용한 무대 연출은 영상 및 조명과 어우러지며 편안한 조화를 이뤘다. 배우들 동선 외우기 꽤나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혼을 쏟아내는 비명 같은 자람송화의 절망과 거듭 누이를 부르며 헤매는 준수동호의 절박함이, 춘향전 사랑가를 부르던 두 사람의 사랑스러움을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서로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그저 행복하게 소리할 수는 없었던 걸까.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뮤지컬 서편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살다보면' 넘버가 1막 초반에 딱 한 번 나온 후로 리프라이즈 하나가 없었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다. 게다가 이 장면에서 어린송화와 어린 티가 뚝뚝 흘러넘치는 자람송화는 맑고 투명하고 순진하게 말한다. 엄마에게 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다며 무구한 눈망울로 노래한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우리네 한의 정서가 무엇인지 알아버린 어른이기에, 그 천진함이 더욱 막막하고 아찔했다.
살다보면, 살아질까. 이 길은 내가 택하여 걷고 있는 나의 길이 맞는가.